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데자뷔..'부산행'·'터널'

박재용 입력 2016. 8. 17. 17:52 수정 2016. 8. 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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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부산행')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구조하겠습니다.” ('터널')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이 듣는 정부의 발표 내용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를 조롱하는 장치로 해석한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은 경험 때문이다.

영화 ‘부산행’과 ‘터널’은 재난에 대한 정신적 생채기와 불신, 그리고 극단적인 이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좀비나 어둠, 고립 보다 사람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영화 ‘부산행’


폐쇄된 열차 안. 물밀 듯 달려드는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좀비의 공격은 인간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극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인간으로 남고 누군가는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특히 천리마고속 상무인 용석이 보여주는 이기심은 경멸스러움을 넘어 공포감 마저 자아낸다.

편견에 가득 차 있으며 절대 손해 볼 짓은 하지 않고 개인적 자아만 과잉 발달된 사람. ‘같이 살자’가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나만은 살아야 한다’는 사람...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은 내버려 둔 채 자신들만 살려고 빠져 나오는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관객들은 용석의 모습을 보고 비난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어느 누구도 용석과 같은 모습이 자기에게는 없다고 단정할 수 없기에...

영화 ‘터널’


‘터널’의 주인공 정수는 평범한 가장이다. 딸 생일을 맞아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가는 도중 터널이 무너져 꼼짝없이 갇힌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터널의 붕괴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가까스로 119에 신고했더니 쓸 데 없는 질문만 반복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우왕좌왕하고 정부는 구체적인 대책 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공허한 주문만 내린다.

영화 ‘부산행’


‘부산행’에서도 좀비가 창궐하자 정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안심시킨다. “정부만 믿고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유언비어를 유포하지 말고 휘둘리지도 말라”고 강조한다.

좀비들이 사람을 공격하고 도시가 폐허가 되는 순간에도 정부와 언론은 거짓말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이다.

분명 영화 속 이야기인데 낯설지 않다. 시간을 돌려 6.25전쟁 발발 당시로 가보자.

끊어진 한강 인도교. 1953년 1월 1일의 모습. 존 리치 촬영


1950년 6월 27일 밤,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가 반복해서 방송된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방송 전에 이미 서울을 떠났고 피난길인 한강 인도교(현재 한강대교)는 다음날 국군에 의해 폭파된다. 수도 서울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이 다리가 끊어지면서 수백 명이 희생되고 서울시민 100만 명의 발이 묶였다.

영화 ‘터널’


“단독이 중요합니까? 생명이 중요합니까?”

주인공 정수를 터널 밖 세상과 이어주는 생명의 동아줄인 휴대폰. 하지만 특종 욕심에 휴대폰 전원이 닳아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언론.

대책 수립보다는 언론 앞에서 사진 찍는 데만 급급한 장관.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생명의 가치보다는 경제적 손실만을 따지는 여론.

터널 속에 갇힌 정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공범들이다.

영화 ‘터널’


감독은 이들의 부도덕한 면면을 파헤치면서도 동시에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구조대장 대경을 통해 무너진 터널과 같은 막막한 현실에서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될 인간의 양심을 물으면서 정수를 구해낸다.

많은 관객들은 구조된 뒤 대경의 입을 빌어 외쳤던 정수의 첫 말 한마디에 통쾌함을 느낀다.

그의 말은 우리 사회를 무안케 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각성제가 된다.

박재용기자 ( pjyre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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