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라니.. 캄보디아선 복에 겨운 소리죠

주희연 기자 2016. 8.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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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서 8년 만에 석·박사 마친 캄보디아 女수학박사 1호 소니 찬] 모교 프놈펜대 교수로 금의환향 "고국 아이들 배울 기회조차 없어.. 다음 세대 고등교육에 힘 보탤 것"

"한국에는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말이 있다지요? 캄보디아엔 수학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이 많아요."

지난 23일 서울 서강대에서 만난 소니 찬(40)씨가 서툰 한국말로 띄엄띄엄 말했다. 그녀는 '캄보디아 여성 1호 수학박사'다.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찬씨는 2009년 한국 유학길에 올라 서강대 수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밟았다. 한국에 온 지 8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가 모교(母校)인 왕립 프놈펜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돼 오는 9월부터 학생들을 가르친다.

1970년대 공산주의 독재 정권이 지식인 170만여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 사건으로 캄보디아엔 학자가 크게 줄었다. 특히 수학 분야에선 여성 박사 학위 소지자가 아무도 없었다. 찬씨는 "부모님 세대는 킬링필드를 겪으면서 자녀 교육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며 "다음 세대가 선진국처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찬씨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약 300㎞ 떨어진 바탐방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오렌지·바나나·사탕수수 농사를 짓고,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다섯 남매의 장녀로 어렸을 때부터 가게 일을 도왔다는 찬씨는 "하루 수입, 물건 재고를 계산하다 보니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왕립 프놈펜대에 다닐 때는 1년에 한 번 고향에 다녀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고향에 돌아가 고교 수학 교사로 7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그녀는 모교에 수학과 석사과정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왕립 프놈펜대에서 애슐리 에번스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학비 마련을 위해 번역 등 소일거리를 하면서 공부에 남다른 열의를 보인 찬씨를 눈여겨본 에번스 교수는 예수회 한국관구를 통해 그녀를 서강대 석·박사과정 전액 장학생으로 추천했다.

캄보디아에 가족들을 두고 온 찬씨는 "지난 8년간 고국에 딱 네 번 다녀왔다"고 했다. 서강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온 터라 비행기 삯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유학 중반이 지나서야 고향집에 인터넷이 설치돼 무료 영상통화로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힘겨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지도교수님들의 격려와 채찍질에 다시 마음을 잡았다"고 말했다.

찬씨를 가르친 서강대 임경수 교수는 "어려운 상황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나라를 대표한다는 심정으로 독하게 공부한 제자"라고 했다. 그는 찬씨가 졸업식에 참석하러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비행기 티켓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녀가 한국에서 연구한 논문은 현재 대학수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대한수학회보'에 게재 승인을 받은 상태다. 작년 5월부터는 캄보디아 교육 당국이 추진하는 수학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참여해 왔다.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캄보디아 소수민족과 여성들을 위해 더 쉽고 재미있는 수학 교재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캄보디아에서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될 날이 곧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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