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보육 한 달]종일반 아이들도 오후 4시면 '집으로'.."맞춤반과 왜 나눴나"
[경향신문] ㆍ서울 구로 한 어린이집 가 보니
지난 28일 오후 4시, 서울 구로구의 ㄱ어린이집 1~2세 통합영아반인 도토리반 문 앞에 정환이(2·가명) 엄마가 가장 먼저 나타났다. 정환이가 “엄마”를 외치며 뛰어나오자 도토리반 아이들은 옹기종기 현관 방충망 앞에 모여 정환이가 엄마 손을 잡고 집에 가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선생님 한 명이 “엄마 오시면 불러 줄게.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4시가 지나며 아이들은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맞벌이 부모 “우리가 원한 정책 아니다”
오후 5시쯤 되자 도토리반 아이들 14명 모두가 귀가했다. 이 중 하루 6시간만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맞춤반 아이들은 3명뿐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원칙적으로 12시간 보육을 받을 수 있는 종일반이지만 늦게까지 원에 남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 어린이집 전미송 원장(62)은 “영아의 경우 시설에 오래 있는 것이 아이 정서발달에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맞벌이 가정에서도 하원도우미나 조부모가 데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보육은 0~2세반 영아의 어린이집 이용을 하루 12시간까지 할 수 있는 종일반과 하루 최대 6시간과 필요할 경우 월 15시간의 긴급바우처를 추가 이용할 수 있는 맞춤반으로 이원화한 제도다. 지난달 말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말했듯 “맞벌이 부모님들이 더욱 당당하게 12시간 동안 보육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맞춤형 보육 시행 한 달, 보육현장에서 종일반 아이들의 귀가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만 1세 아이를 가정어린이집에 보내는 직장인 이모씨(36)는 “예전과 똑같이 근처에 사는 시어머니께 부탁해 오후 4~5시면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있다”며 “다른 직장인 엄마들도 맞춤형 보육 실시 후 달라진 것을 딱히 못 느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복직해 만 2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는 한 직장여성은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 “애착관계 형성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오래 맡기고 싶지 않아서 전업주부들과 똑같이 오후 3~4시면 데려오고 있다”며 “왜 맞춤반과 종일반으로 굳이 나눴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맞벌이 부모를 위한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맞벌이 부모들 사이에선 “이런 걸 원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돈은 돈대로 들고 현장은 혼란
ㄱ어린이집 도토리반 아이들은 원래 오전 9시에 등원해 오전에 놀이를 하고 점심식사 후 낮잠을 잔 뒤 오후 3시에 깨서 간식을 먹고 4시에 하원했다. 하지만 맞춤형 보육 실시 후 맞춤반 아이들은 보육시간을 1시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어디서 시간을 줄일 것인지를 놓고 보름 가까이 운영시간을 확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낮잠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일찍 하원시키기보다는 한 시간 늦게 등원시키는 게 낫겠다는 데 부모들과 어린이집의 의견이 모아졌다. 맞춤반 아동 3명은 7월 중순부터 오전 자유놀이시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긴급보육바우처를 울며 겨자 먹기로 매일 쓰는 가정도 생겼다. 전업주부 ㄴ씨(32)는 “원래 오후 3시에 하원해야 하는데 어린이집 사정상 바우처를 30분씩 매일 써서 3시30분에 하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보육교사들의 업무도 더 늘었다. 인천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한모씨(36)는 “바우처 사용요금 정산을 위해 맞춤반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을 일일이 확인해 입력해야 한다”며 “아이를 데려가는 시간이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아 맞춤반 아이들이 많은 어린이집은 보육교사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목표도 이루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된 것은 정책효과에 대한 세밀한 예측 없이 무작정 사업을 시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맞춤형 보육 추진 전인 지난해 7~10월 전국 4개 지역을 대상으로 20억700만원을 들여 시범사업을 실시했지만 시범사업 결과보고서는 정책을 시행한 지 한 달이 된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늘어난 맞춤형 보육예산 212억원은 추경으로 편성된 상태다. 돈은 돈대로 들면서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맞춤형 보육에 대해 ‘누구를 위한 맞춤형 보육인가’ ‘맞춤형 편법만 속출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지원·최희진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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