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들은 희생했으나, 국가는 방치했다

2016. 7. 2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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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 참사 다룬 첫 장편소설
잠수사들 고귀한 희생 그린 김탁환
“무엇 기억해야 할지 짚고 싶었다”

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북스피어·1만3800원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헤드랜턴이 있어도 시야가 20㎝밖에 안 된다. 잠수사는 아이의 뺨에 오른손을 가만히 댄 채 이렇게 부탁했다. 그리고 왼팔이 끼어 있던 침대를 밀면서 다시 아이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그 순간 아이의 몸이 잠수사에게 스르르 안겼다.

장편소설 <거짓말이다>는 2014년 4월16일의 ‘그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과 유가족이 아니라, 민간 잠수사들 쪽 이야기다. 세월호가 아직 저 깊은 바닷속에 처박혀 있는 상황에서, 민간 잠수사들은 선내에 진입했던 유일한 ‘증인’이다. 선내 진입은 민간과 해경이 번갈아 맡은 게 아니라 오로지 민간 잠수사가 전담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민간 잠수사 ‘나경수’의 행적을 쫓는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며칠 뒤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도와달란다. 시신 수습은 난생처음이고, 더구나 맹골수도다. 울돌목과 함께 잠수사들끼리 억만금을 줘도 가지 않는다고 할 만큼 물살이 거친 곳이다. 그럼에도 나경수는 4월21일 현장을 찾았다. 고귀하면서도 잔혹한 시간은 이렇게 시작됐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나경수가 7월10일까지 두 달 넘게 맹골수도에서 매일 물질을 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세월호 내부가 얼마나 어둡고 위험한지, 열악한 환경에서 잠수사들의 노력과 희생이 얼마나 고귀했는지, 독자들은 절감할 것이다. 잠수에 나선 나경수가 처음으로 검은 실타래 같은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사람 머리카락임을 알게 되고,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면서 아이한테 “나랑 같이 가자”고 하는 장면에 이르러선, 숨쉬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2부는, 나경수가 진도 앞바다를 벗어난 뒤의 행적이 그려진다. 나경수를 비롯해 20여명의 민간 잠수사들은 모두 수색 중단 뒤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무리한 잠수로 몸속 질소가 기포를 형성해 피의 흐름을 막았기에, 뼈가 무너져 내리는 골괴사 등이 진행됐다. 나경수도 마찬가지였으나, 국가는 치료비 지원을 그해 12월 말에 중단해 버렸다. 더구나 잠수사들은 깊은 마음의 병을 앓았다. 폐쇄 공간의 공포와 미수습자 유족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을 갈가리 찢어놨다.

나경수도 밤마다 악몽과 망상에 시달리던 끝에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고, 약혼자와는 파혼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시신 한 구에 500만원씩 받아 수억원을 벌었다”며 수군댄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채 세상에 홀로 던져졌지만, 나경수는 용기를 내어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김탁환 소설가를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나, 세월호를 다룬 첫 장편 소설을 쓴 경위 등을 들어봤다.

작가 김탁환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자신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두고 얘기를 나누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실종자 수습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의 활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어쩌다 민간 잠수사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됐나?

“올해 1~4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했다. 거기서 김관홍 잠수사를 3월에 처음 만났다. 김 잠수사는 구체적인 숫자를 대면서 세월호 상황을 설명했다. 25명 안팎의 잠수사들은 오직 손으로 더듬어 111개의 객실과 17개의 공용공간을 수색했고 이를 서로 공유했다. 엄청난 집단경험이다. 그리고 잠수사는 아이들을 껴안고 나왔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한몸이 돼야 좁은 배의 통로를 빠져나올 수 있다.”

-김관홍 잠수사는 지난달 17일 유명을 달리했다.

“여러 차례 그를 인터뷰했다. 단원고 교실과 추모공원도 함께 갔다. 다른 잠수사들도 여러 분 만나 소설의 나경수라는 인물을 빚어냈지만, 김 잠수사가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해줬다. 고인이 대리운전를 했는데, 지난달 4일 손님을 모시고 온 곳이 우리 집 근처라고 전화가 왔다. 내려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퇴고 중이던 이번 소설 이야기를 나눴다. 열흘쯤 지나 갑작스런 소식을 전해들었다. 아주 많이 놀랐다.”

-수습 현장에서 헌신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잠수사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국가는 사실상 이들을 방치했다. 소설책의 겉표지 뒷면에 몇 개의 문구를 인쇄해 넣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국가 재난에 국민 부르지 마라!”이다. 이는 김 잠수사의 말이다.”

-소설이 나경수라는 인물 중심이고, 실제 김 잠수사의 사연이랑 많이 비슷하다. 그래서 작품이 ‘소설 형식의 보고서’ 같아 보인다.

“작품 곳곳에 일베와 의경, 공무원 등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잠수사와는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를 통해 사건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

-‘작가의 말’이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하라”는 말로 끝난다.

“이번 소설의 목표는 분노이다. 세월호와 관련된 다른 책들이 슬픔을 준다면, 이번 작품은 분노를 주려 했다. ‘기억하라’는 말은 많다. 그런데 무엇을 기억할까. 유가족의 슬픔만이 아니라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사람들도 같이 기억해야 한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처럼, 죽은 사람과 함께 죽인 자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이번 작품은 일종의 중간평가이다.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껏 확인된 정보만 다뤘다. 인양되면 실제 그 배를 놓고 이야기를 새로 해야 한다.”

김 소설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일정 하나를 알려줬다. ‘고 김관홍 잠수사 추모의 밤’ 행사가 8월5일 저녁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고.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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