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파원J] "추천했습네다" 北 선수도 움직인 유승민의 진심

김지한 2016. 8. 2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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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리우 올림픽에서 경기장이 아닌 바깥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탁구 영웅' 유승민 삼성생명 코치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유 코치는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34·독일), 수영의 다니엘 지우르타(27·헝가리), 육상의 옐레나 이신바예바(34·러시아)와 함께 당선됐는데 총 581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544표를 얻어 하이데만(1603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선거에 나선 23명 후보자 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이신바예바(1365표)마저 밀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유승민 삼성생명 코치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됐다. 김지한 기자
선수위원 하면 일반 IOC 위원과 동등한 자격을 가질 정도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당선된 4명은 8년 임기로 2024년 8월까지 활동합니다.

톡파원J가 만난 유 코치는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동안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이룬 값진 성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를 축하하는 메시지 때문에 핸드폰에선 쉴 새 없이 진동이 울렸습니다. 그는 "모두 나를 응원해준 감사한 분들이다. 밤을 새서라도 일일이 모두 응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달 동안 아내와 두 아들이 보고 싶었다. 돌아가면 아들에게 장난감 사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탁구계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습니다. "탁구대표팀이 메달을 못 따서 많이 아쉬웠지만 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소식을 전해주게 됐다"면서 "선거 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끔 배려해준 삼성생명 탁구단에도 감사하다. 현역 코치인데 내가 맡고 있는 여자팀 선수들을 많이 돌봐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습니다.

유 코치는 지난해 7월 "약소국을 대변하는 선수위원이 되겠다"며 대한체육회에 IOC 선수위원 후보 출마를 신청해 체육회 심사에서 사격 진종오(37), 역도 장미란(33) 등을 제쳤습니다. 이어 지난해 12월 IOC의 전화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선될 거라고 확신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낮은 인지도' '경험 없는 초보자'라는 편견이 따라붙었죠.

유 코치는 "안될 거라는 말에 서운했던 건 맞다. 그럴 때마다 '멋지게 해보자'는 식으로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24일부터 투표 마감일인 17일까지 총 25일동안 자신만의 전략으로 맞섰습니다. 무조건 발로 뛰기였죠.
이번에 당선된 4명의 IOC 선수위원. 왼쪽부터 옐레나 이신바예바·다니엘 지우르타·브리타 하이데만·유승민 [사진 유승민 IOC 선수위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5시간씩 유세 활동이 가능한 선수촌 국기광장에서 지나가던 선수들을 일일이 만났습니다. 총 375시간 동안 선수촌을 누볐습니다. 직접 만난 사람만 누적해 2만여명을 넘겼습니다. 그는 "서울 명동에서 아무도 모르는 수만명의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기분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IOC 규정상 선수위원 선거 공식 책자 한 장만 갖고 자신을 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거나 패한 선수가 보이면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죠. 유승민은 "100명이 지나가면 50명 정도는 지나쳤다. 인사를 받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생일(8월5일) 아침엔 벌에 쏘여 응급 치료를 받았습니다. 점심·저녁은 도시락이나 햄버거로 떼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하루가 이렇게 길게 느껴졌던 게 처음이었다. 두렵고 외로운 싸움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가끔 톡파원J가 선수촌 앞 국기광장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땀 범벅이었습니다. 얼굴이 타고 살도 빠졌습니다.

그때마다 유 코치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강문수(64) 탁구대표팀 총감독에게 배운 '한 번 더(one more)'를 머릿속에 새겼습니다. 그는 "선수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1분이라도 더 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부딪혔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했고, 인사말도 15개 국어나 익혔다. 그는 "피지 럭비 선수들과 인사하기 위해 피지의 인사말(bula)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유 코치가 전한 진심은 서서히 통했습니다. 특히 북한 선수도 힘을 보탰습니다. 유 코치는 "북한 다이빙 선수 3명에게 인사를 하면 반갑게 받아줬다. 나중에 투표하고 와서 '추천했습네다'라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은 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설명하니까 마음을 열더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적같은 IOC 선수위원 당선은 탁구 세계 최강 중국을 무너뜨리고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쾌감과 비슷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탁구장에 가면 많은 사람들의 사진과 사인 요청을 받고, 일일이 응해주고 있습니다. 유 코치는 "기적은 묵묵히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다.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 배운 게 많았고, 승리하게 돼 울컥했다"고 말했습니다.

문대성 선수위원이 직무정지됐고, 이건희 위원의 와병으로 스포츠 외교 공백이 우려됐던 한국은 유승민의 당선으로 최소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유 코치가 꿈꾸는 IOC 위원은 "모든 선수가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갖게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수 유승민의 눈빛이 날카로웠다면 선수위원 유승민의 눈빛은 따뜻하게 모든 선수를 보듬어주는 것"이라는 그는 "임기를 마치면 일반 IOC 위원에도 도전해보겠다. 모든 선수들의 박수받는 선수위원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꼭 빛나는 선수위원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리우 취재팀=윤호진ㆍ박린ㆍ김지한ㆍ김원 중앙일보 기자, 피주영 일간스포츠 기자, 이지연 JTBC골프 기자, 김기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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