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에 기록으로 확인된 '부산학생 항일의거'

장형태 기자 입력 2016. 8. 1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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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생 학적부 등 자료 12점 발굴 - 징계 받은 10명 명단 새로 발견

일제 때 광주학생의거(1929년)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抗日) 학생운동이었던 부산항일학생의거(1940년)의 참여자 명단과 처벌 내용이 소상히 기록된 학적부가 발견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11일 부산의거에 참가한 학생들의 명단이 적힌 '퇴학생 학적부' 등 자료 12점을 발굴해 공개했다.

그동안 부산 의거는 일부 참가자들의 회고담과 짤막한 기사들을 통해 알려졌다.

부산 의거는 1940년 11월 23일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와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 학생 1021명이 벌였다. 이날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벌어진 학생 체육대회에서 일본인 심판 노다이(乃台) 대좌가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해 편파 판정을 하고 조선인 학생들을 모욕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분개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가두시위를 벌이고 일부는 노다이의 집을 습격했다. 이 일로 200여명이 검거돼 14명은 실형을 선고받았고, 83명이 학교로부터 퇴학 등의 징계를 받았다.

새로 발견된 학적부에는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소리치고, 동래중학 생도와 본교 생도 등 다수와 함께 배속 장교 노다이 대좌 관사에 침입해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파괴했다'는 퇴학 사유가 나와 있다. 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산제2공립상업학교 학생 8명과 동래고등보통학교 2명의 참여 사실도 확인됐다.

국가기록원은 부산 의거에 대해 "1929년 광주학생의거 이후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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