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18> 더위에 갈 곳 없는 아기 엄마들 "여름이 괴로워"

engine 2016. 8. 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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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켜놓고 가만히 있으면 안 더워.”

출산 전 여름 더위는 내게 대수롭지 않은 변화였다. 한여름에도 겨울 이불을 덥고 잘 만큼 추위를 타는 체질 덕분이었다.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하는 겨울과 달리 여름은 아주 만만한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위는 숨을 헐떡이게 하는 고통이 됐다. 아기와 딱 달라붙어 지냈던 작년 여름은 인생 최고로 더웠던 시기였다. 봄의 끝자락이었던 6월이 엄마가 된 뒤로는 한여름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

하루 종일 육아에 매달려야 하는 집중 육아기는 인생의 한 때지만 이 시기의 특수성은 상당히 강렬했다. 선풍기를 틀 수는 있어도 예전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기의 욕구를 들어주려면 계속 움직이면서 밀착해야 했다.

날이 푹푹 찌면 아무리 아기가 예뻐도 답답해졌다. 땡볕에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 대형마트를 향할 뿐이었다. “오늘도 왔네.” 직원의 인사에 멋쩍어졌다. 여름 내내 이 생활을 반복하니 서글픈 생각이 밀려왔다.

아기가 웃으면 미안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한 행복을 느낄 때면 우울한 상태에 빠진 자신을 자책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때때로 남편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남편의 사소한 소홀조차 마음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내가 속이 좁아졌구나. 가을이 오면 그나마 산책이라도 다닐 텐데….’ 육아휴직 기간 더위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징그러운 거머리로 느껴졌다.

엄마들에게 여름이 너무나 힘든 건 일부에서 말하는 신체적 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출산한 여성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이에 미치는 한 요소일 뿐인 호르몬의 변화로 축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우울한 심리는 누구나 겪는,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본능적 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어떤 남편과 사는가, 얼마나 충실한 사회관계망을 갖고 있는가 등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출산은 한 여성이 살면서 겪게 되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다. 일부는 일하는 여성에서 전업 주부가 되고, 대부분의 여성은 사회관계망이 가족 관계로 대폭 축소되는 탓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때 폭염은 소시민의 삶을 사는 많은 여성을 대형마트 등에서 헤매게 하고, 에어컨을 틀 때마다 전기세 걱정을 하게 하며 더욱 시련을 준다.

“폭염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웬 엄살이냐.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것도 감수 못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실내 온도가 40도 이상 오르는 쪽방에서 선풍기조차 못 켜는 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배부른 하소연으로 보일 것이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스트레스도 작지 않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는 반응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힘들고 더 힘든 사람도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건 그 무엇도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엄마들의 하소연에는 개인적 푸념만이 아니라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에 살면서 힘들어하는 여성 전체의 모습과, 개인의 삶은 순전히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한국인의 불안이 담겨 있다. 더위 같은 혹독한 날씨는 이러한 고통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지금의 나는 하루의 절반을 사무실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지만, 지난해 집에서 헉헉거리다가 동네 마트를 어슬렁거렸던 시기를 잊지 못한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집에 은거할 때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았던 적막한 분위기를 기억한다. 지난해 나의 육아휴직으로 집안일과 멀어진 남편과 며느리에 대한 요구가 늘어난 시어머니로 인해 이전까지는 의식화하지 못했던 가부장제에 대한 내 안의 깊은 반감을 깨닫게 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올해는 워킹맘의 여름도 혹독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아기 몸에 땀띠가 솔솔 올라오면서 에어컨을 팍팍 틀었더니 식구 중에 가장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된통 감기에 걸렸다. 감기 몸살로 오들오들 떨며 밤에 에어컨을 껐더니 열대야 습기에 아기 발가락에 곰팡이균이 폈다. 하는 수 없이 에어컨을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하며 새벽의 휴식을 반납했다. 아기 건강에 신경쓰면서 수면 시간이 줄어들었다. 좀비 같은 상태로 일하는 날이 늘었다.

남편과 아들, 열이 많은 두 남자가 함께 자면 궁합이 딱 맞을 텐데…. 남편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에어컨을 조절한 작은 방에서, 나의 사랑스러운 껌딱지는 에어컨이 꺼졌다 켜졌다 반복하는 방에서 나와 함께 잔다.

그래서 역대 최고의 더위라는 이 폭염에 시름하는 엄마들의 사연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위로하고 위로를 받고 싶다. 그 위로를 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남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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