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도시재생 정책, 젠트리피케이션 부른다

정한결 기자 2016. 8. 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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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할렘 사례 '반면교사'로 ..지자체·정부 각 부처 주도면밀한 정책 협조를
주도면밀한 도시재생 정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가리봉동 벌집 리모델링 오프닝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사진=뉴스1

 

미흡한 도시 재개발 정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악화시킨다. 서울시는 “2015년 서울시 도시재생전략계획”에서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이 ‘개발’과 ‘재개발’에서 ‘재생’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도시 재생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 제고, 자생적 성장기반 확충, 지역공동체 회복 등 삶의 질 향상”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뉴욕 할렘 사례를 보면 섣부른 도시재생은 젠트리피케이션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서울시도 정책을 내고있지만 정부 다른 부처들도 협력할 필요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권이나 거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도시 구역 본연의 정통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샤론 주킨 미국 시립대 교수는 저서 ‘무방비 도시’에서 “할렘은 미국 주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급속히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됐다”고 평했다.

 

할렘은 1970년대부터 마약거래와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악명 높았다. 뉴욕타임즈는 1978년 한 기사에서 버려진 술병, 폐가, 가난한 흑인들, 마약, 범죄라는 단어로 할렘을 묘사했다. 집주인들은 월세를 받으며 수익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못하고 부동산 소유권을 포기했다. 1980년대에는 뉴욕시가 할렘 지역 대다수 땅을 입수했다.

 

1990년대 들어서 미국 정부가 할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어퍼맨해튼강화지역(UMEZ)이라는 비영리기관을 설립했다. UMEZ는 모두가 들어오길 꺼려하는 할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업체들을 설득하며 막대한 지원금을 약속했다. 개인 사업장도 있었지만 프랜차이즈 산업들도 이때 할렘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뉴욕시는 2008년에는 1층에 예술, 문화관련 상점을 열게만 한다면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허가를 내주기도 했다. 상점 허용 범위 안에는 대규모 영화 프랜차이즈 사업도 포함되었다. 미국 정부가 노력한 결과 할렘은 범죄의 온상인 게토에서 중산층 흑인들과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는 구역으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원래 거주민들이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떠나가게 되었고, 남아있는 거주민들은 “거리의 정체성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주킨 교수는 “할렘을 게토에서 중산층 지역으로 바꾸고 싶은 요구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할렘이 게토로서 가졌던 근본적인 문제인 빈부격차, 실업율, 교육·​​의료시설 부족 등을 바꾸지 못했다”며 “할렘의 낙후된 물리적 주거환경을 바꾼다는 명목아래, 그 역사와 정통성을 지우며 거주민들을 몰아내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2014년 가리봉동 일대를 낙후지역으로 분류하고 도시재생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동포가 유입됨에 따라 “생활 문화차이에서 오는 갈등, 각종 범죄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서울시가 할렘의 전처를 밟지 않고 가리봉동 프로젝트에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꼼꼼히 짜여지지 않은 정책들은 할렘에서처럼 근본적인 문제 개선이 아닌 부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서울시 측은 다른 정부 부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보고서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효과를 고려해 건축규제 완화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재생정책과 박현정씨는 “서울시가 내놓은 정책안 중 서울시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서울시도 건축부문 조례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국토부에 건의를 넣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진행되는 속도가 문제다.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 해야 한다”면서 “서울시는 지금 서울 각 구역에서 어떻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지 연구를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노후주택 수리, 소형주택 신규 공급, 불량도로 정비, 중국동포와의 관계개선 등을 통해 물리적 주거환경 개선 및 젊은층의 유입을 도모할 예정이다. 지난 19일 주민을 위한 재생산업의 핵심시설로 만들겠다며 구로공단 근로자들의 숙소였던 벌집 주택을 매입하기도 했다. 

정한결 기자 hj@sisajourn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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