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각나는 <터널>, 이런 장면은 정말 탁월

김준수 입력 2016. 8. 13. 17:00 수정 2016. 8. 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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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터널> 과 <베리드> , 지독히도 현실적인 모사

[오마이뉴스김준수 기자]

어둠 속에서 작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한 남자. 몸 하나를 겨우 눕힐 곳에 갇힌 채로 구조를 기다리는 절박함. 사방이 막혀 숨을 쉬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황. 좁은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모래.

외부와 소통할 수단은 오직 스마트폰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이 더해간다. 과연,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터널>의 초반부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런데 묘하게도 비슷한 설정의 영화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2010년작 <베리드>다. 영화 속 상황과 더불어 줄거리에 각 국가의 현실이 압축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두 영화가 그려내는 장면들을 살펴보자.

1. 매몰되다

 영화 <터널> 중 한 장면.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귀가하던 중 터널이 무너져 차 안에 갇힌다.
ⓒ (주)쇼박스
영화 <터널>에서 정수(하정우 분)는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이다. 그는 구두 계약을 기분 좋게 성사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뒷자리에 딸 아이 생일 케이크를 싣고 차를 몰던 중, 어느덧 터널에 진입한다. 그 순간까지도 정수는 알지 못했다. 긴 터널이 무너져 자신이 며칠간 갇히게 될 것이라고는.

"또다시 대한민국의 안전이 무너졌습니다."

간신히 스마트폰을 꺼내 119구조대에 구조 요청을 신고한 정수. 영화 속 언론에서는 터널 붕괴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한다. 부실공사 등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구조를 위한 지원이 이어진다. 지역 정치인과 관계부처 장관까지 방송사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이런 장면들은 세월호 등 실제 참사가 발생한 최근 한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부실한 공사나 무리한 적재 등 황당한 이유로 벌어지는 사고, 매뉴얼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책본부, '반드시 구하겠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까지. 터널 입구에 세워놓았던 간판에서 '안전'이라는 글자만 떨어져 나뒹구는 <터널>의 장면은 이와 같은 상황을 풍자하는 듯하다.

영화 <베리드>도 시작과 동시에 시커먼 어둠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문득 잃었던 정신을 다시 차린 남자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자신이 땅속에 묻힌 관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밀폐된 공간에서 숨 쉴 공기조차 한정된 상황. 겨우 찾아낸 건 스마트폰과 작은 손전등이다.

미국인인 폴은 머나먼 땅 이라크로 와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받자 폴을 납치해서 매장한 현지인은 "몸값을 지불하면 풀어주겠다"고 말한다. 폴이 '자신은 미군이 아니'라고 해명해보지만 수화기 너머 상대는 이미 적개심을 잔뜩 뿜어내고 있다. 미군의 이라크 파병도 폴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대답은 차갑다.

"9.11이나 사담(후세인)도 내 잘못은 아니었지."

<베리드>에서는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남긴 9.11 테러 이후의 미국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훗날 미군의 파병 이유였던 '대량살상무기'를 이라크에서 찾아내지 못한 사실도 떠오른다. 타지에서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납치당한 주인공의 모습도, 세계 곳곳에서 무장 테러 단체에 피랍돼 희생된 많은 사람을 연상하게 한다.

결국 두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재난'은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전 국민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상징하는 셈이다.

2. 나가려고 발버둥 치다

 2010년 개봉작 영화 <베리드> 중 한 장면. 이라크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미국인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는 현지인에게 납치돼 땅속에 파묻힌다.
ⓒ 크리스리픽쳐스인터내셔널
<베리드>의 폴은 관 안에 테러리스트가 넣어 둔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전화한다. 미국 구조기관인 911부터 자신의 집, 회사까지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나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공허하다. 911에서는 "여기는 미국입니다"라며 해외로 출동할 수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폴 콘로이는 테러리스트와 통화하며 협상을 시도한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상대에게 폴은 질문을 던진다. 테러리스트와 심리전을 벌이며 위치를 파악해 미국 국가기관에 전달하고, 테러단체 섬멸 작전을 도우면서 본인의 구조를 동시에 노리는 것이다.

