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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가 이창원(44)은 백정기(34)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백정기는 자신이 만든 과학적 장치들과 전근대 주술 행위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합친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반향을 일으켰다. 삼성 미술관 리움의 신예 발굴 기획전인 ‘아트스펙트럼 2016전’에서 전시 중인 ‘악해독단’은 같은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기우제가 염원하는 ‘비’, 즉 ‘물’이 지닌 치유의 메시지와 함께 주술 행위에 주목한 작품입니다. 메마른 대지처럼 이분법적 사고로 갈라져 버린 이 사회의 봉합과 치유를 기다리는 마음을 기우제와 연결해 본 것이지요. 사람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 정신과 에너지를 작품으로 드러내기 위한 과학적 장치들을 악해독단을 위해 고안했습니다.”
조선의 사라진 기우제단인 악해독단에서 착안한 동명의 설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전시장 1층에 느티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느티나무는 육각제단으로 둘러싸였고, 제단에는 촛불이 있다. 기원의 의미로 밝혀진 촛불의 열에너지는 그가 고안한 장치에 의해 전기에너지로 변환돼 느티나무와 인접한 라디오 송출기 전원을 켠다.
느티나무는 악해독단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대담 내용이 실린 라디오 전파를 멀리 전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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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의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스펙트럼 2016'전 출품작인 '악해독단' (부분).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 |
전시장 지하에 둔 전도성 잉크로 그려진 느티나무 그림은 수신기다. 이 그림과 연결된 라디오가 느티나무가 발산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라디오 옆에는 젖은 흙으로 빚은 후 바셀린을 바른 용의 형상이 있다. 용은 기우제에서 비를 부르는 존재. 바셀린은 수분의 증발을 막아 수신인 용의 기운을 강하게 하는 주술적 장치이자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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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의 '바셀린 헬맷과 갑옷'. /사진제공=백정기 |
그는 악해독단에 얽힌 역사적 슬픔을 추모하기 위해 벽돌 기념비도 설치했다. 벽돌 틈새에도 바셀린을 발랐다. 근래 용산 미군기지에서 발견된 악해독단은 미군의 바베큐 그릴 받침대로 사용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정기는 어린 시절 화상을 입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가 물과 바셀린인 이유는 상처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몸에 불로 입은 상처가 많이 있어요. 화상 때문에 부모님은 제 몸에 자주 바셀린을 발라주셨고요. 훈육을 위해 회초리를 때리시고, 밤이 되어 제가 잘 때 들어와 회초리 맞은 자리에 발라주던 것도 바셀린이었어요. ‘약 발라주셨으니 내일부터 잘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는 바셀린으로 만든 헬멧, 바셀린으로 만든 장갑과 같은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바셀린이 머금은 수분, 즉 물을 치유의 메타포로 사용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아트스펙트럼 2016전은 오는 8월 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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