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어머니 중 누굴 먼저 구해야 하나요"

오세균 2016. 7.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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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수도권과 북부지역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일주일 넘게 폭우가 쏟아졌다. 맹렬하게 쏟아진 비로 기반 시설이 취약한 농촌 지역의 피해가 제일 컸다. 특히 허난(河南)과 허베이(河北) 일부 지역에는 최고 800㎜ 이상의 그야말로 ‘물 폭탄’이 쏟아졌다. 1998년 이후 최악의 물난리로 기록될 이번 폭우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허베이 성(河北省) 싱타이(邢台)의 한 수재민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이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한다. “한평생 고생 죽도록 했어요! 그런데 모든 게 사라졌어요. 이제 어떻게 살죠”라며 눈물 가득한 수재민의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한다.


폭우가 강타한 농촌 곳곳에서 둑은 힘없이 터지고 마을은 잠겨 바다를 이뤘다.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수재민들의 하소연은 그칠 날이 없다. 딱한 사연 가운데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 평소 우스갯소리로 묻는 말 가운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있다. “자기야, 엄마랑 내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거야?”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남성은 그냥 웃고 만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을뿐더러 일도양단(一刀兩斷)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평온하던 가정이 쪼개졌다. 싱타이(邢台) 다시엔촌(大賢村)에 사는 ‘가오펑서우’(高豊收)씨 얘기다. 가오 씨는 지금도 폭우로 집이 잠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어쩔 수 없었어요.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니까요!” 그는 이번에 닥친 물난리로 아내와 4살 난 딸, 2살 된 아들을 모두 잃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죽은 게 아니라 그의 곁을 떠났다. 홍수가 몰려온 다음 날 그의 아내는 집에 있던 현금 2천 위안과 자녀 둘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다시는 같이 살지 않겠다며 말이다.


그는 지금도 아내가 떠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물에 빠진 아내와 어머니 중 누굴 먼저 구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오 씨 가족은 모두 여섯 식구다. 이 가운데 아내와 딸, 아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까지 이렇게 다섯 식구는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부근에 따로 살고 있다. 마을에 물이 덮치기 전날인 지난 19일 오후 9시쯤, 가오 씨는 벽지를 붙이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승합차에서 친구가 전달해 준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은 싱타이(邢台)에 밤새 폭우가 내릴 거라는 날씨 예보였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싱타이 시 기상대는 폭우 홍색 경보를 발령했다. 중국 기상 경보는 남색→황색→주황색→홍색 순으로 강도가 강해진다. 전날까지만 해도 남색 경보가 발령됐지만, 하루 만에 연속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최고 등급의 기상 경보가 발령된 것이다. 가오 씨는 밤사이에 폭우로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자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차를 돌려 홀로 사시는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집 골목 입구에 도착한 가오 씨는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3시간가량을 기다렸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걱정했던 홍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몸도 피곤했지만 이내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에 차를 몰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 장샤오엔(张晓燕)은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남편이 보낸 메신저인 웨이신(微信) 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였다. 가오 씨가 보라고 말한 뒤에야 영상을 확인한 아내는 무척 당황스럽고 무서워했다고 한다. 마을 하천물이 폭우로 급격하게 불어나는 화면이다. 가오 씨도 께름칙한 느낌은 들었지만 하루 종일 고된 일로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에 곯아 떨어졌다.


하지만 영상을 확인한 아내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의 느낌이 맞았을까. 20일 새벽 1시 50분께를 지나면서 상황은 급하게 돌아갔다. 긴장하고 있던 아내는 멀리서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방송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수다, 홍수가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 직감한 아내는 바로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불과 몇 분 사이에 집으로 물이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제법 물살도 빨랐다. 잠에서 깬 가오 씨는 혼비백산한 사람처럼 어쩔 줄 몰랐다.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난 그는 바지만 걸친 채 거의 반사적으로 어머니 집으로 달려갔다. 2분도 안 돼 어머니 집에 도착했지만 이미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엄마, 엄마, 지붕 위로 먼저 올라가!” 놀란 어머니는 다행히 지붕 위에 올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머니를 구한 뒤 한숨을 돌리던 가오 씨는 그제야 불현듯 집 일이 걱정됐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홍수가 앞길을 막아섰다.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이 세차게 동네를 휘젓고 흘렀기 때문이다.

한 이웃집 주민은 홍수가 집으로 들이닥치는 걸 막겠다며 문을 잠그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안 돼, 막을 수 없어, 얼른 지붕 위로 올라가” 가우 씨는 이웃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피를 독려했다. 그들도 서둘러 지붕 위로 올라가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새벽 4시쯤부터 수위가 점차 내려가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남편은 근심 속에 삽 한 자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집안은 이미 토사가 덮쳐 모든 것이 엉망인 상태로 변했다. 이를 본 순간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족 중 그나마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4살 딸, 2살 아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가족들은 무사할까? 아내 혼자 세 가족을 구했을까? 어찌 됐을까? 가오 씨는 순간적으로 엄습해 오는 불안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을까, 지붕 위에서 가족 모두를 발견했다. 그 순간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제가 더듬어 올라 갔을 때 가족들은 모두 지붕 위에 있었어요. 그리고 다행히 전부 무사했죠.” 가오 씨는 매우 기뻐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게 아내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내는 남편과 말을 섞기 싫다며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내 장샤오엔(張曉燕)은 남편인 가오 씨보다 9살 적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이다. 지난 2000년 그가 23살이던 무렵 다른 사람과 싸우다 9년 형을 선고 받자 첫 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그 뒤 2011년, 그는 산둥(山東) 성 랴오청(聊城)의 한 오토바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아내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사랑했다. 그 뒤 두 사람은 공장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싱타이로 내려가기로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했고 딸, 아들을 낳아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평소에 두 사람은 함께 벽지 바르는 일을 했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봤다. “아내는 어질었어요. 시부모한테도 참 잘했죠. 성격도 물론 좋았고요. "아내 자랑을 늘어놓은 가오 씨는 부부간의 금실도 좋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거의 다투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떠난 지금의 상황을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가오 씨는 누가 이런 가혹한 질문을 자신에 던졌는지 한숨짓고 있다. 농담이라면 웃어넘기겠지만, 현실로 닥쳤을 때 당황스러움은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처자식을 먼저 지붕으로 보내고 다시 어머니를 구하러 갔다면 어땠을까?” 그럼 아내가 당신 곁에 남지 않았겠냐 라는 질문에 “정말 급했고, 전후좌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저는 누굴 먼저 구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어요. 그냥 본능적으로 ‘사근취원’(捨近取遠),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선택한다는 말만 생각났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그에게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초래했다.

그는 그날 밤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내가 정작 홍수가 나자 어머니를 먼저 구하겠다며 달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절망을 경험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 혼자서 깊이 잠든 아이들과 다리가 불편한 늙은 시아버지를 지붕 위로 옮기는 일을 감당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2시간 동안 물난리를 혼자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가족을 구하고 자신도 살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가오 씨는 아내의 지금 생각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어머니를 구하는 것은 효도이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돌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남편의 사랑이 식었을 것이라고….”


가오 씨는 집안일이 정리되는 대로 아내의 처가에 가려고 한다. 아내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남편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는 아직도 아내에 대해 모르는 일이 많은 것 같다며 자책을 한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죠?” 한바탕 쓸고 간 하룻밤의 폭우를 원망하면서 그가 던진 말이다.

오세균기자 (sk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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