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긴 한데 적나라하다..웃다보면 씁쓸한 '사회파' 예능

김지원 기자 입력 2016. 7. 2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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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SBS 파일럿 예능 <상속자:인생게임> 속 계급.

자신이 갖고 있던 이름과 사회적 배경을 버린 채 뽑기로 ‘금수저’ ‘비정규직’ 등의 계급을 정해 생활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외딴섬에서 각자의 모국어로만 소통하며 공용어를 만들어간다.

최근 방영을 시작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두 예능 SBS 파일럿 <상속자:인생게임>(상속자)과 tvN <바벨250>(바벨)의 콘셉트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능과는 사뭇 다른 파일럿들은 ‘사회’의 단면을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상의 세트에서 가상의 룰에 따라 벌어지는 일이지만 때로 오히려 현실보다 적나라하게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특히 <상속자>의 경우 공동 연출을 맡은 김규형 PD를 비롯한 작가진 등이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출신인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통제된 섬에서 모의 사회를 이뤄가는 모습을 담을 예정인 tvN <소사이어티 게임>이 9월 방영을 앞두고 있기도 한 만큼 본격 ‘사회파’ 예능의 시대가 올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화 <트루먼쇼>와 <상속자> <바벨>은 실험 대상의 수를 제외하면 상당 부분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은 현실 세계와 고립된 ‘외딴섬’에서 시작된다. 일반인 참가자들은 해당 섬에서 현실과는 다른 룰에 따라 행동하고 미션을 수행한다. <상속자>에서 ‘인생게임’에 참가한 9명은 이름 대신 ‘ID’로 불리며 뽑기를 통해 지위를 얻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지만 실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상 실험’은 되레 현실보다도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상속자>에서 플레이어들은 ‘금수저-집사-정규직-비정규직’이란 네 계급 중 하나에 속한다. 금수저는 저택 내에 있는 음식, 도구들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여타 참가자들로부터 ‘임대료’를 받는다. 비정규직은 저택 밖 비좁은 컨테이너에 살면서 미션을 수행해 코인을 벌어야만 먹고살 수 있다.

<상속자>의 최삼호 PD는 기획의도에 대해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헬조선’ ‘수저계급’ 등의 키워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리얼리티로 구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갑을 관계, 불공정한 분배, 무너져버린 계층 이동의 사다리 등 현실 세계의 단면들을 게임 안에 풍자 형식으로 드러냈다”고 전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실험자들이 영어 없이 직접 만국공용어를 만들어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 <바벨>은 다소 급진적인 실험이다.

함께 밭일을 하는 등 소소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는 참가자들은 한 번에 하나씩 공용어인 ‘바벨어’를 만든다.

바벨어로 ‘Yes’는 ‘Ta’, ‘Thank you’는 ‘Kogamsi’다. “어디어디(국가) 여행 가봤어?” “365일 그렇게 꾸미고 다녀?” 등 아주 간단한 친교 수다조차도 힘들어하던 이들이 스스로 소통의 수단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실험을 시청자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다.

사회 현상을 짚고, 이에 대한 진단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과거부터 있어 왔다.

다만 그 형태는 주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형태의 ‘공익 프로그램’이었을 뿐, 사회적 메시지가 예능과 밀접하게 결합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관찰 카메라가 특정 상황에 놓인 대상자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단면을 그려내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혼자 산다> <인간의 조건>과 같은 프로그램은 아직은 우리 사회에 낯설던 ‘1인 가구’란 표현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연예인 가상 매칭·결혼 프로그램과 달리 ‘젊은 남녀의 실제 연애’를 표방한 일반인 상대 리얼리티쇼 <짝>도 실험 참가자들이 특정 상황, 룰 안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관찰하는 하나의 사회파 리얼리티의 원류라 볼 수 있다.

TV평론가 김선영은 “(<상속자> <바벨> 등의 경우) <나 혼자 산다>류의 관찰 리얼리티 예능이 한층 발전한 형태”라며 “‘계급 구도’ 등의 무겁고 현실적인 주제도 게임을 통해서 풀어낼 수 있다는, 새로운 ‘사회파’ 예능의 형식 확장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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