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모서리가 왜 둥근지 알아?

천관율 기자 입력 2016. 7. 29. 1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유럽에 인쇄술이 도입된 이후 책 출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7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불평했다. '책의 끔찍한 물량공세 때문에 정작 쓸 만한 책은 잊히고 인류는 야만으로 회귀할 것이다.' 지식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우리 시대가 믿는 인쇄된 책조차, 그것이 신기술이던 시절에는 진정한 지식을 훼방 놓는다고 공격받았다.

신기술은 인간과 기술이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충격을 동반한다. 우리 시대는 역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기술 격변기다. 인간과 기술, 인간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인 인간공학은 이런 시대에 중요한 통찰을 준다. 7월13일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에서 인간공학 연구자 임지현 교수를 만났다.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 개발을 경험했고, 2010년부터는 학계로 돌아와 홍익대와 유니스트에 몸담았다. 올해 8월부터 애플에 스카우트되어 산업 현장으로 복귀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넘나들며 최전선 기술 이슈를 다뤄온 그녀에게 우리 시대 인간과 기술의 관계 맺음에 대해 물었다.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이 익숙하지는 않다.

인간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사람이 어떠한 한계와 특성을 갖고 있고, 그 특성이 산업 현장에서, 또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어떻게 고려될 수 있는가를 다룬다. 초창기에는 생산 현장의 대형 생산설비와 인간의 관계 맺기를 주로 연구했는데, 소비자 시대가 열리면서 제품을 어떻게 디자인하면 사람이 더 유용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로 관심이 이동했다.

ⓒ시사IN 신선영 :

간단한 디자인에도 치열한 인간공학 연구가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된 계기는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디자인 표절 소송전이었던 것 같다.

인간공학 연구자 관점으로 보면, 서로 다른 회사의 연구들이 비슷한 결과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솔루션을 찾다 보면 결론이 비슷해진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네 귀퉁이 모서리가 각지지 않고 둥근데, 사람의 ‘사용자 경험(UX)’을 생각하면 그게 논리적 귀결이다. 그것도 표절 소송 대상이 됐지만(웃음).

우리 시대의 치열한 논쟁거리다. 스마트폰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나?

기술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변화시키는 건 맞다. 새로운 기술이 사람의 생활습관을 바꾸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방식을 바꾼다. 그걸 발전으로 볼 것이냐 퇴화로 볼 것이냐 논쟁이 치열한데, 내 생각엔 새 기술이 가져온 단점은 그다음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 과거로 후퇴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는 사회에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인데, 열두 살, 아홉 살, 두 살이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쓰도록 뒀다.

막내는 안 쓸 거고, 누가 제일 많이 쓰나?

막내가 우리 집 최고 헤비유저다(웃음). <뽀로로>를 틀어달라고 하고 한참 본다. 어느 순간 보면 러시아어로 된 <뽀로로>를 보고 있다. 유튜브에 보면 관련 영상이 주르륵 뜨는데, 거기서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막 눌러서 보더라.

걱정되지는 않나?

스마트폰이나 영상물이 지나치게 자극 수준이 강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선생님이나 친구와의 관계에 흥미를 못 느낄 정도가 되면 문제가 된다. 그 정도가 안 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 못 쓰게 하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다. 순기능도 많다. 둘째 아이가 지금 화학 주기율표에 꽂혀 있는데, '엄마 플루토늄이 어떻고' 이럴 때 내가 머뭇머뭇하면 애가 직접 찾아본다. 엄마를 좀 무시하면서(웃음). 예전에는 백과사전을 찾고 도서관에 가고, 이렇게 굉장히 품이 드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정보 접근이 간편해지고 다량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연합뉴스 : 임지현 교수는 “정보 접근 방식이 다른 세대에게는 그에 맞는 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금 아이들과 스마트폰 없이 성장한 세대와의 차이를 느끼나?

우리 세대는 책과 신문을 읽으면 다 믿었다. 정보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지, 정보에 권위가 있다는 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딸이 누가 보내준 링크를 보더니 딱 그러더라. '그거 주워온 글이야.' 얘는 정보를 검증하고 선별하고 스크리닝하는 거다.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낸 어떤 정보와, 그냥 재미로 떠돌아다니는 콘텐츠를 구분하더라. 정보를 접하고 소화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세대가 출현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일 텐데, 이걸 하지 말라고 막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보통의 부모들은 무서워하는 길인데.

