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360°] '게임황제' 김정주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 '인간관계론'

김경준 입력 2016. 7. 30.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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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준(49)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 사건에 연루된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연 매출 약 2조원의 거대 게임기업 넥슨을 이끌고 있는 김정주 NXC 대표가 29일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NXC는 넥슨의 지주사다. 김 대표는 이날 사과문을 내고 일본 넥슨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사과문에서 “사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최소한의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법의 판단과 별개로 평생 이번 잘못을 지고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그는 대한민국 벤처의 살아있는 성공 신화였다. 지난해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넥슨은 190여국에서 100여개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1996년 첫 게임 ‘바람의 나라’로 거둔 첫 해 수입이 1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20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더불어 김 대표도 엄청난 부를 얻으며 올해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771위(순자산 33억달러)에 올랐다. 국내 기업인들 중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이어 세 번째다.

그토록 잘 나가던 그가 몰락한 원인은 사과문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바로 ‘사적 관계’에서 불거진 문제들이다. 숱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넥슨을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그의 다양한 인맥이 이번에는 발목을 잡았다.

사업가 김정주의 ‘M&A 본능’

김 대표는 1994년 서울대와 카이스트 대학원 동기인 송재경(엑스엘게임즈 대표)과 의기투합해 회사를 창업했다. 그들이 고른 사업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이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넥스트 제너레이션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의 줄임말인 넥슨으로 지었다.

문제는 너무 앞서갔다는 점이다. 당시 상용 인터넷 서비스는 물론이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메일도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당연히 온라인 게임은 개념조차 제대로 모르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이들을 거들떠 보지 않는 상황에서 탁월한 천재인 송재경이 즐겨 보던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토대로 동명 게임을 만들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아닌 PC통신으로 전화를 걸어 접속하는 방식이었다.

투자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곳은 IBM이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들은 IBM은 전산장비를 더 많이 팔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수익이 발생하면 반씩 나누는 조건을 내세워 선뜻 약 5,000만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 것은 별개였다. 수익 없는 나날이 지속되다 보니 보다 못한 IBM에서 당시 주거래처였던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홈페이지 제작 일감을 맡겼다. 다행히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 선후배였던 직원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남다른 재능을 지녔기에 탁월하게 일 처리를 했다. 이때 벌어들인 수익을 토대로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게 됐다.

이후 넥슨은 게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여럿이 모여 고민하던 중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독특한 사업 방식을 내놓았다. 바로 부분 유료화다. 게임은 무료로 즐길 수 있지만 더 많은 점수를 얻거나 다른 이용자들과 대결에서 이기려면 일부 아이템을 돈 주고 사야 하는 것이 부분 유료화다.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사지만 여전히 게임을 무료로 즐길 수 있기에 저항감이 적었다.

이후 넥슨이 도입한 부분 유료화는 각종 온라인 게임업체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사업 모델이 됐다. 미국 IT잡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은 21세기 최고의 기업으로 구글과 넥슨을 꼽으며 넥슨에 대해 “무료로 상품을 나눠주고 충성 고객 일부가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도록 만드는 21세기형 ‘프리미엄(FreemiumㆍFree+Premium)’사업 모델을 세계 최초로 만든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부분 유료화 성공을 토대로 넥슨은 게임개발업체들을 속속 인수하며 외형을 키웠다.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위젯,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 ‘서든어택’의 게임하이 등 당시 인기게임을 개발한 업체들이 속속 넥슨 소유가 됐다. 뿐만 아니라 2012년 6월 온라인 게임업계 최강자였던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대량 매입해 경영권 인수에 나서면서 게임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의 인맥이 빛을 발했다. 위젯을 창업한 이승찬은 김 대표의 서울대 후배이자 한때 넥슨 직원이었고, ‘던전앤파이터’의 허민 대표도 김 대표의 대학 후배였다. 처음에는 우호적 동반자였다가 나중에 경영권 분쟁 상대가 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도 대학 동문이다.

