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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천년의 역사 이어온 진천 농다리

송고시간2016-08-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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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건설된 지네 형상 돌다리…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초평호 옆 산자락 따라 자연의 향기 만끽할 산책길도 조성

(진천=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고려 시대 초부터 굴치(屈峙) 마을 주민들은 땔감이 필요하면 세금천의 돌다리를 지나 용두봉으로 향했다. 누군가 상(喪)을 당하면 상여를 메고 이 다리를 건넜다.

<길따라 멋따라> 천년의 역사 이어온 진천 농다리 - 2

그렇게 1천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 돌다리는 세금천을 지키고 있다. 굴치마을은 지금의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이다.

이 다리는 지네가 물을 건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돌들이 대바구니(籠)처럼 얽히고설켜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농교(籠橋·농다리·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라고 불려왔다.

축조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1930년대 발간된 '조선환여승람'과 '상산지'를 통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들 책에는 '고려 초 굴치의 임장군이라고 전해오는 사람이 농교를 창설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언급한 임 장군은 고려 2대 왕인 혜종(943∼945년) 때 병부령을 지낸 진천지역 호족인 임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철근과 콘크리트 등 현대 공학으로 만든 다리도 홍수에 맥없이 쓸려 내려가기도 하는데 사람의 손으로 쌓은 돌다리가 어떻게 1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뎠는지 미스터리다. 규모도 상상 이상이다. 길이가 93.6m에 달하고, 1.2m가량의 높이에 너비도 3.6m 안팎이다.

그 비밀은 세찬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는 과학적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사력 암질의 붉은색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뒤 상판석을 얹어놓았다. 크기가 다른 돌을 교차로 쌓아 물의 저항을 줄였고, 장마 때는 물이 다리를 넘쳐 흐르도록 했다.

교각 역시 돌끼리 서로 맞물리도록 단단하게 쌓으면서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폭과 두께를 좁게 해 물길의 영향을 덜 받도록 했다.

물줄기가 농다리에 부딪혀 잘게 갈라지는 세금천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마치 꿈틀거리는 거대한 자줏빛 지네의 등줄기를 밟고 지나가는 듯하다. 울퉁불퉁한 돌들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도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도심을 벗어나 힐링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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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 축조와 관련해서는 전설이 있다.

임 장군이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세금천을 건너려는 한 아낙을 발견했다. 그 아낙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으로 가는 길이었다.

임 장군은 그의 딱한 모습과 지극한 효심에 탄복해 말을 타고 돌을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 이때 말이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농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될 정도로 자태가 매력적이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굴티마을에서 농다리를 건너면 '미르숲'이 펼쳐진다. 미르는 용(龍)을 지칭하는 옛말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용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용고개, 용두봉 등으로 불렸다.

이 고개에 이르는 길 양쪽에는 야생화들이 곳곳에 피어 한껏 멋을 부린 채 사람들을 환하게 맞이한다.

고개에는 서낭당이 있다. 오래된 나무 주위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고, 오색 헝겊이 걸린 모습이 예전에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그런 서낭당이다.

이곳에도 전설이 있다. 한 스님이 화산리의 부자 마을에서 시주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를 괘씸히 여긴 스님이 "앞산을 깎아 길을 내면 더 큰 부자 마을이 된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스님의 말에 따라 길을 내니 그곳에서 피가 흘렀고, 이후 이 마을은 망해 없어졌다.

스님이 말한 곳은 용의 허리다. 이곳을 깎아 길을 내면서 용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곳은 '살고개'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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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를 넘으면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갑자기 거대한 호수가 눈앞에 나타난다. 누구도 산속에서 이런 호수를 만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1958년 진천군과 청원군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초평호다. 저수량이 1천378만t에 달하는 충북 최대 규모의 저수지다.

고갯길을 내려가면 호숫가에 야외무대가 조성돼 있고, 초평호와 인접한 산자락을 따라 산책로가 데크로 조성돼 있다. 거리도 1.3㎞여서 가볍게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산책 데크가 없었다면 이 일대는 사람이 접근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원시림이었을 터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은 이런 상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수가 연출하는 물결 소리와 산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재잘거림이 이곳을 걷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해준다. 도심에서는 짜증을 불러오는 매미의 울음도 풀벌레 소리와 함께 좋은 화음을 이룬다.

호수에서는 물고기가 뛰어노는 듯 가끔 '첨벙'하는 소리도 들린다.

호수와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요즘 극성인 폭염을 잊게 한다.

한적하면서 시원한 풍광을 배경으로 걷다 보면 하늘 다리가 나온다. 양쪽에 철근 탑을 세워 케이블로 연결한 남해대교와 같은 현수교(懸垂橋) 형식으로 만든 이 다리는 90m에 달한다. 2012년 건설돼 저수지가 생기면서 끊긴 초평면과 농다리 인근을 연결해준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산책을 마치는 데 40분가량이면 족하다. 이 정도로 부족하다면 이 일대에 조성된 임도 등을 걸으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호수, 울창한 숲, 시원한 바람과 새들의 재잘거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산책을 마친 뒤에도 자연의 기운이며 풍광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 힐링코스로 제격이다.

고개를 내려와 1천년을 이어온 많은 사람의 사연과 전설을 상상하며 농다리를 다시 건너다보면 도심에서 찌든 때들이 세금천의 물결과 함께 말끔히 씻겨 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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