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일색이던 음원차트..래퍼 비와이의 '반란'

이재원 문화평론가 2016. 8. 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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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비와이. 사진=Mnet '쇼미더머니'

래퍼 비와이. 사진=Mnet ‘쇼미더머니’.

 

아이돌 혹은 OST 일색이던 음원차트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기독교인인 비와이 랩의 선전, 홍보도 없고 얼굴도 없는 스탠딩에그의 돌풍, 방송 대신 음악성으로 승부를 보는 어반자카파의 롱런 등 조용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잘 짜여진 군무를 추는 아이돌이 아니지만, 진솔한 내용의 가사와 음악성, 방송 활동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 등으로 ‘흥행공식’을 비껴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럼에도 아이돌 팬덤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마음을 울리며 음원차트에서 비상하고 있다.

케이블채널 Mnet ‘쇼미더머니‘로 스타덤에 오른 비와이는 최근 멜론의 실시간 차트 10위안에 3곡을 올려놓고 있다(15일 오후 기준). 동료 씨잼과 함께 11일 내놓은 싱글 ’퍼즐(PUZZLE)’은 2위에 올라있고, ‘쇼미더머니5’(에피소드4)에서 박재범이 피처링한 ‘Day Day’는 6위, ‘쇼미더머니5’(에피소드3)의 ‘Forever’는 9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The Time goes on'(21위) 등도 100위 권에 들어 있다.

비와이는 속도감과 리듬감이 강한 랩 실력을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주며 팬층을 확보한 터라, 음원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방송을 통해 이미 ‘종자돈’이나 마찬가지의 팬덤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비와이는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거나, 돈이나 자동차를 자랑하는 식의 강한 힙합과는 다르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고백적인 내용을 담아 ‘착한 힙합’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오히려 팬들에게 어필하며 강한 음악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스탠딩에그 '여름밤엔 우린'.

스탠딩에그 ‘여름밤엔 우린’.

 

스탠딩에그 역시 3일 발표한 ‘여름밤엔 우린’이 멜론 실시간 차트 4위에 올라 있다. 3일 발표한 뒤 9일 블랙핑크와 I.O.I가 차트를 강타하기 전까지는 1위를 달려, ‘사재기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크지 않은 인디그룹이 갑자기 차트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스탠딩에그는 2010년 데뷔한 어엿한 ‘중견그룹’이다. ‘인디공무원’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1년에 20곡을 만들며 성실히 음악세계를 구축해 왔던 그룹이지만, 얼굴을 내놓고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생소했던 것이다. 멜론에서 팬을 맺은 회원이 이미 6만명을 넘어선, 소리없는 강자였던 셈이다. 멤버들은 각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Egg1, Egg2, Egg3’으로 표시하며 오직 음악만이 돋보이길 원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팀 이름도 정성을 다한다면 달걀을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 지을 정도로 음악에만 혼신을 쏟는 팀이다. 기획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진정성만을 무기로 내세운 점이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어반자카파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는 멜론 실시간 12위를 차지했다. 이 곡은 무려 5월에 발표된 곡이다. 당시 음원차트를 올킬했던 어반자카파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로 도배되어 있던 음원차트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유승호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가 SNS에 전파되며 방송 위주의 홍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플랫폼을 개척해가 눈길을 끌며 단숨에 입소문을 냈던 곡이다. 발표 당시 곡을 작사한 권순일은 “보통 사람들은 이별할 때 상대에 상처를 주기 싫어 ‘사랑하지만 놓아줘야 한다’고 핑계를 만들지만, 헤어질 때는 비겁하게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진심을 담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듯, 현실적인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달초 지니뮤직에서는 역주행으로 다시 1위를 차지하는 등 장기 집권하고 있다.

비와이 스탠딩에그 어반자카파처럼 진정성있는 가사에 요란하지 않게 활동하는 이들이 선전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음악 소비자들이 피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성과 중심의 사회가 가져오는 피로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역설한 바 있다.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열성적인 팬덤이 아닌 음악 소비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피로를 ‘착한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다. 더불어, 매끈하게 훈련받은 아이돌이 주는 깔끔함이 도리어 피로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재원 문화평론가
한양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과 박사수료
전 텐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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