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민 74% "여혐 심각" 하다는데.. 정부는 소극적

심희정 기자 2016. 7. 30.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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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건' 이후 70여일.. 여성혐오 논란은 진행형

성범죄, 혹은 여성혐오 범죄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무감(無感)하다. ‘여성혐오’는 여전히 범죄의 테두리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여론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혐오 범죄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촉발한 ‘여혐 범죄’ ‘여혐’ 논란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혐오가 맞는지 아닌지를 두고 온라인 등에서 거친 논쟁이 오간다. 지난 11일 서울대 인문대 남학생 8명의 ‘단톡방(모바일 메신저 단체채팅방) 성희롱’ 사건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국민대 고려대 경희대 등에서도 남학생의 ‘성희롱 단톡방’이 잇따라 공개됐다.

‘여혐 범죄’ 규정에 소극적

수사기관은 강남역 살인사건에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5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려면 경향성이 있어야 한다”며 “아직까지 특정한 경향성을 나타내는 혐오 범죄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이 사건에 대해 “여성 전반을 비하·차별한 점은 확인할 수 없었고,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왜 수사기관들은 ‘여혐 범죄’를 규정하는 데 소극적일까.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9일 “정부 차원에서 혐오 범죄 자체를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 사회적 갈등을 촉발시킬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범죄 양상을 부정하면 차별에 대한 움직임이 조직화될 위험이 있다”며 “더 큰 문제를 억제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혐오 범죄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가부장적 문화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등장할 텐데, 우리 사회는 성 평등에 대한 규범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협소하다”고 했다.

74.1% “여성혐오 심각하다”

여론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7일 성인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4.6%는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답했다. 강남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는 비율은 63.3%였고, 여성혐오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은 74.1%에 달했다.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데 찬성하는 비율은 77.1%에 이르렀다.

여성단체들은 여성혐오에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비방한 네티즌 등을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단체들은 “현재 법률은 성차별에 기반을 둔 혐오 표현에 대해 규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성차별에 근거한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도, 놀이도, 문화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와 달리 영국은 여성혐오를 범죄로 본다. 영국 경찰은 여성혐오 범죄(misogynistic crime)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태도가 동기가 된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는 ‘복수의 남성이 단순히 상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지른 행위’도 포함된다. 영국 노팅엄셔 경찰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여성에게 접근해 휘파람을 불거나 동의 없이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증오범죄’ 범주에 포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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