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마천루의 포도밭 콘서트홀 / 조은아

입력 2016. 8. 25. 19:16 수정 2016. 8. 2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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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포도밭처럼 생긴 콘서트홀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빈야드 스타일의 객석 구조였다. 중앙의 무대를 포도밭처럼 포근히 감싸 배치한 덕택에 대부분의 객석은 사각지대 없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대에서 태동한 소리는 포도밭 객석을 향해 골고루 전달되었다. 어떤 자리에서도 계급의 차이 없이 동등한 음향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이 연주장의 큰 장점이었다.

포도밭 콘서트홀은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치솟은 마천루를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 123층짜리 마천루는 창업주의 오래된 숙원이라 했다. 구름에 휩싸인 빌딩을 비행기가 채 피하지 못할까 권력자는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며 활주로 자체를 틀어버렸다. 마천루의 층수가 올라갈수록 괴담도 널리 퍼졌다. 주변의 호수에 물이 말라가는데다 땅이 가라앉고 있다는 우려 탓이었다. 그래서일까. 비행기·헬리콥터의 공중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박스 인 박스’(BOX-in-BOX) 구조를 도입했다는 소식이 인상적이었다. 외부 공간을 이중으로 감싸면서 내부 구조를 완전히 분리하였으므로, 소음과 진동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마천루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상쇄해주었다.

포도밭 콘서트홀은 인구 1천만의 메가시티 서울이 28년 만에야 보유하게 된 2번째 ‘클래식 전용홀’이다. 지금껏 서울 시내에서 교향악 연주에 최적화된 음향과 시설은 88올림픽에 맞춰 건립됐던 예술의전당 단 한 곳에 불과했다. 베이징은 8곳, 도쿄는 15곳의 클래식 전용홀이 있으니 서울은 꽤 단출한 실정이었다. 콘서트홀은 한 도시의 문화적 인프라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창조의 구심점으로 기능해왔다. 애초 농산물센터였던 영국의 코번트가든은 공연장이 들어서면서 지역 경제가 덩달아 살아났고, 일본의 주류 회사인 산토리는 전문 공연장 운영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상승시켜 대학생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기업 상위 랭킹에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서울의 포도밭 콘서트홀도 지역경제와 기업 이미지를 살리는 동시에, 시민의 일상에 예술이 스미게 할 수 있을까.

그동안 공연계는 문화예술 지원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마천루 기업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 포도밭을 삐까뻔쩍 일구는데 들인 초기 투자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연간 300억원을 상회할 막대한 운영비용은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티켓 판매와 대관 수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테니 적자를 감수할 배포, 아니 더 정확히는 사회공헌을 위한 사명감이 관건이었다. 급기야 개관 5개월을 앞두고 포도밭 책임자가 사퇴를 발표한다. 적자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마천루의 입장과 이윤추구보다는 문화사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포도밭의 주장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천루는 공연계에서 뼈가 굵은 전임대표 대신 광고 전문가를 새로운 책임자로 영입했다.

이제 막 첫 시즌을 시작한 포도밭 콘서트홀의 라인업은 매머드급 공연으로 풍성하다. 8개월 만에 애틋하게 해후한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우주의 대폭발을 그린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초연해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연주자만 179명이 등장한 40분짜리 대곡이었다. 서울시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코리안 심포니는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연주한다. 국내 공연에선 기껏해야 최대 500명이 무대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제목 그대로 1000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처럼 마천루에 어울릴 법한 대규모 공연들이 휘황찬란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한 음악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6년여 동안 마천루의 완공을 위해 피땀 흘렸던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뜻깊은 공연이 기획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영웅들의 땀과 열정에 보내는 음악회’란 제목을 마주하는데, 공사 도중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 63살의 인부가 떠올랐다. 마천루에 매몰되지 않을 포도밭 콘서트홀의 건강한 성장을 그와 함께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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