나도 부모니까 무섭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경험이 인생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지, 최초의 세대가 장성하기 전까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우리 부부도 그런 대화를 많이 한다. 남편이 '괜찮아, 나도 만화책만 보면서 컸는데 잘 컸잖아' 이러면 나는 '만화책하고 스마트폰은 다르지!' 이러고(웃음). 정보 접근 방식이 다른 세대는 그에 맞는 훈련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인간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활자화된 게 권위가 있었다. 아무나 낼 수 없고 출판비용도 높았다. 그런 시대에 글을 읽는 것은 곱씹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시대이고, 묵상하는 시대에서 찾고 공감하고 나누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그러면 결국 생각이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예전과 달라질지 모른다.

정보 습득 방식이 다른 세대가 성장하는데,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예전 방식이 익숙한 분들이다. 괴리가 갈수록 커질까?

삼성에 다니던 시절에 10대 대상 휴대전화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장이 대략 50대 남성이었는데, 세상에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안 된다는 거야!(웃음) 그래서 사장실에 보고하러 갈 때 실물 크기로 고등학생 사진을 뽑아서 들어갔다. '얘가 쓰는 겁니다 사장님!' 그렇게라도 설득하지 않으면 도저히 10대한테 팔 수 없는 폰이 10대용으로 막 출시된다. 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에 10대들이 '삼성 폰은 아저씨 폰이라서 안 써요'라던 시절이 있었다. 10대가 당장 구매력이 있는 건 아닌데 올드한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쌓이면 이들이 커서 결혼할 때 혼수로 삼성 제품을 쓰겠나. 의사결정 라인에서 50대 남성 결정자들이 '내 마음에 안 들어'라고 해버리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겠지?

의사결정권자들의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기업은 굉장한 정글이니까, 여기서 본인이 꼭대기까지 간 거니까. 그러면 자기 방식이 늘 맞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REUTER : 5월7일 미국 플로리다 고속도로에서 처음으로 ‘테슬라 자율주행차 사망 사고’가 났다.

기자도 비슷하다. 취재를 다 끝내고 나면, 보통의 독자가 뭘 모르고 뭘 궁금해하는지, 독자 관점으로 돌아가는 게 잘 안 된다.

어디나 마찬가지구나. 공급자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게 생각보다 엄청 힘들다. 엔지니어 관점에서 보면 이걸 어떻게 돌아가게 하는지가 자기 일이니까 그 관점에서 막 얘기를 하는데,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몰라도 되는 정보가 너무 많다. 꼭 알아야 하는 건 오히려 안 보이고.

1990년대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그랬다. 리모컨은 비행기 조종도 할 만큼 복잡하게 생겼는데, 정작 녹화를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안 가르쳐주고.

코드 녹화 기능이라는 게 있었는데, 옛날 신문에 보면 TV 편성표가 나온다. 거기에 예약녹화 코드 번호가 프로그램마다 실렸다. 그냥 그거 누르면 기계가 알아서 그 프로그램을 찾아 녹화하는 기능이다. 써본 적 있나?

지금 처음 알았다.

홍보하지 않았으니까. 나라에서 하라니까 넣기는 하는데, 그 시대에는 아무도 그걸 판매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쟁이라고 하면 성능과 가격만 생각하던 시대다. 소비자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경험, 소비자 경험(UX)이 경쟁 요소라는 사고가 자리 잡기 전이다.

그때 비디오 플레이어 광고는 전부 ‘골든헤드’ ‘다이아몬드헤드’ 이런 식이었다.

우리 물건이 더 내구성 좋다고 경쟁하던 건데, 그건 소비자 경험하고 직접 상관은 없다. 공급자가 자기 제품에 도취되면 그런 결과가 나온다. 공급자 마인드를 제어하고 소비자 중심으로 설계와 디자인과 마케팅을 재구축하는 게 인간공학자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에 탁월한 인간공학자가 많고 기업에 많이 가 있는데, 그들이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느냐? 그게 잘 안 된다. 한국 기업엔 이런 전문성을 제대로 써먹는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

공급자 마인드를 일부러 가지는 건 아니더라. 가만히 놓아두면 조직은 공급자 마인드로 천천히 미끄러져간다.

공급자, 실제 생산자가 조직 내에서는 실세니까. 생산 쪽에서 불가능하다 해버리면 모든 게 불가능하니까. 리더십이든 조직문화든 소비자 경험을 중심으로 두는 섹터나 사람에게 의식적으로 꾸준히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애플이 준 충격은 컸나?

‘사용자 경험’을 부가 요소가 아니라 경쟁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최초 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중요하다고 전 세계에 각인시킨 건 역시 애플이다. 내가 삼성을 나온 후 에피소드다. 삼성은 이미 화상통화 기능이 출시된 상태고 애플이 뒤늦게 페이스타임 기능을 내놓았을 때다. 그런데 애플 페이스타임은 마주 보고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데 삼성 화상통화는 ‘아이 컨택’이 안 되고 마주 본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거다. 전부 뜯어보고 조사해봐도 기술적인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두 개 놓고 직접 해봤는데, 차이 나는 게 기술이 아니었다.

