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 귀닫은 헌재 "군대 동성간 성행위 방치하면 전투력에 위해"

2016. 8. 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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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밥&법] 판결 체크
헌재, 세번째 동성애처벌 군형법 헌법소원
또다시 5대4 합헌 결정 내려
미군도 2014년 동성애 처벌법 없애
다수의견 “군 전투력 저해 우려”
소수의견 “합의 성관계는 전투력과 관련없어”

박현철 헌번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 5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국회 선진화법' 권한쟁의, 통합진보당 해산 재심청구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의 쟁점 조항들에 전부 합헌 결정을 내리는 날, 중요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선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군인들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옛 군형법 제92조의5항(현 제92조의6항)에 대한 위헌소송 사건이었습니다.

이 조항은 그동안 모두 세차례 헌재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헌재는 문제의 군형법 92조를 2002년 재판관 6 대 2, 2011년 5 대 4 의견으로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날 세번째 결정에서도 헌재는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위헌 결정이 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이 위헌 의견을 내야 합니다.

유엔은 그동안 각국의 ‘동성애 처벌법’은 유엔의 자유권 규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선언해왔습니다. 유엔 자유권 규약은 “(동성애 같은)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거나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2011년 유엔인권최고대표의 조사 결과, 적어도 76개국에서 성적 지향에 근거해 처벌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는 2003년 ‘로런스 대 텍사스 소송’ 판결 이후 동성애 처벌법이 사라졌습니다. 연방대법원이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던 텍사스주의 이른바 ‘소더미법’을 6 대 3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미군의 통일군사법전(UCMJ)은 군인간 항문성교에 대한 처벌 규정을 2014년 ‘폭력이나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만 처벌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동성 간에 합의한 성관계는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미국의 군형법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이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한국판 ‘소더미법’은 여전히 남게 됐습니다. 헌재 심판대에 오른 군형법 제92조의5는 군인이나 군무원, 사관생도 중에서 ‘계간(항문성교)이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었습니다. 유엔에선 한국 정부에 이 법을 폐지할 것을 줄곧 요구해왔습니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최종 권고문에서 “한국 정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어떤 종류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여야 한다”며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0년 10월 문제 조항에 대한 헌재의 두번째 심리를 앞두고 “동성애자의 평등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 등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헌재가 이런 국내외 압박에도 또다시 합헌 결정을 한 것입니다. 합헌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박한철, 이정미, 김창종, 안창호, 서기석)은 “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으며,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방치하면 군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할 때, 이성간 성행위를 한 군인과 차별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김이수, 이진성, 강일원, 조용호 재판관이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합의에 의한 음란행위는 군의 전투력 보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의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심판 대상 조항의 불명확성을 지적하며 “강제성이 없는 ‘합의에 의한 음란행위’가 강제성이 가장 강한 ‘폭행, 협박에 의한 추행’과 동일한 형벌조항에 따라 동등하게 처벌되는 불합리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덧붙여 이 조항으로 “남성 간의 추행만 처벌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 간의 추행이나 이성에 대한 추행도 처벌되는 것인지, 나아가 군인이 일반 국민을 추행한 것까지 처벌되는 것인지 여부를 도저히 알기 어렵게 된다”고 합헌 의견을 반박했습니다.

위헌소송 대리인을 맡은 한가람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는지가 본질적인 문제인데, 헌재의 다수의견은 이를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군대 내 ‘동성애 처벌법’ 폐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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