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고추밭' 사건, 밑바닥에 깔린 심리

신필규 2016. 8. 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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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단톡방에 이어 페이스북 비밀 그룹까지 폭로.. 남성의 성찰이 필요하다

[오마이뉴스 글:신필규, 편집:손지은]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페이스북 비밀그룹 '고추밭'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여학생들을 성희롱해 논란이 일고 있다.
ⓒ 고파스 캡처
단톡방에 이어 이번에는 페이스북 그룹이다.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킨 고려대에서 또 다시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지난 3일 관련 보도에 따르면 사회학과 소속 남학생 30명이 '고추밭'이라는 페이스북 비밀 그룹을 만들고,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발언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비밀 그룹에서는 길거리의 여성들을 찍은 몰카가 공유되기도 했고, 음란물이 공유되기도 했다고 한다. 불과 몇 개월 전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비단 고려대만의 문제일까. 남학생들이 집단으로 여학생들에 대해 언어적 성폭력을 일삼는 사건은 다른 학교에서도 종종 발생했다. 가령 지난해 초 문제가 되었던 국민대 단톡방 사건이 있었고, 이후 서울대·경희대에서도 같은 종류의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도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상황을 일상에서 겪기도 한다. 가령 남고를 다녔던 나는 3년 동안 또래들이 선생님 또는 다른 학교 학생들을 성적 대상화 하는 발언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야 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부르는 남성들의 '호모소셜'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할까. 왜 남자들은 모이면 여자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안달일까. 그것도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왜 성희롱적인 말을 할까. 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며 어울리고 관계를 맺을까.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선 여성학자 이브 세즈윅이 제시한 개념 '호모소셜(남성 간 유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책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세즈윅의 이 개념을 통해 남성 집단을 분석한다. 우에노 치즈코의 설명에 따르면 호모소셜이란 '성적인 것을 억압한 남성 간 유대'를 의미한다. 이 집단에선 오직 남성만을 '성적인 주체'로 인정하기 때문에 서로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금기시 된다. 즉 동성애 금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 내부에 '대상'을 두지 않고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주체로 만들어 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여성의 '성적 객체화'이다. 치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의 성적 객체화를 서로 승인함으로써 성적 주체 간의 상호 승인과 연대'가 성립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오직 대상의 위치만이 할당될 때, 여성은 절대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치즈코 교수는 이런 객체화와 타자화가 '여성 혐오'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하등한 존재로 전제되는 여성이, 집단 내부 결속을 위해 성적 대상으로 호출되는 일은 왕왕 발생한다. 이것이 남성 집단 내부에서 여성들에 대한 언어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치즈코는 이를 남성들이, 남성으로서 얼마나 확고한 '성적 주체'인가를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지적한다. 쉽게 말하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남성성이 동일함을 확인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다.

이 같은 행위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의 '접대 문화'이다. 상식적으로 사업을 이야기하는 장소로 룸살롱 같은 곳을 선택하는 것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지니스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의 차이와 긴장감은 이들이 같은 '남성'임을 확인함으로써, 성별의 차원에서 동일한 집단임을 인식시킴으로써 누그러진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여성이다. 때문에 사실 남성 집단 내부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나 접대 자리에 여성을 부르는 행위나 근본적인 부분에선 큰 차이가 없다.

'비뚤어진 여성상'이 가져온 결과

 최근 고려대에서 발생한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이 큰 논란을 빚고있다
ⓒ 연합뉴스tv 갈무리
이 같은 행위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더 큰 부작용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이다.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오직 남성을 기쁘게 하기 위한 대상이라는 비뚤어진 여성상을 학습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는 아동이나 청소년기의 남성에게 더 심각한 문제다. 이때 잘못된 여성상을 형성한다면, 그것을 평생 가지고 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포착되고 있다. 남성 청소년들이 인터넷 상의 여성 혐오나 여성이 극도로 성적 대상화 된 포르노그라피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구성한다는 것은 이젠 비밀도 아니다.

이처럼 비뚤어진 여성상을 가진 남성들은 어떤 행위를 하게 될까. 이들이 그런 인식을 가지고 여성을 만나게 된다면, 그 여성을 어떻게 대할까. 답은 뻔하다. 가진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로빈 윌쇼의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는 이 같은 결과를 심도 있게 분석한 저서이다. 여성이 성적 주체가 아닌 극단적인 성적 대상으로 인식 될 때, 어린 남성들은 여성을 평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성관계를 위해 쟁취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다. 남자 아이들은 유일한 주체인 자신만이, 여성과의 관계에서 성적인 주도를 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대상에 불과한 여성이 자신의 의사를 거절한다면? 남성은 그것을 자신에게 상처 주는 행위로 여기고 앙갚음하거나 혹은 그 여성을 제압한 뒤 성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최근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성폭력' 혹은 '친밀한 사람에 의한 강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들은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남성들에 의해 발생한다. 윌쇼는 책에서 데이트 강간 가해자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는데, 이 가해자들은 형사 전과만 놓고 보았을 때 매우 '전형적인' 대학생들이라고 언급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데이트 성폭력 가해자들이 남성성을 습득한 문화, 호모소셜한 관계가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집단 내부에서 여성을 재화로 보는 표현('먹어보고 싶다')이나 성관계를 성과로 여기는 표현('저 여자에게 한 수 가르쳐주겠다'), 혹은 여성을 아동이나 동물 또는 성기로 보는 표현을 사용하며 여성을 극단적으로 성적 대상화 하는 인식을 강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혈기왕성한 남자들이라면 할 만한 말' 정도로 사회에서 치부된다. 그 말들로 형성된 삐뚤어진 여성상이 범죄의 원인이 됨에도 말이다. 이 때문에 남성들이 성폭력을 저지른 후에도 그것을 범죄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책에 인용된 <미즈>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성폭력 가해 남성 중 84%가 자신이 한 행위가 강간이 아니라고 답했다.

지금은 남성들의 성찰이 필요한 때

때문에 우리는 이번 고려대에서의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여겨선 안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큰 위험 신호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할까.

첫 번째로 나올 답은 교육이다. 우리는 성장기의 남자 아이들이 여성을 극단적인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비뚤어진 여성상을 습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여성이 동등한 주체이며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해야함을 끊임없이 환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남자 아이들이 성적으로 백지 상태임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여성 혐오적이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문화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

두 번째는 성찰이다. 남성들이 스스로 또래 남성 집단 내부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고,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대를 맺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부당한 학교의 독단을 막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또 누군가는 자신들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남성들은 무엇으로 연대하고 있는가. 그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이 벌어진 페이스북 비밀 그룹의 이름이 '고추밭'이라는 사실은 매우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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