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끊긴 채 표류하는 세월호 특조위

2016. 8. 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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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6월30일 이후 월급 끊긴 조사관들, 공무원 신분 인정 못 받아 재직증명서도 못 내… 실낱같은 희망 국회에 걸어보지만 친박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당선에 먹구름 낀 전망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30일 이후 모든 지원을 끊으면서 특조위는 제대로 활동을 이어가기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무력화된 세월호 특조위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 위원장이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8월2일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저녁 일주일 동안 해온 단식을 마무리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정부는 특조위 조사 기간이 지난 6월30일 끝났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1일부터 법에 정해진 조사 기간 1년6개월이 지났다는 이유다. 법에는 조사 기간이 끝난 뒤 3개월간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 이 기간에는 추가 조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특조위 쪽은 예산이 지급된 2015년 8월부터 활동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대로라면 활동 기간은 2017년 2월까지 보장돼야 한다. 단순히 날짜만 두고 다툴 일은 아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선체 조사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애초 6월이 목표였던 세월호 인양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7월29일 인양의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선수 들기가 성공했다. 6차례 실패 뒤의 성공이다. 해양수산부는 최종 인양 시기를 9월 말로 예상한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이때는 특조위가 종합보고서 작성을 완료하고 곧 해산을 앞둔 때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구성된 기구가 선체 조사도 못한 채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 지원이 모두 끊긴 뒤 특조위가 겪는 어려움은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 예산이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7월 월급을 받지 못했다. 월급만 문제라면 의지로 버텨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예산이 없어 출장비 지급은 물론 비품 구매조차 불가능하다. 문서를 출력할 프린터 토너가 떨어져 회의나 토론회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

직원들을 제외한 특조위 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위원들에게는 월급이 나왔지만 이 돈은 거부하기로 했다. 정상적인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지 않은 채 위원장 등에게만 월급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근 특조위 비상임위원들이 각자 돈을 내서 운영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마련해줬지만 정상적 조직 운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린이집 제출할 재직증명서도 발급 못해

신분도 불안해졌다. 7월부터 정부의 맞춤형 보육 정책이 시작됐다. 맞벌이 부부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어린이집 종일반 이용이 가능하다. 종일반 신청을 하려면 재직증명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파견 공무원을 중심으로 꾸려진 특조위 행정지원실은 조사관들에게 재직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 특조위 조사 기간이 끝나 조사관들이 더 이상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월급도 못 받는 조사관들이 출근 뒤 아이를 맡길 곳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견디다 못해 특조위 활동을 그만두는 이들도 생기고 있다. 정상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부의 숱한 방해를 견뎌왔지만, 그동안 쌓여온 피로도가 임계를 넘어선 것이다. 민간인 출신 특조위 별정직 공무원 58명 중 7명이 결국 일을 그만뒀다. 한 조사관은 “실제로 몸이 아픈 사람도 많고 당장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사람도 많아 그만둔 조사관을 마냥 원망하기도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6월30일 이후 정부 부처는 특조위 조사 활동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조사 권한이 없는 기구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특조위 관계자는 “청해진해운 직원 등 현재 구속 상태인 제소자들도 조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 전에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조사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이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7월27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이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미수습자의 수습과 선체 조사를 포함해 아직 조사할 것이 많이 남았는데 (정부가) 위법하고 부당하게 특조위의 문을 닫으려고 한다”고 단식농성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 위원장이 단식을 마친 뒤 특조위 상임위원과 야당 의원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단식농성으로 탈출구를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기대를 걸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국회다.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하면 활동 기간 보장을 넘어 세월호 선체 조사를 위한 시간까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새누리당 대표 선거에서 친박 핵심인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면서 특조위의 미래는 더 어두워졌다. 특조위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청와대의 입김이 이 의원을 매개로 여당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방송법 위반)로 특조위가 검찰에 고발한 인물이다. 특조위가 9월1~2일로 계획한 세월호 3차 청문회에서도 증인 출석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이 의원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끝까지 막아설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무색한 국회 상황

지난 8월9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의원이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 의원은 KBS에 세월호 보도 외압을 넣은 혐의(방송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야당 상황도 신통치 않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1일 이석태 위원장이 단식 중인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 “(활동 기간 보장과 관련해) 협상으로 안 되면 투쟁과 협상을 병행해야겠다”고 말했다. 또 “내가 순둥이인데, 건드리면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 뒤 열흘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무서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현재 정부와 여당을 압박할 유일한 무기는 추경 예산안이다. 하지만 야당이 추경을 지렛대로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을 이뤄낼지는 미지수다. 여소야대 국면이 무색하게 야당이 추진력을 갖고 실천하는 사안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20대 국회가 들어선 뒤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게 하나둘이 아니다.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은 물론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청문회, 경찰 과잉 진압으로 피해를 입은 백남기씨 청문회,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관련한 서별관 회의 청문회, 우병우 민정수석 청문회, 사드 청문회 등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뭐에 집중하려 하는지 당내에서도 알기 어려울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몇몇 의원끼리 모여 의견그룹을 형성해 당을 압박하거나 의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활동마저 안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뾰족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특조위는 8월 한 달 동안 단식농성을 이어가며 9월 초로 예정된 청문회 준비를 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청문회에 증인들이 출석할 가능성은 낮다. 정부가 끊임없이 특조위 권한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 따른 종합보고서 작성 만료 시점인 9월30일 이후에는 더 큰 곤란이 닥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서울 중구 저동에 마련된 특조위 사무실을 비우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사관들이 모여서 조사하고 논의를 이어갈 토대가 사라지는 셈이다. 특조위가 지금까지 조사해온 자료를 어떻게 보관할지 등 여러 쟁점을 두고 정부와 다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첩첩산중이지만 특조위 내부에서도 9월30일 이후 계획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조사를 이어나가기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이날 이후 진상 조사를 그만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국회를 향한 실낱같은 희망과 정부의 조직적 방해라는 거대한 절망 사이를 표류하는 처지다.

또다시 싹트는 비극

오랜 기간 불필요한 정부와의 줄다리기 끝에 조사관들도 모두 지친 상황이다. 한 조사관은 “이제 특별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사라는 것이 흐름이 중요한데 정부가 고비 고비마다 모든 흐름을 끊고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 참사에 이어 진상 규명 실패라는 또 다른 비극이 싹트고 있다. 여전히 이 비극을 구조할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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