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서연 원불교 외국인센터 소장

2016. 7. 29. 11: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학박사 따고 늦깎이 출가..2000년부터 외국인 한글 교육 "홍익인간 뜻 되새겨 우리나라 찾은 외국인 보듬어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최서연 소장이 28일 서울 화곡동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에서 연합뉴스의 인터뷰에 응한 뒤 문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2016. 7. 29.

공학박사 따고 늦깎이 출가…2000년부터 외국인 한글 교육

"홍익인간 뜻 되새겨 우리나라 찾은 외국인 보듬어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우리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란 이념을 내세워 건국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처럼 숭고한 뜻으로 세워진 나라가 없지요. 그런데 단군의 후손을 자처하는 우리가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을 멸시하고 차별해서야 되겠습니까?"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정부의 발표가 난 이튿날(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에서 만난 원불교 최서연(58) 소장은 가냘픈 몸매와 가녀린 음성답지 않게 단호한 어조로 외국인을 보듬지 못하는 일부 국민에게 죽비를 내려쳤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나 결혼이주민을 깔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이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분위기를 흐린다며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우리가 건국 이념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빚어지는 일입니다. 외국인이 200만이든 20만이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지요. 온 세상이 그물망처럼 엮여 있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나만을 위하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자신을 망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서울외국인센터는 '강서 양천 이주여성의 집'이라는 간판도 함께 내걸고 있다. 원불교 중앙총부는 교당(敎堂)으로 인정했지만 교화(敎化)가 목적이 아니고 이곳을 찾는 이들도 교도(敎徒)가 아니어서 '서울외국인교당'이란 이름은 내세우지 않고 않다(교당은 교회나 사찰, 교화는 선교나 포교, 교도는 신자와 같은 뜻이다).

최서연 소장이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돕게 된 사연을 좇다 보면 범상치 않은 그의 이력을 접하고 누구나 놀라게 된다.

1남 3녀의 맏이로 서울 발산동에서 태어난 최 소장은 어릴 적부터 공부에 소질을 보였으나 딸의 학업 뒷바라지에는 뒷전인 당시 분위기 속에 재수 생활을 거쳐 4년 장학생으로 아주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한 이듬해 말 국비 장학생으로 '뉴 아이비리그'로 꼽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리하이대에 유학해 석사학위를 땄다.

(서울=연합뉴스) 최서연 소장이 2015년 8월 스리랑카를 방문해 현지 대학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2016. 7. 29.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제공]

귀국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포항공대에 진학해 박사과정을 밟던 중 정녀(貞女·일생 결혼하지 않고 봉직하는 원불교의 여성 교역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1995년 전남 영광의 영산선학대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KIST 시절 불교 동아리 활동을 하며 관심을 품었다가 나중에 원불교 교전(敎典)을 보고 "내가 찾던 것이 여기에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하던 공부를 마치라는 원불교 종단 어른들의 권유에 따라 포항공대에서 97년 화공학 박사학위를 딴 뒤 수련 과정을 거쳐 99년 12월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敎務)가 됐다.

"처음부터 박사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곳에 취직하려고 하니 학점이 남학생들보다 월등했는데도 받아주는 곳이 없더군요. 당시 공대를 졸업한 여성이 할 일이라고는 과학 실험교사 말고는 거의 없었지요. 그래서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유학을 간 겁니다. 처음에는 부전공이던 생물공학을 더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곳에서 수강한 '화학공정제어'(chemical process control)에 매력을 느껴 박사 때까지 전공으로 삼았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스펙을 갖췄으면서도 늦깎이로 출가한 까닭을 묻자 "교리가 좋고 성직자 생활이 부러웠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후회한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동안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 그때마다 다시 생각해봤는데 진심으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종교 간에 우열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누구에게 구원받는 길을 맡기기보다 스스로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매료됐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에는 남녀 차별이 없다 해도 현실 불교에서는 존재하더군요. 그래서 남녀 차별이 없는 원불교를 택했지요."

