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 가슴 쳤다가..투혼에 가슴 벅찼다

문일호 2016. 8. 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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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판정 논란' 16강 탈락한 김현우탈골부상에도 패자부활 거치며 값진 銅광복절 아침 경기 지켜본 국민들 '울컥'

◆ 리우올림픽 ◆

'투혼의 레슬링 스타' 김현우(사진)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브라질 땅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다. 그가 참가하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경기 일정이 광복절인 15일(한국시간)로 확정된 순간부터 꿈꿔왔던 장면이다. 자신이 4년 전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자,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지켰던 것처럼.

판정 논란을 일으킨 16강전 패배 후 패자부활전을 치르고 올라선 15일 동메달 결정전. 1분11초 만에 옆굴리기로 2점을 땄다. 태극기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1회전 종료 2분30초를 남기고 파테르를 허용했다. 이어 두 번의 옆굴리기로 4점을 순식간에 내줬다. 1회전이 끝난 김현우는 만신창이가 됐다. 2대4로 역전당한 점수도 문제지만 상대 선수에게 넘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손을 잘못 짚어 팔마저 탈골됐다. 부상당한 팔을 자꾸 움켜쥐는 제자에게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안한봉 감독은 아무런 얘기도 해줄 수 없었다.

김현우는 오히려 감독을 위로했다. 대신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전이다. 후회 없이 마치자"를 되뇌며 2회전에 들어갔다. 상대방이 손으로만 툭 쳐도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승리 후 태극기만 생각했다. 26초 만에 괴력을 발휘해 허리 태클로 2점을 땄다. 이어 가로들기로 2점을 보태 단숨에 역전했다. 6대4 승리로 금메달 못지않은 값진 동메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승리 후 태극기를 매트 위에 펼치고 자신을 응원해준 관중에게 큰절을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이어졌지만 이를 지켜보던 대한민국은 눈물바다가 됐다.

4년 전 런던에서 피멍이 든 채로 금메달을 딴 후 웃으며 큰절을 올리던 모습과는 대조됐다. 그때는 자신을 지도해준 코치진에 대한 고마움의 절이었다면 이번엔 광복 71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에 대한 비장한 세리머니였다. 김현우의 동메달은 '힘의 논리'로 소중한 것을 뺏겼다가 기어코 되찾은 광복절의 의미를 고국에 그대로 전달했다.

세계 레슬링계는 이 체급의 결승전이 아닌 첫 경기(김현우 대 로만 블라소프)에 주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1·2위 간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통상 1·2위는 경기 초반 대결하지 않는다. 시드 배정을 통해 경기 후반 붙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계레슬링연맹(UWW)은 세계랭킹이 아닌 작년 세계선수권 1·2위에게만 시드를 줬다. 이로 인해 작년 우승자 로만 블라소프는 1번 시드를 받았지만 김현우는 받지 못했고 이 둘이 첫 경기부터 맞붙는 촌극이 벌어졌다.

김현우는 블라소프와의 경기에서 3대6으로 뒤지다가 종료 3초 전 투혼의 가로들기를 성공시킨다. 4점짜리 큰 기술로 7대6 역전이 가능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심판은 2점만 인정했고 안한봉 감독의 강력한 항의로 비디오판독에 들어갔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현우의 기술이 재연되자 그는 물론 관중도 환호성을 올렸다.

레슬링계에 길이 회자될 4점짜리 역전 기술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판은 요지부동으로 2점을 고집했다. 오히려 블라소프는 공격을 당하고도 1점을 받았다. 올림픽 레슬링 규정에 따르면 비디오판독으로 판정이 번복되지 않으면 벌점으로 상대 선수가 1점을 딴다. 김현우가 5대7로 패하자 관중은 유례없는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억울함에 잠시 서 있던 김현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팀 감독에게 악수를 건넸고 이어 펼쳐진 패자부활전에서 2연승을 하며 동메달을 따는 등 끝까지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다.

김현우의 '룸메이트' 류한수는 16일부터 66㎏급에 출전한다. 이 체급은 김현우의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자,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는 명언이 출발한 체급으로 김현우는 이번에 체급을 올려 출전했다. 태릉선수촌에 붙어 있는 이 현수막을 보며 류한수는 김현우 못지않은 땀을 흘렸다.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챔피언인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그랜드슬램(4개 대회 석권)을 노린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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