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엄마 있는데.." 주민등록등·초본 차별받는 다문화가정

김정욱 기자 입력 2016. 8. 26. 15:14 수정 2016. 8. 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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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자, 혼인신고해도 등·초본에 기재 안 돼, 아이들은 한 부모 가정, 배우자는 돌싱으로 오해 받아, 등·초본 미기재로 불편함과 함께 이방인 취급 씁쓸함도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이병을(41)씨의 주민등록등본. 이씨는 부인 오사다 요시코(36)씨와 부산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발급받은 등본(왼쪽)에는 부인 이름이 없다. 동사무소를 직접 방문해 오사다씨 이름을 넣어달라고 요청해 받은 등본(오른쪽)에는 기재가 돼 있지만 가족들이 기재된 곳이 아닌 알아보기 어려운 맨 아래 쪽에 이름이 올라 있다.

초등학생인 이승환(10)군은 얼마 전 여름캠프에 참여하면서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했다 엄마 없는 아이로 오해를 받았다. 다문화가정인 이군의 어머니는 일본인으로 현재 부산에 함께 살고 있지만 외국인이어서 등본에 기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26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계속 증가하는 우리나라의 결혼이민자는 지난 해 기준 30만명을 넘었고, 결혼으로 인한 다문화가족 구성원 수는 90만명에 이르렀다.

우리 정부는 “결혼이민자도 한국인이고, 소중한 국내 인적자원이다”며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한 정부 발행 문서 중 하나인 주민등록등·초본에 결혼이민자는 기재가 안 되고 있어 행정적 차별이라는 지적과 함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국내에서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더라도 등본과 초본에는 실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모 중 한명이 외국인인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등·초본을 제출할 때 한 부모가정으로 오해 받고, 배우자의 경우 이혼했거나 별거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다문화가정은 등·초본으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 뿐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도 많다. 한국인과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 마이 미란(33·여)씨는 얼마 전 아이의 여권을 만들기 위해 구청을 방문 했다. 구청을 찾기 전 여권 관련 문의를 하니 아이가 미성년자이므로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마이씨는 남편을 동반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구청을 방문해 여권 신청을 신청했지만 마이씨가 등본에 기재돼 있지 않아 보호자인 게 확인이 어렵다며 여권 신청이 거부됐다. 결국 마이씨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다시 구청에 가 여권을 만들었다.

마이씨는 “내가 친엄마인데 내 자식의 여권도 못 만들어주는 현실이어서 왠지 법적으로 친엄마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다문화가정은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부를 떼야 한다. 가족관계부에는 한국인과 혼인신고가 된 외국인도 기재가 된다. 하지만 관공서를 비롯한 직장, 학교 등에서는 주민등록등·초본을 요구할 때가 많아 다문화가정은 등·초본과 함께 가족관계부를 함께 제출해야 돼 불편함이 있다.

등·초본 관련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혼인신고를 했음에도 외국인 배우자가 등·초본에 실리지 않는 이유는 주민등록법 때문이다”면서 “외국인은 한국으로 귀화해 주민등록자가 돼야 등·초본에 기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등록법 제6조는 ‘시장·군수는 3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관할구역에 주소를 둔 사람은 등록을 해야 하고, 단 외국인은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한국공항공사가 지원하는 다문화가정 모국방문 후원사업에 선정된 가족들이 25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등·초본 미기재 문제 때문에 귀화를 한 결혼이민자들도 있다. 베트남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윤민아(24·여, 귀화전 이름 팜티 멘)씨는 “등본에 엄마인 내 이름이 없어 우리 아이가 한 부모 가정으로 오해 받는 게 싫었다”면서 “특히 곧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가 엄마 없는 아이로 오해 받으면 친구들과의 관계, 다른 학부모의 시선이 걱정돼 한국국적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한국의 등·초본에 올라갔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자신의 조국이자 친정인 베트남을 외국인 신분으로 방문해야 하는 씁쓸함도 안게 됐다.

결혼이민자를 등·초본에 기재하려면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제15조(주민등록표를 교부할 때 같이 거주하는 외국인의 요청이 있을 때는 별도로 기재한다)에 따라 직접 주민센터(동사무소)를 방문해 따로 요청을 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문제점이 있다.

동사무소에서 직접 등·초본을 떼면서 외국인 배우자의 이름을 넣어 달라고 요청해도 이름이 한국인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들이 실리는 곳이 아니라 맨 아래 알아보기 힘든 곳에 기재된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집이나 사무실에서 등본을 떼는 시대에 일부러 동사무소를 가는 것도 큰 불편함 가운데 하나다.

이승환군의 아버지인 이병을(41)씨는 “인터넷으로 모든 업무를 다 보는 세상에 등본 때문에 동사무소를 일부러 가는 것은 너무 불편한 일이다”면서 “또 막상 동사무소에서 뗀 등본에는 내 아내 이름이 맨 밑에 나와 있어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은 등·초본 미기재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와 불편함도 토로하지만 무엇보다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상실감을 더 호소하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민자 누엔 티탄프엉(34·여)씨는 “내 이름이 없는 등본을 볼 때마다 가족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는데 한국인과 혼인신고까지 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고, 천 티두(28·여)씨는 “베트남의 경우는 내·외국인 상관없이 가족들은 모두 등본에 기재된다. 한국에서 나는 법적으로 남편·아이와 가족인데도 왜 등본에는 기재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행자부는 다문화가정의 이 같은 등·초본 기재 문제는 잘 알고 있고 이런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 되면 개선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주민등록법 개정 논의가 당장은 없지만 당사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제도개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등·초본 기재 문제와 관련해 얼마 전 개선된 게 재혼가정이다. 그 동안 재혼가정의 자녀는 ‘동거인’으로 등·초본에 표기됐었다. 이에 ‘차별 없는 가정을 위한 시민연합’(차가연) 등 시민단체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이달부터 재혼가정 자녀들은 ‘배우자의 자’로 표기된다.

재혼가정 등·초본의 표기 문제가 개선 된 것을 감안하면 다문화가정의 문제 역시 주민등록법 개정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혼가정 등·초본 표기 개선을 이끌어낸 이병철 차가연 대표는 “가족을 표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을 두면 안 된다”며 “다문화가정의 등·초본 문제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고 주민등록법 등의 개정을 통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 광양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방문지도사로 일하는 박선옥(41·여)씨는 “그 동안 다문화가정을 지도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등·초본에 기재가 안 돼 불편하고 속상하다는 것이다”면서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들도 당연히 등·초본에 표기가 돼야 하며, 이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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