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rSports] 철저한 자기관리의 전설, 김병지와 미우라

입력 2016. 7. 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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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것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예인은 절제된 행동을 통해 자기관리로 스캔들을 만들어 내지 않아야 롱런할 수 있다. 반면 운동 선수는 자기관리를 통해 자기강화를 해야만 오랫동안 팬들 앞에 설 수 있다. 그래야만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게 됨은 당연하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자기관리의 대명사로 불리던 ‘꽁지머리’ 김병지(46·왼쪽 사진)가 얼마 전 홀연 그라운드를 떠났다. 체력적으로 여전히 뛸 수 있었지만 지난 2월 전남 드래곤즈와 계약이 만료된 뒤 불러주는 팀이 없어 결국 24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몇 해 전 술을 21년간 마시지 않고 담배를 21년간 피우지 않았으며 몸무게(78㎏)를 21년간 1㎏ 이상 변화없이 관리했더니 21년간 K리그에서 살아남았다고 한 그였다. 김병지가 46년 인생 통틀어 마신 술의 양은 전부 합해야 한두 병에 불과할 정도다. 그는 금주·금연은 물론 평소 저녁 8시 이후엔 외출도 일절 삼가며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했다. 대신 웨이트 등 운동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김병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후배 이운재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줘 가슴 속이 숯덩이처럼 타버렸다. 그런 그가 음주와 흡연의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라운드에 하루라도 더 오랫동안 남기 위해 인내했을 뿐이다.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은 잡초 같은 그의 축구 인생이었기에 생명력이 더 길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려 부단히 노력했다. 경남 밀양중학교 때 축구를 시작했지만 마산공고 시절 축구부 회비를 낼 형편이 못 돼 부산 소년의 집(현 알로이시오고)으로 전학 가 골키퍼로 뛰었다. 대학 진학이 좌절되자 창원 기계공단에서 2년 동안 용접공으로 생활하며 직장 동아리에서 갈증을 풀었다. 축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90년 군 팀인 상무 입단테스트에 지원해 합격했고, 전역 후 1992년 울산 현대를 이끌던 차범근 감독의 추가 지명에 호명돼 가까스로 프로 무대를 밟았다. 24년간 5개 클럽 팀에서 활약하면서 가장 빛나는 그의 기록 중 하나는 프로축구 통산 최다 출장(706경기)이다.

김병지와 최고령 기록 경쟁을 벌이던 일본의 전설적인 축구 스타인 미우라 가즈요시(49·요코하마 FC·오른쪽)는 아직도 공격수의 상징인 배번 11번을 달고 그라운드에서 아들뻘 되는 선수들과 거친 몸싸움을 하며 펄펄 날고 있다. 올해로 만 30년째 프로선수로 뛰고 있는 그는 지난달 일본프로축구 2부리그(J2)에서 골을 넣으며 자신이 갖고 있던 최고령 득점 기록을 49세 3개월 24일로 늘렸다.

김병지는 숱한 박수를 받으며 이미 그라운드를 떠났다. 머지않아 미우라도 많은 박수를 받으며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할 것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롱런한 이 둘의 축구 인생은 후배들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만하다. 두 전설의 앞날에 응원을 저절로 보내고 싶은 이유다.

박병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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