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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찍히면 끝장" 공무원 겁주는 정책감사 최소화해야

국책사업 정권따라 감사결과 정반대로 공무원 "감사원 감사 필요" 6%에 그쳐
헌법정신에 맞게 회계감사에 주력해야
◆ 공무원 바로 세우기 ④ ◆

사진설명
산업통상자원부 과장 K씨와 산업단지공단 본부장 L씨는 지난해 10월 "르노삼성 서부사업소는 제조업체"라는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받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14년 10월 받은 정직 등 중징계가 풀리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이들은 서울 가산동 지식산업센터에 르노삼성 사업소를 입주시켰다는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중징계 요구를 받았다.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체를 입주시키는 특혜를 줬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 판결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감사원은 법원 판결을 무시했다. 산업부 장관이 K씨와 L씨를 대신해 신청한 재심 청구를 올해 3월 기각한 것이다. "서비스 업종으로 본 감사원 결론이 맞는다"는 입장이 되풀이됐다.

K씨와 L씨는 억울했지만 별수 없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재판 결과, 공무원의 행정행위가 타당했다는 결론이 나도 소용없다"며 "감사원에 찍히면 그걸로 끝인 상황이니 당연히 감사를 신경 쓰게 되고 논란이 될 만한 정책은 하지 않는 복지부동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감사 포비아(phobia·공포증)'에 걸려 있다. 감사원의 정책 감사에 걸려 징계를 당할까 겁을 내는 것이다. 법령에 맞는지 애매하다 싶은 일은 차일피일 미루고 '복지부동'한다.

한 전직 차관급 인사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정책은 사소한 정책뿐"이라며 "사후에 감사원이 논란되는 부분을 꼭 집어내 '잘못했다'는 식으로 감사를 하면 어떤 공무원이 적극 행정을 하겠는가"라고 한탄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공무원이 새롭게 창의적인 것을 하려고 해도 감사원에서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드는데 어떻게 공무원이 소신껏 일하겠느냐"고 개탄했다.

감사원은 심지어 과거 감사 결과를 뒤집기까지 한다. 4대강 사업 감사가 대표적인 예다. 2011년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니 2013년에는 사실상 총체적 부실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수질 관리 기준이 미흡하며, 수질 예측이 불합리하고, 수질 관리 방법이 부적정하다며 환경부를 질책했다.

그러나 2014년 말 총리실 산하 4대강사업조사평가위원회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낙동강 상류는 수질이 악화됐으나 낙동강 중하류와 한강·금강은 수질이 개선됐으며 홍수 위험지역의 93.7%에서 위험도가 줄어들었고 수질예측모델 선정도 적절했다"는 것이다.

한 전직 차관은 "감사원 말대로라면 지금쯤 한강 수질은 엉망이 됐을 것"이라며 "2년 새 정반대 감사 결과를 내놓고 공무원을 질책하는데 어느 공무원이 국책사업을 하겠다고 나서겠는가"라고 한숨을 쉬었다.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은 감사원이 '헌법정신'에 맞게 회계감사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헌법 제97조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이 감사원의 기본 업무라는 뜻이다. 이에 맞게 감사원을 운영해야 공무원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게 전직 관료들의 주장이다.

외국의 감사원은 한국과 크게 다르게 운영된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감사원이 정책의 내용을 따지는 감사를 하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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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과거 감사원이 23개 주요국의 감사원 업무를 조사한 결과, 재무·회계 감사가 주류였으며, 성과 감사가 뒤를 이었다. 성과 감사는 당초 정책 목표 대비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분석하는 감사로서 한국에서는 연간 2~3건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 감사원은 '특정 감사'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정부 정책을 콕 집어서 감사를 실시한다. 법령 해석은 타당했는지, 정책 판단의 기본이 된 데이터는 적절했는지를 따진다.

한 전직 차관은 "정책이 추진된 배경과 상황 논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감사원의 비전문가들로부터 법적 절차를 따지는 감사를 한두 차례 받고 나면 일할 맛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더욱이 특정감사 건수는 2006년 43건에서 지난해에는 97건으로 급증했다. 대상 기관 수도 1086곳에 이르렀다.

감사원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은 매일경제가 정부 부처 허리 격인 5·6급 공무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감사원의 감사가 업무 추진 시 필요하다는 응답은 6%에 그쳤다.

반면 지나친 간섭으로 업무효율이 떨어진다며 감사원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16%, 아예 불필요하다는 응답도 16%였다.

[기획취재팀 = 김인수(팀장) / 조시영 차장 / 고재만 기자 / 문일호 기자 / 문지웅 기자 / 백상경 기자 / 정석환 기자 / 윤진호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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