<터널>의 정수도 119에 가장 먼저 전화한다. 그리고 아내 세현(배두나 분)과 울먹이며 통화하고, 정수의 발언은 모두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전국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한국 구조 인력이 모두 모여든다.

정수는 딸에게 주려던 케이크를 아껴서 먹고, 많지 않은 생수를 한모금씩 마시면서 생존하려 애쓴다. 구조대가 무너진 터널에서 정수를 구출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계속 흙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줄어드는 공간 속에서, 폴과 정수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관객에게 아슬아슬함을 주는 영화의 핵심적 요소다. 극적인 상황에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객은 주인공에 몰입하고 '매몰'의 경험을 같이 나누게 된다는 점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3. 과연 그는 탈출할까, 혹은 희망고문일까

 영화 <터널> 중 한 장면. 작은 손전등과 스마트폰에 의지한 정수는 과연 붕괴된 터널에서 탈출할까. 혹은 그저 희망고문에 그칠까.
ⓒ (주)쇼박스
"이제 국민들도 그만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구조로 인한 비용 손실과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 사고가 발생한 곳을 지역구로 둔 정치인은 이를 이유로 '구조 작업을 멈추자'고 주장한다. 붕괴 이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론도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터널에 갇힌 정수를 더욱 괴롭히는 건, 약해지는 탈출 의지가 아니라 구조를 '허황된 것'으로 만드는 외부의 '이기주의'와 냉소'다.

이라크 땅에 파묻힌 폴에게도 '절망'이 배달된다. 구조 시도보다 먼저 '확실한 의지'로 와 닿은 건 폴 콘로이가 소속된 업체 본사의 해고 전화였다. 직원의 사망 보험금 지출을 우려한 회사는 신속하게 '정리해고' 소식을 유선으로 '통보'한다.

"회사에서 손 쓸 수 없는 납치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합법적 해고 절차를 진행합니다. 공식 해고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선 어떠한 상해도 회사의 책임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두 사람에 세상이 전달한 것은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삼은 '구조 거부' 의사였다.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 '흙'과 '부족한 식수'보다 주인공을 더 갈증 나게 하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일부 집단의 메마른 태도다. 이런 위기가 연이어 터지는 상황을 극복하고, 과연 폴과 정수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혹은 그저 희망고문으로 그칠까.

'세월호' 떠올리게 하는 <터널> 그리고 <베리드>

바위에 짓눌려 찌그러진 차량. 그 안에 갇혀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주인공. "나 아직 여기 살아있는데"를 읊조리며 구조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한국에서 반복된 참사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과 슬프게도 닮았다. 주연 배우 하정우씨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생명의 소중함을 다룬 영화고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건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와 세월호 참사까지, 구하지 못한 수백 명의 희생자들이 영화 속 정수의 그림자와 겹쳐 보인다. 영화를 만든 김성훈 감독의 발언을 봐도 이런 기시감은 우연이 아닐 것 같다. 김 감독은 지난 11일자 <오마이스타> 기사를 통해 "<터널>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네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어!'라고 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려 한 것"이라 언급했다. (관련 기사 : "영화 <터널> 만들면서 세월호·박근혜 생각 안했다면 거짓말")

상영 시간 내내 카메라가 관 안을 벗어나지 않는데도 <베리드>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잘 유지한다. <터널>도 한정된 공간을 비추면서 붕괴된 현장 안팎을 통해 긴장감을 적절히 버무려냈다. 이는 적절한 연출과 배우의 연기력이 빚어낸 결과물로 보인다.

<터널>의 정수는 과연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베리드>의 폴 콘로이는 관을 벗어나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될까. 그들의 탈출이 성공할지, 혹은 텁텁한 기분만 남길지 관객이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호흡조차 어려운 상황을 스크린으로나마 관객이 겪어보면, 참사가 연이어 벌어지는 한국의 심각한 상황이 더욱 실감나게 와닿을 것이다. 절망스러운 현실의 잔영이 포개어지는 영화가 주는 무게와 씁쓸함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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