80조원 투입했지만, 답 없는 저출산 대책

김종성 입력 2016. 8. 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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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25일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보완 대책, 출산만 종용해선 안 된다

[오마이뉴스 글:김종성, 편집:김예지]

 80조 원.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출산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쏟아부은 예산이다.
ⓒ pixabay
'80조 원'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출산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쏟아부은 예산이다. 워낙 단위가 커서 피부에 와 닿는 현실감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80조 원'은 굉장히 많은 돈이라는 것이고, 그쯤 썼으면 어떤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저출산'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급기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가장 큰 구조적 위험이며,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내용의 호소문까지 내놓았다.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80조 원을 쓰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인가. 물론 '저출산'이라는 추세는 단지 대한민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과제이고,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적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들을 고안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최소한 좀 나아졌어야 한다는 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2월을 떠올려보자. 정부는 '제3차 저출산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6년에는 신생아가 44만 5000명, 2020년엔 48만 명이 태어날 것"이라 자신 있게 공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태어난 신생아 수는 18만 2400명에 그쳤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만 200명이 줄어든 수치다.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해보다 7170명이나 적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16년에 태어날 신생아 수는 42만 명 수준으로, '인구 통계'가 시작된 1925년 이후 가장 적을 것으로 예측된다. 당연히 정부의 계획과도 엄청난 괴리가 있는 셈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는 '저출산 보완대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 25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나온 추가적인 정책들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난임시술 지원비 강화, 아빠 육아휴직수당 인상, 다자녀 지원 확대를 통해 내년 출생아 수가 2만 명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그렇게 될까? 정부는 매번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지만, 결과는 항상 초라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실패에 대한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는다. 또다시 새로운 정책 혹은 보완책을 내놓으면 그뿐이다. 그렇게 시나브로 80조 원이 사라졌다.

물론 난임시술 지원과 같은 정책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난임시술을 기피해 왔던 이들(현재 난임 부부는 21만 명으로 추산)에게 절실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밖의 대책들이 출산율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가령,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 여성의 육아휴직도 '그림의 떡'에 불과한데, 남성의 육아휴직이 얼마나 현실성 있게 다가올지 갸우뚱해진다. 참고로 2015년 남성의 유아휴직 비율은 전제 육아휴직자의 5.6%에 그쳤다.

출산은커녕 결혼마저 기피하는 현실... 원인을 잘못짚었다
 저출산
ⓒ KBS1
"저도 지금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만일 아이를 가지게 되면, 남편이나 둘 중 하나가 육아를 해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맞벌이를 하는 정유진씨의 대답을 들은 정부는 왠지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그게 왜 쉽지 않다는 거야?"

현실을 모르는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란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근본 원인에 접근할 의지가 없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기적인 정책에 돈을 쏟아붓는 것뿐이다. 지금 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2, 30대(소위 결혼적령기 혹은 가임연령기)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결혼할 생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녀를 출산할 계획이 있습니까?"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저출산은 보육과 사교육비에 대한 비용 부담, 고용에 대한 불안감, 주거비 상승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돼서 나타난 결과"라며 "아이를 키우는 데 1인당 수억원(201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3억 896만 원)이 들어가는 사회에서 출산은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일차방정식 수준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른바 '헬조선'이라고 하는 사회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실타래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은 지옥 구덩이와 같은 '헬조선' 속에서 삶을 연명해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묶어버리고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게 할 뿐"이라며 '자신감을 갖자'고 말한다. 역시 현실감 제로다.

"정부는 지금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인의 '빚내서 사는 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줘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부 정책은 이를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시키는 방향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헤럴드경제>, 정부 "출산율, 2020년 1.5명 달성"..20·30代 "글쎄")

무분별한 긍정은 냉소를 낳는다. '출산'은커녕 '결혼'마저 기피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누가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백종만 전북대 교수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 정책인 일자리 관련 정책 대응을 보면, 임시적이고 대증적 대책들로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는데, 실제로 한쪽에선 노동시장개혁을 통해 고용불안을 키워나가면서 한쪽에선 안심하고 아이를 낳으라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태도인가.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평균 1.24명에 불과하다. OECD 기준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대답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깊이 있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제발 좀 하라!) 결국 2, 30대 가임연령층의 의견과 의사가 배제된 채 꾸려지는 정책들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비껴가고 있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늙어버린 대한민국이 내놓는 정책도 늙어버렸다. 이 늙음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단언하건대, 정부의 이번 단기 대책도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사회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단기적인 정책만을 제시해 '출산'을 '종용'하는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가히 기만적이지 않은가? 혹시나 여기에 속아 자녀를 출산한 이들이 곧 닥칠 쓰나미 앞에 어떤 절망을 맛봐야 할지 눈에 훤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지금의 이 정부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고 있는 듯하다. 출산율을 높여야 할 의무를 지닌, 혹은 그런 책임을 지고 있는 '대상'으로 말이다. 이건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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