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전기요금 누진제 잡기

최경민 구경민 우경희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6. 8. 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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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머니투데이 최경민 구경민 우경희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the300]종합]

"에어컨 좀 틀자" 누진제 완화 나선 野…전기요금 인상 역풍?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야권은 앞다퉈 가정용 전기에만 부과하는 누진제를 완화하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다만 섣부른 누진제 완화는 오히려 가정용 전기요금를 올릴 수 있다는 '신중론'도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다.

4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가정용 누진제와 관련해 당차원의 입장을 확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가정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을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던 바 있다. 국민의당은 이미 당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누진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가정용 전기 누진제는 총 6단계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1단계(100kW 이하)의 경우 1kWh 당 60.7원을 내지만, 전력 사용량이 6단계(500kW 초과)에 달할 경우 709.5원에 달하는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누진배율이 약 11.7배에 달한다. 자영업자를 위한 일반용(105.7원), 기업을 위한 산업용(81.0원)이 누진제 없이 계절 및 시간별로만 차등을 두는 것과 차이난다.

가정용에만 누진제를 부과한 것은 1970년대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오일쇼크 때문이다. 전기발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가정의 전기 사용을 억제하고, 산업용 전기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이후 몇차례 완화됐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가정용에 가혹하다는 평가다. 일반 시민들이 비싸게 전기를 쓰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값싼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는 불만이 여전하다. 기업이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가동하는 등 에너지를 낭비하는 원흉으로도 누진제가 지목되고 있다.

정치권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국민의당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현행 6단계에서 4단계로 개편하는 안을 발표했다. 1단계와 2단계를 통합해 1단계의 요금을 적용하고, 3단계와 4단계를 통합해 3단계 요금을 적용하는 안이다. 1~4단계 까지의 전력 사용가구 비율이 94%에 달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더민주는 아직 당차원의 입장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박주민 의원이 누진제 개선의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을 발의했다. 국민의당 보다도 급진적 안이다. 누진단계를 6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하고 현행 11.7배인 누진배율을 2배까지 낮추는 것이다.

특히 양당은 누진제 개편을 통한 서민 전기요금 부담 완화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전체 사용전력의 55%를 차지하는 산업계의 전력사용을 효율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전력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민 의원의 법안에는 전기요금 인상을 대기업부터 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누진제 완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언급되는 방식으로 누진제 구간을 간소화한다면 오히려 서민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이 비싸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요금의 경우 법에다가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결정하는데, 기업 논리를 고려할 때 한전이 값싼 요금을 보장해줄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국민의당의 안처럼 3단계(201~300kW)와 4단계(301~400kW)를 통합했을 때 본래 취지처럼 3단계의 요금(1kWh 당 187.9원)이 적용될 지 장담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전이 4단계 전력 사용자들에게 기존(280.6원) 보다 훨씬 싼 요금을 부과할 경우 손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3단계보다 4단계에 가까운 전력 가격이 형성되며, 기존 3단계 전력 사용자들이 더 많은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결국 누진제 완화는 보다 전체적인 전력수급 계획과 맞물려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어컨을 많이 쓰는 한여름에 여론에 휩쓸리듯 결정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역풍을 정치권이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누진제 문제의 해결은 절대로 급진적인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는 판단"이라며 "전기요금 인상은 전기 수요를 줄이는 것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고려할 때, 요금 인상이 예상되는 누진제 완화의 경우 현재 관심사인 원자력발전소 감축과 연관해 고려하는 등의 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진제 두려워"…가정용 전력 소비 OECD 하위권

# 서울 마포동 32평형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모(42) 씨는 이번 여름에 18평형 에어컨을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틀었다. 전기요금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불볕 더위에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원함도 잠시. 전기요금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을때보다 3배 이상 많이 나온 것을 확인한 후 에어컨 가동을 중단했다.

에어컨 사용 전에는 한 달 평균 약 300㎾h의 전기를 사용해 4만원가량의 전기요금을 냈던 이씨는 하루 3시간 에어컨 사용으로 8만원 정도의 전기요금이 더 부과돼 결국 12만원이 넘는 요금을 납부하게 됐다. 전력 사용량은 510㎾h 정도로 배에 못 미치는 수치지만 요금은 3배 이상 증가한 것. 이 같은 일은 현행 전기요금이 100㎾h 단위로 누진요금이 적용돼 부과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평균 수준에 크게 못미친다. 전문가들은 많이 쓸수록 kWh당 전기요금이 비싸지는 누진제를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2012년 기준 1278kWh로 OECD 34개국 중 26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평균(2335kWh)의 55%에 불과한 규모로 미국(4374kW)의 29%, 일본(2253kWh)의 57% 수준이다.

