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이면도로.. 보행 중 사망사고, 大路보다 많다

문현웅 기자 2016. 8. 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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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폭탄' 되지 맙시다] [3] 유명무실한 속도제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지기도 보행자·차량 뒤섞인 곳 많아 "제한속도 40~50km로 낮춰야"

23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뒤 이면도로. 길이 200m가량 도로 곳곳에 '시속 30㎞ 제한 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차량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쌩쌩 달리고 있었다. 회사원 신모(44)씨가 폭 4m쯤 되는 이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널 때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신씨 바로 앞에서 '끽'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놀란 신씨가 승용차 운전자에게 다가가 "시속 30㎞ 제한 구역이라는 것이 안 보이느냐"고 따지자 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본지가 이날 경찰청 소속 교통경찰관과 함께 스피드건을 갖고 이 도로를 지나는 차량 100대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62대가 제한 속도(시속 30㎞)를 넘겼다. 제한 속도의 2배인 60㎞ 가깝게 달리는 차량들도 있었다.

이 도로를 포함한 주변 이면도로들은 지난 2011년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됐다. 생활도로구역은 주택가와 상가 지역에서 사고가 잦은 이면도로를 골라 속도 제한(시속 30㎞)을 걸어놓은 곳이다. 그러나 과속하는 차들 때문에 이곳 보행자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좌우를 살피며 걷고 있었다.

생활도로를 비롯한 이면도로는 대부분 폭이 9m 미만으로 좁고, 인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 다녀 사고 위험이 크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 4621명 가운데 55.9%에 달하는 2586명이 이면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지난해 8월에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 이면도로를 걷던 초등학생(8)이 장모(35)씨가 모는 15t급 덤프트럭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보행자들은 폭이 좁은 도로에서 차량들이 천천히 다닐 것이라고 생각해 방심하는 반면, 차량들은 빨리 큰 도로로 나가기 위해 속도를 높이기 때문에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면도로에서는 길가를 따라 걷는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2010~2014년 5년간의 이면도로 대인(對人) 사고 3만5431건을 분석한 결과, 길가로 걷다가 당한 사고가 50.2%였고, 길을 횡단하다 당한 사고가 49.8%였다. 반면 대로(大路)를 포함한 전체 도로에서는 길을 횡단하다 당한 사고가 68.9%로 길가에서 당한 사고(31.1%)의 2배를 넘었다. 이 연구소 이수일 박사는 "이면도로는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 차량들이 마주 오는 차를 의식해서 오른쪽 길가 쪽으로 최대한 붙는 경향이 있다"며 "차량 조수석 사이드미러가 보행자 왼쪽 어깨와 부딪히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면도로 사고가 빈발하자 경찰은 2010년부터 생활도로구역을 도입했다. 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해 사고를 막자는 취지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전국 277곳이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생활도로구역에서 과속을 할 경우 일반 도로와 같이 3만~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홍보와 교육 부족으로 생활도로구역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운전자가 많다. 경찰청 관계자는 "교통경찰 인력이 부족해 전국 수만 곳에 달하는 이면도로와 생활도로구역의 과속을 강력하게 단속하기 어렵다"며 "이면도로에 들어서는 운전자들은 '어린이보호구역'처럼 속도를 줄여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면도로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고 시속이 60㎞로 돼 있는 제한속도를 낮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생활도로처럼 제한속도를 30㎞로 낮추면 인명 피해가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 도로교통안전 파트너십(GRSP)에 따르면, 보행자가 시속 50㎞로 달리는 차량에 부딪혔을 때 치명상을 입을 확률은 80%가 넘지만, 시속 30㎞ 차량에 부딪혔을 때는 그 확률이 20% 이하로 낮아진다. 국내에서도 경찰청이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전국 118개 이면도로의 제한 속도를 시속 60㎞에서 40~50㎞로 내린 결과, 해당 도로의 보행자 교통사고 건수가 전년 대비 17.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면도로

대로(大路)를 뜻하는 '전면도로'의 반대말. 큰 도로에서 한두 블록 떨어져 있는 도로 가운데 폭이 9m 미만인 좁은 도로를 뜻한다. 인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데다 중앙선 표시가 안 돼 있는 곳이 많아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생활도로구역

보행자와 차량이 섞여 다니는 상가 밀집지역·주택가 이면도로에 설치되는 시속 30㎞ 제한 구역.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과속 방지턱과 횡단보도 등 차량 속도를 줄이는 시설들이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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