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메달 색깔보다 땀의 무게에 박수

황순민 2016. 8. 2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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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아니라도 영웅" ..올림픽 자체를 즐기는 모습 보여최선 다한 선수들에 격려 메시지 줄이어韓, 메달 21개 11위

◆ 리우올림픽 ◆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흘린 뜨거운 눈물은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선수들은 꼭 승자가 아니더라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리듬체조 손연재, 레슬링 김현우, 태권도 이대훈, 여자배구 김연경 선수. [올림픽공동취재단]
22일 오전 막을 내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내 종합순위 10위 안에 들겠다는 목표를 사실상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은 메달 수와 상관없이 올림픽 자체를 '축제'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선수들도 꼭 승자가 아니더라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각 종목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보내왔고, 국민은 그들이 흘린 땀방울과 투혼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한국은 폐막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냈다. 금메달 9개로 9위에 오른 2004년 아테네 대회 이후 '10-10'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시민의식은 한층 성숙됐다는 평가다.

두 번째 올림픽에 도전한 손연재(22·연세대)는 2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볼·후프·리본·곤봉 4종목 합계 72.898점으로 4위에 그쳤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는 무대에서 노메달에 그친 뒤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지만 국민은 오히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비록 기대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으나 리듬체조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올림픽 메달을 바라볼 만한 선수가 나온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는 반응이다.

경기를 시청한 누리꾼들은 "정말 수고 많았고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니까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한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누리꾼은 "4위라도 한국을 넘어 아시아인으로서 역대급 위업이 아니냐"며 "러시아와 동유럽이 독식하고 있는 리듬체조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라고 했다.

손연재는 경기 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어떤 금메달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며 "경기가 끝나고도 사실 결과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진심을 다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는 사실에, 또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들을 다 보여줬단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올림픽은 저 혼자만의 올림픽이 아니라 저와 함께해준 모든 분들의 올림픽이었던 것 같아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며 행복감을 전했다.

태권도 세계랭킹 1위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 8강전에서 고전 끝에 요르단의 복병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게 8대11로 패하며 금메달의 꿈이 좌절됐다. 하지만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품격 있는 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메달보다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세계랭킹 40위 선수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4년간 피땀 흘려 준비한 목표가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잠시 아쉬움을 표시한 이대훈은 이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아부가우시에게 악수를 청하며 그의 손을 직접 들어주고 박수까지 쳐주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이대훈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8강에서 떨어져) 속상했다. 하지만 승자가 나타났을 때 패자가 인정을 못하면 승자의 기쁨이 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스포츠맨십에서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인생을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 하나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바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며 "스포츠를 떠나 각 분야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어하고 그 과정에서 좌절도 많이 겪는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될 말"이라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자신의 SNS를 통해 "미련을 갖고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힘든 감정을 한 번 억누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세가 더 멋지다"고 찬사를 보냈다. 대학생인 강세현 씨(25)는 "이대훈 선수를 보며 결과와 무관하게 스포츠 정신이 주는 감동이 있음을 깨달았고, 이대훈 선수가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레슬링에서는 김현우(28·삼성생명)가 석연치 않은 판정 속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낸 것에 대해서도 국민은 그 어떤 메달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김현우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16강전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에게 5대7로 아쉽게 패했다.

경기 종료 3초를 남겨 놓고 3대6으로 뒤진 상황에서 4점짜리 가로들기 기술을 성공시켰지만 2점밖에 인정받지 못해 억울하게 패했다. 비디오 판독 이후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고 도리어 판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벌점 1점을 받으며 고개를 떨궜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갈 만한 상황에서도 김현우는 패자부활전에서 팔이 빠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해 보소 스타르세비치(크로아티아)를 제압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억울함과 기쁨이 섞인 눈물을 흘리며 태극기를 펴고 절하는 김현우의 세리머니는 금메달 못지않은 감동을 줬다.

경기를 지켜본 누리꾼들은 "억울한 판정에도 부상한 몸으로 기꺼이 메달을 따내는 모습에서 대단한 정신력을 느낄 수 있었다"며 "메달 색깔이나 여부를 떠나 악조건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실력과 투혼만큼은 이미 금메달"이라며 팔이 탈골된 상태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정신력에 찬사를 보냈다.

21개의 메달을 따낸 선수단은 메달 수로는 총 33개의 메달을 수확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28년 만에 최저 기록을 냈다. 하지만 국민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고 스포츠 정신을 되새기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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