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인간의 먹이사슬에서 빼도 될까요?읽음

백철 기자

동물보호법과 축산법 사각지대서 도축… 동물보호단체 “늦기 전에 법으로 막아야”

8월 5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동물보호단체 카라 주최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 연합뉴스

8월 5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동물보호단체 카라 주최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 연합뉴스

동물보호 운동가들 사이에 ‘기승전개고기’란 말이 있다. 동물복지, 동물권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개고기 찬반논쟁으로 흘러서 진흙탕 싸움으로 모든 게 흐지부지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개고기를 먹는 건 아니다. 개 식용을 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개 식용은 한국인의 고유문화라는 의견을 지지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기에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늘 개고기 논쟁에 발목을 잡혀 왔다.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ARA)는 이런 현실을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지난 8월 5일, 카라는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개회사에서 임순례 카라 대표는 “문화상대주의라는 덫에 걸린 한국의 개 식용 문제에 ‘국제’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답보상태인 개 식용 문제를 더 이상 소극적으로 방어하기에는 개 식용 근절을 염원하는 시대적 요구가 너무나 커져만 가고 있다”고 밝혔다. 카라는 이번 콘퍼런스가 개 식용 금지를 내세운 최초의 국제 콘퍼런스라고 밝혔다.

개 식용 금지를 내세운 국제 콘퍼런스
8월 5일의 콘퍼런스는 머지않은 미래에 개 식용 자체를 불법화하는 법안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동물복지 국회포럼 소속인 박홍근·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콘퍼런스에 참가해 축사를 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직접 기조발제자로 나섰다. 이 의원은 조만간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이 개정안에 개 식용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퍼런스에서 이 의원은 “저는 우리나라의 개 식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며 개고기 합법화론에 대해서는 “한 번 제도로 합법화가 되면 ‘개는 먹어도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정착될 수 있고, 이후에 개선해 나가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시대가 변했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등 개 식용 반대여론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5명 중 최근 1년간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에 그쳤다. 개 식용을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자는 44%로 긍정 여론보다 7%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갤럽 여론조사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들이 ‘기승전개고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도 읽을 수 있다. 남성의 경우 모든 연령대에서 개 식용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약간 더 높았다. 직업별 여론의 경우, 주부들은 개 식용 반대 여론이 62%로 찬성 여론(25%)의 2.5배 가까이 됐다. 반면, 여타 직업군(화이트칼라, 블루칼라, 자영업자, 학생)에서는 찬반 여론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들도 당장 개 식용을 전면적으로 불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현행법으로도 개 식용은 충분히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개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러 가지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지만, 정부가 제대로 단속에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고기가 사실상 허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위반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도구나 약물을 사용해 상해를 입히거나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피해가 가는 경우가 아닌데도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도 금지다. 다만 같은 법 10조에 의해 축산물 위생관리법 등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죽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동물보호단체와 정부의 입장이 갈린다. 올해 3월, 한 동물보호 운동가는 인천광역시의 한 구청에 개 도살은 불법이라는 취지의 민원을 접수했다. 이에 대해 구청은 개의 경우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개를 도축한 것이 불법이 아니며, 동물보호법에 나오는 동물학대의 방식이 아니라면 개 도축 자체는 허용된다고 답했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동물보호법을 보면 가축이 아니면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개는 축산법상에 가축이 아니다. 그런데 개를 죽이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하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한국과 비슷한 개 식용 국가이면서도 법적으로 개 식용을 불법화한 모범사례로 타이완을 꼽는다. 1949년 중국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이 타이완에 자리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타이완에 개 식용 문화가 퍼졌다. 타이완 사람들 사이에는 개의 털 색깔과 모양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믿음이 있을 정도다.

개고기 포함하면 동물복지 논의 막혀

타이완은 민주화가 이루어진 직후인 1998년에 한국과 비슷한 동물보호법이 제정됐다. 2001년에는 경제적 목적을 위해 반려동물 도살을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 문턱을 넘었다. 이어 2007년에는 개나 고양이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사체를 판매하는 행위도 법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다른 고기를 판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매하는 영업은 계속됐다. 법을 어겨도 벌금형에 그쳤기 때문이다. 좀 더 엄격한 법을 만들기 위해 2009년 타이완의 동물보호단체인 동물학대방지협회(SPCA)가 설립됐다. 지난해에는 개나 고양이를 도살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소 10만 타이완달러(약 350만원)에서 최대 100만 타이완달러(약 3500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처벌이 강화됐다. 올해에는 아예 개나 고양이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과정에 있다고 한다.

개 식용 반대논리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다 같은 동물인데 어째서 개만 특별하게 취급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6년가량 반려견을 키워왔다는 한정애 의원은 “개는 우리가 먹는 동물 중에 인지능력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과 가장 가깝다. 한국인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대부분이 개를 키우는데, 이 정도 상황이라면 사회적으로 개를 인간의 먹이사슬에서 좀 뺄 때도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다만 한 의원은 “현재는 동물복지를 전체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데, 개 식용 문제를 포함시키면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개 식용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인 만큼 개고기 이용자가 더욱 줄어들도록 꾸준히 캠페인을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카라의 전진경 이사 역시 당장 개 식용을 불법화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개 식용을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전 이사는 “어차피 개고기 먹는 사람이 줄어드니까 굳이 법제화는 필요 없다는 주장은 동물보호법, 축산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정부의 입장과 유사하다. 개고기 먹는 사람이 줄어들길 기다리는 동안 비좁은 농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어진 먹이를 먹으며 고통받는 개들은 어디에 호소를 해야 하나”라며 “식용견 업자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기 때문에 규제하지 않으면 개 식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전 이사는 “모든 동물이 소중하다는 말은 맞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동물에게도 최소한으로 지켜줘야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과 현실에서 살을 맞대고 사는 반려동물부터, 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라며 “카라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단체에서 소, 닭, 돼지 등이 비좁은 공장에 갇혀서 기계처럼 고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소·닭·돼지 등을 잔인한 착취구조에서 벗어나게 해야지, 개를 그 착취구조에 넣을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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