이처럼 넥슨이 게임개발업체들의 M&A에 집중했던 것은 김 대표의 남다른 사업관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스타크래프트’에 이어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온라인 게임이 전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보고 2010년 이후 해외 시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블리자드 등 해외 거대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와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김 대표는 넥슨의 유통 능력에 엔씨소프트의 게임 개발 능력이 합쳐지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높은 게임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때 한국 신발 산업은 세계 최고의 공장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키가 100조원대 회사로 크는 동안 모두 하청업체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국내 게임 산업이 협업을 해야 나이키와 같은 가치를 지닌 기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행히 넥슨과 게임 회사에 더 좋은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M&A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리그오브 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를 인수한 텐센츠 등 중국 기업들의 영향도 컸다. 중국 자본에 밀리지 않고 온라인 뿐 아니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뒤쳐지지 않으려면 M&A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본 것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런 넥슨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 대표가 돈에만 집착한다”며 넥슨을 ‘돈슨’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김정주의 M&A 성공 비결은 ‘인맥’

“M&A가 성공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공이라고 합니다. M&A 결과가 시원찮으면 모두 '김정주 탓'이라고 하죠. 당시 데이비드 리 넥슨 일본법인 대표가 인수 아이디어를 냈고 네오플의 허민 대표를 만나서 최종 설득하는 것은 제 몫이었습니다. 게임업계를 떠나 다른 사업을 하는 허 대표에게 1,0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허 대표가 술을 마시지 않아서 그를 만나면 영화를 보며 같이 놀았습니다. 그런 일이 제 일이지요.”

2009년 네오플을 3,852억원에 인수한 뒤 어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밝힌 내용이다.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친해지면 사람이 보입니다. 자주 만나 일상 얘기를 하면 어느 순간 ‘때’가 와요. 서로 믿고 진지해지면 그때 사업 이야기를 하고 성과도 좋아지죠. 10년 이상 보면 남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첫 만남에서 일 얘기보다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것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는 2012년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핀란드의 로비오를 방문했다. 그는 당시에도 미카일 헤드 대표와 그의 아버지를 만나서 순록으로 만든 스튜를 먹으며 자연 얘기 등 그냥 사는 얘기를 나눴다.

김 대표는 창업을 주제로 한 카이스트 강의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기능적으로 뛰어난 사람보다 오래 같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창업하는 편이 좋습니다. 창업 후 빨리 회사를 팔 생각이면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이 좋지만 길게 본다면 다릅니다.”

하지만 그의 인간관계론은 엔씨소프트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갈등을 겪은 뒤 한계를 드러냈다. 인수 전에는 두 부부가 함께 골프를 치러 다닐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지분 투자도 했으나 2015년 넥슨이 엔씨소프트 경영 참여를 선언한 이후 상호 신뢰에 금이 갔고 그의 인간관계론의 진의도 의심받게 됐다.

‘사적 관계’와 ‘공적인 룰’

김 대표는 사람 욕심이 많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학연으로 엮인 인맥을 바탕으로 영입한 숱한 개발자들은 물론이고 전 일본 넥슨의 데이비드 리 대표, 현 오엔 마호니 대표를 영입한 것도 사람 욕심에서 비롯됐다. 김 대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알고 지내다가 넥슨을 더 키울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2010년 넥슨 일본법인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오엔 마호니를 영입했다.

하지만 서울대 동기였던 진경준 검사장과 맺은 인연 만큼은 달랐다. 진 검사장과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잘못된 인연 또한 김 대표가 지금껏 쌓아 올린 업적의 가치를 단숨에 평가절하 시켰다.

2005년 김 대표는 창업 11년 만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때 세간의 관심은 넥슨의 주식시장 상장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누가 어떤 제안을 해도 상장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넥슨의 구조를 본다면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해 그는 진경준 검사장에게 주식을 사실상 거저 주면서 그와 잘못된 악연이 시작됐다. 넥슨을 흥하게 했던 그의 인연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결국 검찰 수사까지 받게 만드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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