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이 콜트·콜텍 노조에 사과한 이유 [더(The)친절한 기자들]

전종휘 2016. 8. 26. 14: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 친절한 기자들]
"강경노조에 기업 망가져" 발언 논란..1년 만에 공개 사과
한국사회·정치권의 극심한 '노조 혐오'도 해소 될 수 있을까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체폐업이 노조 때문이라는 잘못된 사실의 발언으로,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거리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 큰 고통을 준 점에 대해 사과한다. 잘못된 사실 유포된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전국금속노조 콜트·콜텍지회에 사과했습니다. 지난해 9월3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 몰두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 닫은 사례가 많다”며 콜트·콜텍을 공격한 발언이 잘못됐다는 공개 반성문을 쓴 셈입니다.

그의 발언은 불온한 시각도 문제이지만, 사실관계조차 틀렸습니다. 극심한 혐오에 빠지면 ‘사회적 시력’을 잃고 헤맨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일단 노조 쪽은 김무성 전 대표의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회사 경영 때문에 발생한 위기에 마구잡이식 노동자 정리해고가 만연한 관행과 정치권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극심한 노조 혐오 혐의도 해소된 걸까요? 콜트·콜텍 사태의 전말을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콜트·콜텍 사태의 발단은 열악한 노동환경

콜트·콜텍은 통기타와 전기기타를 만드는 전문 회사입니다. 박영호 대표이사가 1973년과 1988년에 각각 설립했습니다. 생산공장은 대전과 인천에 각각 있었습니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가던 회사는 인도네시아(1995년)와 중국(1999년)에 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엔 이들 공장에서 반제품을 만든 뒤 국내에 들여와 완제품으로 만들어 팔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최저임금에 몇십원을 더 받는 수준의 저임금에 허덕였고, 장시간 노동에도 시달렸습니다. 나무로 기타 몸통을 만드는 과정에서 톱밥이 계속 날리는 데도 회사는 장갑과 마스크를 1주일에 1개씩만 지급했다고 합니다. 호흡기 질환자가 속출하고 작업 중 손가락이 잘리거나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노동자가 적지 않았다고 노조는 주장합니다. 회사는 산재 처리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작업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 요구 등을 내걸고 파업을 하는 등 회사와 맞섰습니다. 회사는 2007∼2008년 잇따라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공장을 폐업했습니다. 그리고 기타 생산은 인도네시아와 중국공장으로 전부 돌렸습니다.

2. “예상되는 미래 경영 위기도 정리해고 요건” 황당한 사법부

해고된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부당해고구제신청, 임금지급 청구 등 관련 행정·민사소송이 하도 많아 일일이 소개하긴 어렵습니다. 결론만 먼저 말씀드리면, 2012년까지 이어진 250여명(노조 추산)의 해고자 가운데 복직한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상징적인 장면만 보겠습니다. 2012년 2월 대법원은 콜트·콜텍 노동자 정리해고 사건에 엇갈린 판결을 내놨습니다. 이상훈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콜트 쪽 해고 노동자 사건에선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당시 회사 상황이 노동자를 집단으로 자를 만큼 어렵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회사는 석 달 뒤인 그해 5월 “폐업으로 노동자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며 콜트 노동자들을 다시 해고했습니다.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을 거쳐 서울고법에서 다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콜트 판결을 한 같은 날 안대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콜텍 노동자 24명 사건에선 다른 결론이 나왔습니다. 해고가 위법이라는 원심판결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낸 것입니다. 안 대법관은 이때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인정할 수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불합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유명한 법리를 내놓습니다. 기업들이 지금은 경영상태가 정리해고할 정도로 긴박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악화할 것 같은 경우 노동자를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콜텍 노동자들은 서울고법을 거쳐 2014년 6월 대법원에서 결국 해고가 확정됐습니다.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5달에 16억원의 사건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직후입니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있는 콜트·콜텍 공장은 여전히 기타를 만들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습니다.

3. 사회적으로 지지받은 콜트·콜텍 복직투쟁

해고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습니다. 2008년에는 서울에서 30일간 15Kv 고압 송전탑 농성, 콜텍 본사 점거농성을 했습니다. 독일·일본·미국 등지에서 벌어진 악기 쇼를 찾아다니며 해고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이들의 복직투쟁이 계속 길어지자 나라 안팎의 단체와 예술가들의 지지와 성원이 이어졌습니다. 국내 미술·사진·음악인들의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이어졌습니다. 2013년 12월엔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이끄는 밴드 시나위를 비롯해 한상원·김목경·최이철 등이 ‘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는 제목의 공연을 열었습니다.

앞서 2010년엔 세계적인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해방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기타를 만들다 쫓겨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콜트콜텍 해고무효소송 대법원 기각 선고를 받은 1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4. 해고 노동자 등에 칼 꽂은 김무성

지난해 9월3일 8년 넘은 해고 기간을 가까스로 버텨나가던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등에 ‘망나니의 칼 같은 언어’가 날아와 꽂혔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멀쩡하던 콜트콜텍이 노조의 제 밥그릇 챙기기식 투쟁을 피해 국외로 공장을 옮긴 것처럼 비난했습니다. 그는 전날엔 “공권력을 투입하면 (귀족노조가) 쇠파이프로 두들겨 팼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으면 우리는 (국민소득) 3만불을 넘었다”며 노조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적 발언도 내놨습니다. 그러잖아도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콜트·콜텍의 방종운·이인근 지회장 등 조합원들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비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김무성 전 대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7월 김무성 전 대표가 노조와 합의된 일시에 공개장소에서 노조 쪽에 유감을 표명하라는 강제조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26일 김무성 전 대표의 사과 기자회견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앞서 보수언론들은 김 대표 주장과 비슷한 보도를 했다가 줄줄이 정정보도를 했습니다. <문화일보>는 6월23일치에서 “콜트악기의 폐업은 노조 측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사용자 측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정정보도를 실었습니다. 2015년엔 <한국경제신문>이, 2011년엔 <동아일보>가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했다가 나중에 정정보도를 냈습니다.

금속노조 방종운 콜트악기지회장이 2015년 10월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누리당 당사 맞은 편 농성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강경 노조 때문에 문 닫는 회사가 많다\"는 지난달 3일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며 21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5. 노조 “새누리당사 앞 농성장은 계속”

콜트·콜텍기타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김 전 대표의 사과는) 그간 노동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한 사과이자, 대한민국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사과”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비록 법원 결정에 의한 사과이지만, 1년 만에 사과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과를 계기로 콜트·콜텍 문제 해결에 김무성 의원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콜트·콜텍 노조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농성장을 계속 유지할 계획입니다. 그는 “문제의 발언 당시 새누리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오늘의 사과는 대표직을 그만둔 김무성 의원의 개인적 발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공식 사과와 함께 국회 차원의 사태 해결 노력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콜트·콜텍 복직투쟁은 이날로 3495일째로,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에 해당합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기자회견 영상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