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서 실패.. 한국으로 '역이민' 공연기획자로 찾은 제2의 인생

이종성 2016. 8. 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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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콘서트기획자 유앤아이 커뮤니케이션즈 남궁정 대표를 만나다

[오마이뉴스 글·사진:이종성, 편집:유지영]

 공연기획사 유앤아이 커뮤니케이션즈의 남궁정 대표. 그는 1인 기업으로 치열한 업계에서 3년째 버티고 있다.
ⓒ 이종성
남궁정씨는 이제 만 3년 된 공연기획사 유앤아이 커뮤니케이션즈(U&I Communications)의 대표다. 일부 극소수 회사를 제외하고 하루가 멀다 하게 개업과 폐업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국내 공연업계 상황 속에서 '1인 기업'으로 해외 및 국내 뮤지션 콘서트, 기업체 및 공공단체 행사 등을 기획해 올 만큼 내실 있는 경영을 해왔다. 

놀랍게도 남궁정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대기업 직장생활을 거쳐 다국적 음반회사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직접 공연기획을 해 본 적도 없고, 더욱이 2005년 캐나다에 이민을 떠났다가 201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선택한 직업이 바로 공연 관련 일이었다.  

한국으로 '역이민'을 결정하고,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공연의 세계'로 뛰어들었을 무렵 남궁 대표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였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과의 만남, 공연을 즐길 줄 아는 관객, 많은 지인들의 도움은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공연기획은 인생 후반부에 만난 필연적 운명이다!'라고 말하는 남궁정 유앤아이 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7월 마지막 금요일인 29일 오후 홍대 부근에 있는 카페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꿈꿨던 이민은 실패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 언제부터 공연 관련 일을 하게 되었나?
"2005년에 이민을 떠났고 캐나다에서 살았던 7년 동안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다시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기회가 닿았는지 2012년 11월 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의 공연기획사에 취업하게 됐다. 그리고 2013년 7월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내 회사를 설립했고, 같은 해 10월 색소폰 연주자 데이브 코즈(Dave Koz)의 내한 콘서트를 처음 치렀다."

-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는 어떤 일을 주로 했나?
"2002년 다국적 음반사 임원직에서 물러난 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상당 기간 준비를 하던 중 당시 캐나다 이민과 유학이 인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력, 경력, 영어시험 성적만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독립기술이민'이란 분야에 '마케팅 전문가' 자격을 인정받아 이민을 지원했다. 처음에는 이민을 가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일을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방향을 선회하게 됐다. 그 당시에 가장 순조롭게 진행된 일이라서 이민 가야 할 운명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10년 넘게 음반사에서 홍보 마케팅 관련 업무를 실무자를 거쳐 임원으로서 일했다. 절친이 된 데이브 코즈 같은 해외 아티스트의 추천서류, 업무를 하면서 만나게 된 외국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중 캐나다의 국민가수 셀린 디옹(Celine Dion)과 국내외에서 찍은 여러 컷들도 첨부했는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절차를 앞당기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웃음)

나는 그곳에서 음악과 영화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캐나다로 중계하는 일을 하고, 분당에서 가정식 요리선생님으로 꽤 알려졌던 아내는 캐나다인과 중국인 손님까지 모을 수 있는 퓨전 한정식집을 오픈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중화 문화권에서는 대장금의 영향으로 한국음식이 인기가 높았고, 부유한 홍콩계 중국이민자들이 많아 요식업이 잘 될 것이란 기대가 무척 컸다.

그런데 막상 이민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현실은 달랐다. 나와 아내가 각자 하고자 했던 일들을 해나가기에는 시장 환경, 문화 그리고 현실 상황이 매우 열악한 편이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관련된 업무를 일정 기간 시도하기는 했지만 여건상 큰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았고, 아내가 하려 했던 일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렵게 이민을 선택한 남궁정 대표, 하지만 결론은 한국으로의 복귀였다.
ⓒ 이종성
- 그렇다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7년 넘게 캐나다에서 열심히 살았다. (웃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이민자들이 거주할 집을 맞춤형으로 개조 보완해 주는 인테리어 사업을 주된 일로 하면서 아내와 더불어 두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지만, 이민자의 꿈이 깨질 수밖에 없는 환경과 상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 체증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

물론 가족과 지인 등 많은 분의 만류와 걱정도 있었지만, 아내와 거듭된 상의와 고심을 한 끝에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다시 새롭게 삶을 시작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태어난 곳으로 회귀 본능이 있는 소위 '연어족'이 된 것이다."

