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흙수저야라고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한국에서 중학교 진학 이후 행복도가 낮아지는 이유
[경향신문] 한국에서 중학교 진학 이후 행복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해 발표된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선 한국 등 15개국 만 8·10·12살 아동의 행복감을 비교 연구했는데 한국이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다. 특히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12살에서 행복감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전체 평균(8.2점)을 밑도는 7.4점으로 꼴찌였다. 국제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지난 2월 서울 등 6개 권역 중학교 1학년 46명을 대상으로 집단심층면접(FGI)을 실시한 결과를 담은 ‘한국 아동 삶의 질 비교 연구’를 7일 발표했다.
인터뷰 대상 중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보다 학업시간이 늘어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줄어든 것을 부정적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또한 아이들은 가족과 좋은 관계를 행복의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고 부모님이 학업에 대해서만 궁금해 하면서, 대화가 줄고 사이가 나빠졌다는 응답이 나왔다. 한국교통대학교 김선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부모 세대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아동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해 공부하도록 독촉하기 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감정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는 외부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어른 돼서는 취직할 때도 힘들고, 취직을 해도 낮은 등급이면 올라가려고 계속 더 노력해야 되고 (학업 스트레스가) 비슷할 것 같아요”. 학생들은 자신이 성인이 됐을때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느끼고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돈을 벌어야 하는 부담을 느꼈다. “요즘에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같은 게 나오잖아요. (웃음) 너는 뭐, 금수저야 은수저야 흙수저야. 이렇게 (누가) 말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좀 그럴 것 같아요”.
성인기 행복의 조건도 한국의 치열한 삶을 보여준다.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기 위한 사회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스스로 노력해 열심히 공부하거나 공부를 못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는 ‘스펙’이 필요하다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미 중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탈락에 따른 결과를 내재화하고 있으며, 행복해지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유민상 연구원은 “아이들 시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에 기반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학교에서 국영수를 얼마나 잘 하는지만 물을 게 아니라 얼마나 행복한지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구진이 전국 16개 시도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 868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 동안 조사한 ‘한국 아동 삶의 질’에선 대구가 모든 항목에서 1위를 기록해 123.23점으로 종합지수에서 1위에 올랐다. 이어 울산(110.52), 부산(107.86), 대전(106.69), 서울(106.31), 인천(105.41), 광주(104.09) 순이었다. 서울과 6개 광역시가 1~7위를 차지했다. 반면 경북(94.73), 경남(94.15), 충남(92.69), 충북(89.24), 전남(88.24), 전북(83.71)은 아동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규모별 분석에서도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 삶의 질이 중소도시와 농어촌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6개 시도별 시도별 아동의 삶의 질은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 사회복지 예산비중, 아동학대 사례 수와 밀접한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기도 했다. 지자체의 재정적 능력이 아동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의 삶이 질이 낮게 나타난 지역들은 재정자립도가 30% 미만(전북, 전남)이었고, 복지예산비중 역시 30% 미만(전북, 전남, 충북, 충남)이었다. 아동학대 신고사례 중 학대로 판정된 경우(전북, 전남, 충북)도 많았다.
이번 조사결과를 보면 사회 불안과 지역적 불균형 문제가 자라나는 세대에 그대로 전가되는 현실이 드러난다. 연구진은 “아동 삶의 질의 지역 간 격차의 양상은 다차원적으로 구성된 하위 영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면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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