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피자는 밥값 청구 안돼".. 초등생처럼 과학자 규제
정부과천청사를 방문하는 정부 산하 연구소 직원들은 청사 방문동에 있는 카페나 편의점에 들러 날짜·시간이 찍힌 영수증부터 챙긴다. 대덕 연구단지의 A연구소 관계자는 "과천뿐 아니라 국내 출장을 가면 출장지에 있었다는 증빙을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직원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설치하도록 했다가 개인 정보 침해 논란이 불거지자 사용을 중단했다. 이 앱은 실행하면 출장자 위치가 인사팀에 통보된다. 한 정부 연구소 연구원은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연구원들을 초등학생 감시하듯이 간섭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을 옭아매는 지침 계속 생겨나
정부 연구소들이 이런 규제를 시행한 것은 2013년부터이다. 당시 감사원 감사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국내 출장을 허위로 신고한 뒤 출장비를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각 부처는 정부 연구소에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연구소 대부분이 영수증 증빙 등 규정을 만들었다. 연구원들은 일부의 일탈 때문에 2만명에 이르는 정부 연구소 연구자들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고 불만이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정부 연구소나 대학에서 문제가 생기면 곧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면서 "과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자율성인데, 오히려 자율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계속 새 지침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과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닭집 영수증'도 황당한 규제로 꼽힌다. 정부 연구소는 물론, 정부 연구비를 지원받은 대학에서도 식비로 치킨을 먹을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관계자는 "모 연구소에서 치킨과 맥주를 함께 시켜 먹은 사례가 나오면서 전면 금지됐다"고 말했다. 일부 연구소에서는 피자도 지출 금지 항목이다. 정부 감사에서 '피자는 간식이지 식사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산하기관 종사자의 근태를 점검하는 '복무 점검' 역시 과학계의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옭아매기라는 비판이 많다. 연구자들은 연구와 실험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거나 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정부 복무 점검은 이런 연구자들의 늦은 출근까지 연구소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비율 줄이라면서 정규직 전환은 외면
정부 연구소들은 고객 만족도 조사도 받는다.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는다는 이유로 산업은행·서울대병원 등과 같은 평가 기준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 연구소 25곳이 매년 수천만원씩 돈 써가며 고객 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다. 대덕에 있는 정부 연구소 관계자는 "은행이나 병원과 달리 우리는 고객이라고 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기술 상담을 한 중소기업이나 공동 연구자까지 모두 동원해도 최대 100명 정도에 불과한데, 억지로 고객 만족도 조사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모순되는 일도 허다하다. 공공 기관에 비정규직이 과도하다는 게 사회적 이슈가 되자, 정부에서 연구소의 비(非)정규직 비율을 낮추라고 하면서 정규직 직원 추가 채용은 막는 식이다. 이 때문에 연구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을 해고해 목표치를 달성하고 있다. 최근 계약이 해지된 한 연구원은 "계약 연장을 약속받았는데, 정부 방침이 갑자기 내려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면서 "이런 식이면 우수한 박사후 연구원이나 병역 특례 전문 연구 요원을 활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연구소 기관장은 연구 성과보다도 보여주기식 실적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예컨대 기관장이 다른 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양해각서(MOU) 체결식'이 진행된다. 2006년 151건이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연구소 25곳의 MOU 건수는 2010년 216건, 지난해에는 471건으로 급증했다. 정부 연구소 한 곳이 평균 19건 MOU를 맺은 것이다. 심지어 초·중학교와 맺은 MOU도 많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관계자는 "MOU만 맺을 뿐 별다른 후속 조치가 없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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