- 우리나라의 공연업계 현황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편인데?
"맞다. 정말 어렵고 힘들다. (웃음) 한국에 다시 돌아온 2012년, 예전에 몸담았던 음반계열 회사나 일반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나이와 경력 단절 등 여러 가지로 불가능했다. 그나마 과거의 경력을 토대로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들을 할 수 있는 곳이 공연업계였고, 짧게나마 공연의 처음과 끝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한국에서 바로 공연 관련 포괄적 업무들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유앤아이 커뮤니케이션즈(U&I Communications)란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불과 3개월 뒤 음악인 친구 데이브 코즈의 내한 콘서트로 내 일의 첫 닻을 올렸다. 대부분의 지인이 창업을 반대하였고 당시 자금도 풍부하지 않아 도처에 급전을 빌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8월부터 연말까지 진행해야 할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계약금과 대관료 등 선금을 집행할 일들이 여전히 많아 자금운용 문제로 벌써 걱정이다. 음악계에서 일하는 동료 및 지인들은 내가 3년 넘게 잘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다. (웃음)"

- 그런가? 지금껏 성과가 좋았다고 본인도 생각하나?
"성과가 좋았다고 말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했듯이 나름 잘 버텨 왔다. 대박 성공을 거두기 위해 상당한 금액이 투자되어야 하는 위험도 높은 공연에 손을 대지 않았고, 내 여력 상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1인 기업'으로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많은 분들(업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공연 관련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토탈 비즈니스(Total Business)'로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내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난 3년 동안 여러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콘서트, 기업후원 공연 및 여러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금전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과 일을 해왔기에 큰 손해는 안 보며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감사하게도 돈을 번 일도 더러 있다. 지금껏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지금은 1인 기업이지만...

 남궁정 대표는 페스티벌 기획자로서의 목표도 갖고 있다.
ⓒ 이종성

- 남궁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두 개가 있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에 했었던 색소폰 연주자 워렌 힐(Warren Hill)의 내한 콘서트다. 한국 관객을 배려하고 알찬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여러 의견을 워렌 힐 측에게 전했고, 많은 부분을 받아들여 준 워렌 힐은 관객과 하나가 되는 최고의 라이브 무대를 펼쳐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이었지만, 워렌이 앙코르 엔딩 곡으로 들려주었던 비틀즈(The Beatles) 원곡 '헤이 주드(Hey Jude)' 연주는 소름과 눈물이란 선물을 내게 주었다. 더욱이 흥행도 성공했다. (웃음)

올 4월에 기획했던 래리 칼튼 쿼텟(Larry Carlton Quartet) 공연 역시 잊을 수 없다. 금전적으로는 손익분기점을 겨우 맞춘 아쉬움이 있지만, 앙코르 음악으로 거장 기타리스트 래리 칼튼과 밴드가 연주했던 '아리랑', 그의 대표곡 '슬립워크(Sleepwalk)'와 '룸335(Room 335)' 등 3곡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환상적인 시간으로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이다."

- 올 하반기 준비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연을 소개해 달라
"여러 공연이 차례로 열릴 예정이다. 8월 22일 미국 컨템포러리 재즈계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남성 뮤지션 브라이언 컬버슨(Brian Culbertson)과 밴드의 공연 준비로 한창 바쁜데, 그의 라이브 무대를 미국에서 직접 봐서 소기의 결과를 얻을 거로 생각한다.

10월에는 두 팀의 내한 콘서트를 치를 예정이다. 7~80년대 높은 인기를 누렸던 영국 밴드 스모키(Smokie)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노먼(Chris Norman)와 네덜란드 출신 여성 색소포니스트 캔디 덜퍼(Candy Dulfer)의 공연이 초순과 중순에 각각 열릴 예정이다.

크리스 노먼의 경우 서울, 대구, 대전, 여수 등 회사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규모가 갖춰진 전국 투어 콘서트를 치르는 것이라 상징성도 있고, 빼어난 미모와 연주 실력으로 국내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이미 섰었던 캔디 덜퍼의 경우에도 첫 번째 단독 라이브 콘서트라 준비를 많이 해 한국 관객과 만날 할 것 같다.

11월에는 '대한민국 재즈의 전설' 류복성 선생님과 함께 실력파 재즈 뮤지션들의 격조 높은 공연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 재즈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공연과 행사도 많은데 잘 될 경우 복이 될 수 있지만 안 될 경우 큰 어려움이 직면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잘 될 거라는 긍정적 마인드로 모든 일에 집중하는 중이다."  

- 향후 계획 내지는 청사진을 그려 본다면?
"짧은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공연업계에서 6개월, 1년 계획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뮤지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 측면이 워낙 많아서일 수 있는데, 가능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시도는 한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나름의 목표는 분명히 생겼다. 양질의 공연 콘텐츠를 꾸준히 기획하고 공급해 나아가 관객들과 음악인들, 연관 업체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회사로 자리매김해가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유력한 공연기획사로 인정받게 되면 '기운이 있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자!'는 내 개인적 목표도 이루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웃음)

국내외 음악인들의 콘서트를 한국 또는 해외에서 활발하게 개최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 언제 이루어질지 확답은 못 하지만 미국에 지사를 설립해 위에서 언급한 국제적 규모의 공연 비즈니스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게 목표다."

- 어떤 공연기획자 겸 회사 대표로 기억되고 싶은지?
"작은 규모로 시작되겠지만 페스티벌 기획자로도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싶다. 여러 아티스트의 공연이 모여 '하나의 음악축제'가 되어나가는 과정을 직접 만들고 완성해 나가는 일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재즈 페스티벌'이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만간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향후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함께 일할 사람들도 더 늘어나게 될 텐데,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굴곡 없이 성장해 나가는 가족기업을 같이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전통과 신뢰로 쌓인 '한국의 대표 공연 기획사' 대표로 인정받을 거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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