반면 용도를 구분하지 않고 가정용에 산업용, 공공·상업용까지 합친 1인당 전체 전력 소비량은 9628kWh로 OECD 국가들 중 8번째로 많았다. OECD 평균(7407kWh)도 크게 웃돌았다. 가정용 전력 소비가 적은 것을 고려하면 기업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전력 소비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실제 우리 산업용 전력 소비 비율은 52%에 달했으나 가정용은 13%에 불과했다. 공공·상업용은 32%다. 미국(산업용 23%, 가정용 37%, 공공·상업용 36%), 일본(산업용 30%, 가정용 31%, 공공·상업용 36%) 등 각 전력 소비 비율이 비슷한 OECD 다른 국가들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가 산업용에 편중된 것은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6단계의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6단계 요금이 1단계의 11.7배에 달해 전기를 많이 쓸수록 전기요금이 급증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전기 사용량이 500kWh를 초과할 경우, 1kWh당 요금이 처음 100kWh까지는 60.7원(1단계), 101~200kWh는 125.9원(2단계), 201~300kWh는 187.9원(3단계), 301~400kWh는 280.6원(4단계), 401~500kWh는 417.7원(5단계), 500kWh 초과시엔 709.5원(6단계)이 부과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산업 육성을 위해 전기를 싸게 공급했던 과거와는 달리, 산업용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은데다 전력 수급도 양호해 지금이 요금 체계를 개편할 수 있는 적기"라며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를 완화하고, 산업용 전기요금이 적절히 부과되도록 요금체계를 선진국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료 인상론에 산업계 울상.."깎아줘야 할 판"

사진=머니투데이DB

가정용 전기요금 폭탄의 원인으로 산업용 전기에 대한 지나친 할인이 지적되면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대두된다. 정치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면서 산업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른 주택용 전기요금 차이를 현행 11.7배에서 2배까지 줄이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면서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대기업부터 적용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박 의원에 따르면 주택용 전기사용량은 전체의 14%밖에 되지 않고, 산업용이 56.6%, 일반용(상가,관공서등)이 21.4%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요금 부담은 주택용이 훨씬 큰 상황이다. 누진제 최고구간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산업용의 8.7배, 일반용의 6.7배에 달한다. 산업용 요금을 올려 주택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의당 역시 대기업 전기요금 부담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의당은 최근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줄여 가정의 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기업에 요금을 많이 물리는 내용의 전력정책을 내놨다. 사용량이 많고 비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에 대한 전기요금을 올리고, 사용량을 줄이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전기요금 인상 움직임에 산업계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따라 흑자와 적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철강사들이 수두룩할 것"이라며 "가정의 전기료 부담 원인을 기업에서 찾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니냐"고 말했다.

외려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요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지난 3월 전기요금 개편 건의를 정부에 제출했다. 전력예비율이 안정적인 만큼 요금부담을 낮춰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내용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경쟁국인 중국은 지금 전기료를 내려줘 기업들이 수조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무작정 깎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전력공급 상황이 어려운 만큼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정해 국제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11.7배 vs 1.5배…해외 전기료체제 살펴보니

국회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현행 6단계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해외 선진국처럼 누진단계를 3단계로 간소화하고 누진배율을 2배로 낮추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를 100㎾h 더 쓸 때마다 요금이 증가해 마지막 6단계(501㎾h 이상)에서는 ㎾h당 709.5원을 내도록 돼있어 1단계의 ㎾h당 60.7원에 비해 11.7배나 차이가 난다. 그만큼 누진율이 높다는 얘기다. 또 산업용(81원)과 일반용(105.7원)에 비하면 각각 8.7배, 6.7배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해외 사례는 어떨까. 우리처럼 전기요금 누진제를 채택한 나라는 일본, 미국, 대만 등이다. 대만 5단계(2.4배 차이), 일본 3단계(1.4배), 미국 2단계(1.1배)이고, 중국은 3단계(1.5배), 인도도 3단계(1.7배) 등으로 최저 구간과 최고 구간의 격차가 크지 않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은 누진세가 없는 단일요금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산업계에 적용되는 산업용 전기료 kWh당 81원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3년 한국의 산업용 전기료를 100이라면 자원이 풍부한 미국(74)과 노르웨이(75) 정도가 더 낮고, 일본은 199로 약 2배, 독일 184, 이탈리아 350으로 3.5배나 된다. OECD 평균은 134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요금폭탄과 관련해서 선진국 대비해서 우리나라게 지나치게 징벌적"이라며 "요즘같이 에너지 가격이 낮은 시대에는 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민 구경민 우경희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shyun8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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