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시, 국산헬기 원천배제 논란속 입찰강행

황의준 입력 2016. 8. 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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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온 파생형 제주소방헬기 렌더링 이미지. 사진제공=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리온 의무후송전용헬기 초도비행

시, 항속거리 800km 이상·탑승인원 18인승 등 수리온 '넘는' 조건 요구
KAI 등 업계 "이탈리아산 구매 위해 과도히 문턱 높여 국산 의도적 배제"
항공산업 육성 외치는 정부정책에도 정면배치 돼 논란 확산

【서울=뉴시스】황의준 기자 = 서울시 119 특수구조단이 특정 외산 헬기 구매를 위해 국산 헬기 수리온(KUH-1)의 경쟁입찰을 원천배제하고 있다는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서울시가 별다른 참여요건 변경 없이 입찰을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소방본부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수리온이 애초 군용으로 개발된 만큼 도심 내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다.

반면 1조3000억원을 들여 수리온을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수리온은 육군, 경찰청, 산림청, 제주소방 등 유수 군관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헬기"라고 반박하면서 입찰 참여 기회마저 박탈 당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서울시가 가진 상징성을 감안했을 때 향후 있을 지방자치단체의 소방헬기 구매사업에서도 수리온이 외면당할 가능성은 물론 수출에도 큰 애로를 겪을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증폭되는 특정 외산 헬기 도입 시도 의혹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전날 소방헬기 구매 사업과 관련한 입찰공고와 입찰 제안요청서를 냈다. 서울시의 요구조건은 헬기의 항속거리가 800km 이상, 탑승인원 18인승 이상 등이다.

서울시는 외자조달 방식으로 34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소방헬기 1대를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입찰에 참여할 기업은 오는 10월 5일까지 입찰서를 내야 한다.

하지만 수리온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입찰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요구하고 있는 자격조건에 수리온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업체 의견 수렴 기간 동안 27건의 의견을 게재했지만 부분수용을 포함해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은 5건에 불과했다. 의견게재는 입찰참여 희망 업체가 발주처를 대상으로 입찰 관련 특정조건을 변경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항공우주산업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이탈리아 아구스타 웨스트랜드(AW)가 제작한 AW189 기종을 구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입찰 문턱을 과도히 높인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는 애초부터 서울시의 사전규격이 AW189 성능에 맞춰 제작됐고 이같은 점 때문에 AW가 의견게재를 한 것도 2건에 불과한 것 아니겠냐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항공우주산업과 AW 외 입찰을 노리고 있는 에어버스의 경우도 30건의 의견을 게재했다. AW의 의견은 2건 모두 수용됐고 에어버스의 경우는 22건이 받아들여졌다.

만약 AW189 기종이 최종 낙찰된다면 이 헬기를 몰게 될 조종사들은 이탈리아로 연수를 가 교육을 받게 된다. 반대로 수리온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일련의 과정이 국내에서 이뤄진다.

◇ "수리온, 임무 수행 지장 없어"…타 지자체 조건과도 차이

자동차로 비유하면 수리온은 국산 중형자동차이고 AW189는 BMW, 벤츠 등과 같은 독일산 대형세단이다. 항속거리, 탑승 인원 등의 기본 스펙만 따지자면 AW189가 우세할 수밖에 없으나 수리온의 성능으로도 안전임무를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서울시는 사전규격을 내면서 헬기의 항속거리가 800km 이상이 될 것과 18인승 이상이 될 것을 각각 요구했다.

하지만 수리온의 경우 항속거리가 768km인데 서울시 소방본부의 활동범위가 서울시에 제한된다는 사실과 최대 14명의 인원이 탑승 가능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임무 수행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것이 한국항공우주산업과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했던 항속거리는 지난 2010년 인천소방 730km, 2013년 충남소방 500km, 2015년 강원소방 750km, 제주소방 630km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해도 서울시의 조건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또 '국토교통부에 의한 형식증명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과 '카테고리 A등급을 획득해야 한다'는 요구 또한 노골적으로 수리온을 배제하기 위한 요건이라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수리온은 군용헬기로 개발된 만큼 국토부가 아닌 방위사업청의 형식증명을 갖고 있다. 사실 이같은 문제는 산림청, 제주소방청 헬기 입찰 때도 있었는데 당시는 수리온이 국토부의 특별감항인증 취득을 통해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전국 9개 소방항공대가 5개 기종, 총 12대의 헬기에 대해 국토부의 특별감항인증을 받아 작전에 투입하고 있는데 서울시는 오로지 국토부의 형식증명 만을 고집하고 있다.

서울시의 카테고리 A등급 요구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수리온은 공식적으로 카테고리 B등급에 분류돼 있다.

카테고리 A등급은 헬기에 장착된 엔진 두 개 중 하나의 엔진이 고장 났을 경우 착륙하기에 안전한 지역까지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B등급의 경우 한쪽의 엔진이 정지하는 경우 체공능력을 보증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계획되지 않은 착륙을 할 수 있다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같은 조건은 민수용 헬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군용헬기 수리온은 애초부터 카테고리 등급에 해당 사항이 없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굳이 따지자면 수리온은 설계과정부터 카테고리 A등급의 설계요구사항을 충족하는 헬기이지만 개발 당시 8.7t급의 기본요구사항인 카테고리 B등급의 항목만 입증했기 때문에 B등급으로 분류된 것"이라면서 "추가시험을 통해 언제든 카테고리 A등급의 입증이 가능하지만 물리적 일정상 입찰 전까지 이를 완료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정부 "항공우주산업 육성" 정책과도 정면 배치

서울시의 이같은 움직임은 정부가 항공우주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적극 육성을 약속한 것과도 정면 배치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KAI의 미국 수출형 훈련기 공개 행사에 참석해 "정부는 지속적으로 민군 기술교류를 확대하고 해외수출을 적극 지원해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최대한 뒷받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외면당하는 국산 헬기를 과연 어느 나라가 수입하려 들겠냐고 업계 관계자들은 탄식한다.

특히 전국 소방당국의 대표와도 같은 서울 소방본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향후 헬기 도입 사업에서도 수리온이 고배를 맞을 확률은 더욱 높아 보인다.

실제 서울시에 앞서 강원 소방본부가 서울시와 같은 이유를 들며 AW사 제품을 최종 낙찰한 바 있고 부산시도 최근 카테고리 A등급 획득을 이유로 수리온의 입찰 참여를 배제시키고 있다.

반면 육군과 경찰청에서는 이미 수리온이 60대 이상이 운용되고 있으며 산림청과 제주소방청도 지난해 계약을 체결해 내년 인도받을 예정이다. 특히 육군에서는 의무후송전용헬기로 개조돼 소방헬기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수리온은 민·관·군·산·학·연 등 175개 기관이 2006년부터 2012년까지 1조300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6년간 개발한 국산 첫 다목적 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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