그럼 뭐였나?

애플 페이스타임은 켜자마자 얼굴이 프레임에 꽉 차게 나왔다. 그런데 삼성은 켜는 순간 주위가 넓게 다 잡혔다. 카메라의 광각 기능을 과시하고 싶었나(웃음). 그렇게 넓게 나오면 눈이 우왕좌왕하게 되고, 그러면 상대도 나를 안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주 간단한 설정 문제인데 사용자 경험이 확 달라진 거다. 화상통화라는 걸 할 때 면대면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접근하는 방식과, 우리 폰에 이 정도 고성능 카메라가 붙었으니까 기능을 최대로 활용하겠다고 접근하는 방식은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기술력을 따라잡고 심지어 역전한 후에도 ‘이걸로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뭔가’를 연구하지 않으면 거기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5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교훈도 많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애플 쇼크 이후로 삼성에서도 UX(User Experience) 부서가 굉장히 커졌다.

UX 부서가 큰 것과, 조직 전체가 UX 관점에서 사고할 줄 아는 것. 둘은 다른 얘기 아닌가?

그게 정말 중요한 차이다. 조직은 가만히 두면 공급자 관점으로 미끄러지는 게 정상인데, 조직 전체가 어떻게 계속 UX 관점에서 움직일 수 있을까? 사실 그게 궁금해서 애플로 옮기는 측면도 있다. 애플도 어마어마한 거대 조직인데도 관료화에 잡아먹히는 속도가 더디고 UX 관점이 꽤 오래 유지되고 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조직문화’와 ‘리더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건데 그건 사실 하나 마나 한 얘기다(웃음). 애플에 들어가서 보고 싶은 게, 한국 회사들은 UX를 별도 팀으로 만들어, 다른 팀에 조언하고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그런데 애플은 프로젝트 팀마다 점점이 박아놓는다. 한국 회사에서는 그렇게 점점이 박아놓으면 힘을 못 쓰고 고립된다. 한국 조직문화에는 이른바 한직과 꽃보직이 있는데, 미국 조직에선 그게 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하는 역할에 최적화된 사람을 뽑고, 그들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요직이 어딘지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그런 조직문화라면 잔소리꾼 인간공학자가 팀마다 점으로 박혀 있어도 제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애플에 가기 전에 세운 가설이다.

애플에서 하기로 한 역할은?

하드웨어팀이라는 것만 알고, 어느 제품인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신제품 개발에 투입될 것 같다. 기존 제품 팀에는 훌륭한 인간공학자들이 이미 있으니까. 하드웨어팀 안에 어떤 프로젝트 그룹이 새로 떴고, 거기에 인간공학자로 합류한다. 하드웨어팀 인간공학자로는 아시아인을 처음 뽑았다고 들었다.

테슬라 자율주행차에서 사망 사고가 났다. 이것도 인간공학의 이슈가 맞나?

인간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이니까 정확히 인간공학 영역이다. 자율주행이 등장하게 된 기원은 인간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너무나 위험해서다. 교통사고를 분석해보면 차량이나 교통 시스템 결함보다 인간의 실수가 주원인이다. 자율주행은 교통사고를 실제로 매우 줄인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고, 늘 그렇듯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공포를 동반한다.

실제로는 비행기가 훨씬 안전하지만,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더 불안해한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00% 자율주행차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현실에서는 아마 최종 통제권은 인간이 갖는 방식으로 정착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최종 통제권을 자신이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 처지에서도, 최종 선택권을 가져가면 유사시 책임을 제조사가 져야 하지만, 인간에게 주면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더 반긴다.

아들이 엄마한테 '여자는 과학자가 없지?'라고 물었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퀴리 부인 전기를 읽으면서 처음엔 그렇게 물었다. '여자는 과학을 잘 못하지?' 나도 발끈해서 '왜 못해? 하게 냅두질 않아서 그래!' 그러고 나서 '엄마도 하잖아' 그러니까 이 녀석이 '어? 엄마 과학자였어?'(웃음) 위인전에 나오는 과학자는 퀴리 부인 빼고 다 남자니까. 찾아보면 많은데 위인전을 안 써준다. 다음 세대 여성들한테 과학자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여성 과학계에 있어서, 여성 과학자 이야기가 계속 시리즈로 출판되고 있다. 나는 6권에 들어가 있고, 아마 8권까지 나왔을 텐데, 한국의 여성 과학자들이 롤모델 관련 문제의식이 많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