그가 교단으로부터 받은 첫 '미션'은 스리랑카에 이른바 개척 교당을 세우라는 것. 이를 준비하면서 주한 스리랑카대사관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만났다가 국내의 스리랑카 노동자가 5천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듣고 당장 이들이 가장 원하는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서연 원불교 교무가 2015년 8월 스리랑카 디지타푸라 지역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그곳 초중고교의 학생, 교사, 학부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6. 7. 29.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제공]

교단이 파주교당으로 쓰려고 사놓은 집에서 2000년 4월부터 한국어 수업을 하던 중 스리랑카 내전이 격화돼 최 교무의 파견은 보류됐다. 최 교무는 서울 목동교당 부교무로 부임해 일하다가 당시 박정훈 서울교구장에게 건의해 2001년 10월 화곡동 어머니의 집에 서울외국인센터를 차렸다.

"제 여동생은 수녀예요. 저보다 10여 년 앞서 출가해 저를 뺀 온 가족을 가톨릭 신자로 만들었지요. 그런데도 98년 아버지를 떠나 보낸 어머니는 제 뜻에 공감해 이층집 전체를 원불교에 헌납하셨어요. 1층은 외국인센터로 쓰고 2층에는 어머니가 세 들어 사십니다."

서울외국인센터는 외국인노동자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인생 상담도 해준다. 이들 자녀에게 장학금도 주고 문화 체험 행사도 연다. 지금은 주로 결혼이주여성이 이곳을 찾는다.

"제가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들에게 손길을 내밀게 된 까닭을 곰곰 따져 보니 제가 지은 신업(身業)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더군요. 신업은 불교에서 말하는 삼업(三業) 가운데 하나로 몸으로 지은 죄업이지요. 제가 미국 유학 시절 흑인들을 싫어해 이들을 피했거든요. 지금 와서 보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때의 신업을 모두 풀려면 더 많은 외국인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쉴 겨를이 없습니다."

최 소장은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원불교 교리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개종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는다. 다만 물어보면 대답은 해준다. 원불교 교리가 오늘날 다원화 사회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원불교 중심 교리는 천지은(天地恩)·부모은(父母恩)·동포은(同胞恩)·법률은(法律恩) 사은(四恩)과 자력양성(自力養成)·지자본위(智者本位)·타자녀교육(他者女敎育)·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 사요(四要)로 요약된다.

동포은은 전 세계 인류가 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라는 뜻이고, 타자녀교육은 모든 자녀를 자기가 낳은 셈 치고 가르치자는 강령이다. 공도자의 범주에는 공자나 석가나 예수나 마호메트가 모두 포함되니 공도자숭배야말로 종교다원주의의 이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는 외국인들에게 자력양성을 가장 자주 강조합니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무시당하지 않거든요. 외국인들은 거리에서나 지하철에서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도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대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지요. 흰저고리와 검정치마와 쪽 찐 머리의 정녀 차림이 얼마나 낯설겠어요. 차별적 시선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걸 견뎌내는 것은 본인의 몫입니다. 화내거나 성질을 부리면 본인만 손해지요. 억지로 이곳에 끌려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최서연 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들에게 늘 자력양성을 강조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2016.7.29

그는 다문화 자녀들에게도 자존감을 품고 살라고 역설하며 "'엄마나라로 가라'며 놀리는 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아빠나라도 있고 엄마나라도 있다'고 자랑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최 소장은 종교 간 대화 모임이나 환경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4대강 개발 논란이나 세월호 희생자 추모 등 주요 사회적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를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2005년 10월 집 옥상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부모이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례명인 요아킴과 안나의 첫 글자를 따서 요안햇빛발전소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한전에 판매되고 이곳은 일반 전기를 끌어다 쓴다. 한 해 3천㎾가량의 전력을 생산해 300여만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집에서 쓰는 전기요금은 매달 3만 원 남짓이라고 하니 쏠쏠한 소득이다.

"제가 공학박사여서 햇빛발전소를 세웠다고 기사를 쓰시면 절대 안 돼요. 그러면 사람들이 과학 지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거든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이제는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얻는 방식을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은 실천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heeyong@yna.co.kr

☞ '공포의 동물원' 코끼리가 돌 던져 7세 소녀 사망
☞ 지방관리 "개인사를 까발려?"…보도 기자 알몸촬영
☞ 도넛 설탕을 마약으로 몰아…60대 '억울한 옥살이'
☞ "죽은 줄 알았는데" 중복에 사라진 '아기 진돗개' 주인 품으로
☞ 폴란드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 미사 집전 중 '꽈당'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