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공사 퇴직 낙하산 간부, 노래방서 멍 들도록 성추행..죽고 싶었다"

김서영 기자 2016. 8. 1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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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김포공항 청소노동자 120명 위한 ‘분노와 눈물의 삭발’
ㆍ정부 노임 안 지키며 살인적 노동
ㆍ경고파업 하자 “직장폐쇄” 경고

공공비정규직노조 손경희 강서지부 지회장이 12일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열린 ‘김포공항 비정규직 파업투쟁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최고기온 34도를 기록한 12일 낮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 한 50대 여성이 무거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또 다른 여성이 간이이발기 ‘바리캉’을 갖다대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머리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이고요.” 지켜보던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됐다.

삭발을 한 그는 김포공항 청소용역 노동자 손경희씨(51)다. 손씨는 이마에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 띠를 둘러맸다. 그리고 소리쳤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인간 대접을 받고 싶어 우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삭발식에는 같은 처지의 청소노동자 120명이 함께하고 경고파업에 돌입했다.

“처음 입사해 회식에 갔는데, 당시 본부장이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혓바닥이 입으로 쏙 들어왔다.” 손씨는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놨다. 청소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일차적 계기는 지속적인 성폭력 때문이었다. 노동자 ㄱ씨는 “노래방에서 가슴에 멍이 들도록 성추행을 당해 자살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폭언 등 인권유린도 일상이었다. ㄴ씨는 “관리자가 ‘돈 많이 받으려면 공부 잘해서 대학을 나왔어야지’라고 하는데 말문이 막혀 버렸다”고 말했다. ㄷ씨는 “자기 맘에 들면 아무렇게나 주무르고 만졌다. 우리를 인간 취급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었다. 약 11시간의 한 근무타임 동안 24명 남짓한 인원이 국내선·국제선에 각각 투입됐다. 하루 최대 7만명의 승객이 오가는 공항을 청소하는 사람이 50명도 안된다는 뜻이다. 손씨는 “탑승객이 몰리면 면세점 쇼핑백만으로도 100ℓ 쓰레기봉투 150개가 가득 찼다. 손목이고 허리고 안 아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임금도 열악했다. 정부의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 따르면 노임단가는 중소기업중앙회가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직종별 인부노임을 적용해야 한다. 이 지침을 적용하면 청소노동자 시급은 8200원이지만 용역업체는 최저임금인 6030원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결국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3월 노조를 결성했다. 손씨가 노조지회장을 맡았다. 청소노동자 143명 중 120명이 가입했다. 노조는 샤워실·화장실 설치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용역업체 측은 “해당 정부 지침은 196개 정부부처 기관 중 6%만 준수하고 있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고 했다. 이날 삭발식에서 손씨와 동료들이 파업을 결의한 이유다.

손씨는 “용역업체 간부로 한국공항공사 퇴직자가 내려온다. 권한도 없는 용역회사 말고 원청인 한국공항공사가 대화에 나설 때까지 경고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용역업체 측은 “파업이 지속되면 직장폐쇄 등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공항공사 측은 “공사로선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현 상황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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