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선소 폐쇄설에 '꽁꽁' 얼어붙은 군산의 여름

임슬아 기자 2016. 7. 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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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 군산 도크 중단 암시..노동자·상인 불안 증폭

 

28일 전라북도 군산시 오식도동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를 찾았다. 군산조선소는 최근 폐쇄설이 돌고 있다. / 사진=임슬아 기자

 

28일 33℃로 치달은 군산의 공기는 묵직했다.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조선소 분위기는 고요했다. 크레인 소리만 멀리서 ‘탕탕탕’ 울렸다. 운전자 없는 자동차들이 차도 양쪽에 맥없이 줄지어있었다. 그 사이를 화물차 몇 대가 무심하게 지나갔다. 

 

공장은 조용했고 용접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2일 군산조선소에 배정됐던 LPG선 2척 건조가 울산으로 이관됐다. 현대중공업 측은 일상적인 이전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동자와 상인들은 군산 조선소 폐쇄를 우려하고 있다.

4년 5개월 째 군산 사내 협력업체에 몸담은 노동자 임관우(38)씨는 “경기 안 좋다는 말은 매년 들어온 말이라 그러려니 했다. 시급 깎이고 일하는 시간이 확 줄어도 견뎌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년 2월 조선소가 폐쇄된다는 소문을 들으니 일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후 2시 조선소 인근 오식도동 상권으로 들어섰다. 불이 켜진 상점보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가 더 많았다. 조용한 골목 사이 까맣게 그을린 사람 몇몇이 지나갈 뿐이었다.

◇ 조선소 일감 줄며 인근 주거지역 ‘텅텅’ 

조선소 폐쇄설이 돈 이후 조선소 인근 상권은 매출이 절반 이상 급감하는 등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 사진=임슬아 기자

 

3년 전 안양에서 군산으로 내려온 김영철 한울 공인중개사 대표. 그는 “오식도동 원룸이 450여개다. 지난해 11월 이전 공실률은 10% 미만이었지만 구조조정 논란 이후 30~50%에 이르렀다”며 “군산 수주가 적어지니 하나둘씩 거제나 울산으로 떠난 탓이다. 한 달 중개 수가 2~30개였는데 지금은 1~2개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오식도동 부동산 업자는 23명이다. 새만금 산업단지가 꾸려지고 정부 지원을 기대한 사람들이다. 김씨가 안양에서 군산으로 내려온 이유도 새만금 산업단지 발전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선업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라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업자들은 쉽게 정리하고 떠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오식도동 근처 원룸촌은 협력원체 근로자들이 주로 거주한다. 작년 말부터 일감이 줄자 세입자가 월세를 밀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형편이 어려워지자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자신의 사정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오식도동에는 임대 아파트 ‘한성필하우스’가 있다. 총 892세대로 10년 장기 임대가 가능하다. 조선업이 호황일 때 입주한 근로자 가족이 주로 살고 있다. 현재 임대분양률은 40%에 머물러 있다. 가족 구성원과 정착하려는 근로자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시름도 깊어졌다. 오식도동에서 시내로 이동하며 만난 한 택시기사는 “2개월전만 해도 오식도동에 오면 퇴근하는 조선소 손님들이 넘쳐 났다”며 “조선소 폐쇄설이 돈 뒤로는 동네에 사람이 없다. 예전 수입 유지하기 위해 2~3시간 더 일해야 한다”고 전했다.

◇ ‘조선밥’ 포기하고 가게 차리는 사람들

오식도동에는 ‘조선밥’을 포기하고 가게를 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조선소 동료들이 주고객이다. 3년 전 창원에서 군산으로 내려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서 용접을 하던 이은영(48)씨는 2개월전 일을 그만두고 술집을 차렸다. 그는 “용접 일감이 3년 전보다 삼분의 일 정도 줄어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오식도동에 남성 근로자만 남아서 빵집이나 옷집은 생각도 못하고 술집을 차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게를 차린 지 두 달됐다. 개업 초반에는 그래도 손님들이 양주를 많이 찾아 근처 고급 술집을 많이 갔다. 우리 가게 소주 가격이 시세보다 1000원 싸다. 이젠 손님들이 소주 값이 싸다며 우리 가게를 찾는다”고 밝혔다.

이씨 남편은 조선소 2차 협력업체에서 일한다. 이씨는 “남편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말한다. 3년 전에 비해 기성이 많이 삭감됐다. 떨어져 사는 딸들이 용돈을 달라고 할 때 막막하다. 생활비도 반이나 줄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조선업 불황을 피해 가게를 차렸지만 가게 상황도 녹록치 않다. 손님이 절반으로 줄어 아르바이트생 없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이씨는 “조선소 일감이 없어 가게를 차렸지만 장사를 하게 되니 떠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권리금이나 투자비용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오식도동에 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집에 귀가하거나 술집을 찾았다. 문을 닫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그나마 술집에 활력이 돌았다.

◇ “정부와 현대중공업, 군산 포기하지 말았으면”

조선업 노동자와 오식도동 상인들은 정부와 현대중공업이 지역경제를 위해 조선소를 중단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임슬아 기자

 

전북도의회에 따르면 군산조선소 작업물량이 점차 줄어들며 사외협력사 물량이 사내협력사로 배정됐다. 이 탓에 사외협력업체 직원 500여명이 직장을 잃었고 하청업체 4곳이 문을 닫았다. 의회는 군산조선소 선박건조대 폐쇄 시 직영 700여명, 사내협력업체 3100여명, 사외협력업체 1300여명 등 총 51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북도와 조선산업 관련 기관은 27일 도청에서 구조조정과 수주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활성화를 위한 실무협의회를 열었다. 실무협의회는 추경 4억여원을 편성해 조선 기자재 업체 업종 전환 등에 활용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위기에 따른 지역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군산 조선소 노동자들도 이 같은 정부 지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오식도동 카페 앞에서 만난 12년차 현대중공업 협력사 사장 부인 황준미(49)씨는 “얼마 전 남편이 가게 하나 차리면 같이 운영할 수 있겠냐고 묻더라. 그거보고 확실히 회사가 어렵긴 하구나 느낀다”며 “그래도 희망은 놓지 않고 있다. 정부와 회사가 군산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만 도와주길 바랄 뿐이다. 버텨낸다면 새 길이 또 보이지 않겠나”고 말했다.


 

임슬아 기자 seulali@sisajourn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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