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기업 눈치보기 급급한 회계사.. '당당한 乙' 될수 없나

김지방 기자 2016. 7. 2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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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확보 방안 뭘까

우병우 민정수석의 가족회사인 주식회사 정강은 올해 초 우 수석의 6촌형이 부회장으로 있는 S회계법인에서 외부감사를 받았다. S회계법인은 정강이 소유한 건물에 입주한 세입자다. 세입자이자 특수관계에 있는 회계법인이 건물주의 장부를 감사했던 셈이다.

정강은 업무용 차량의 개인전용 의혹 등을 받고 있지만 S회계법인은 “재무제표가 공정하게 작성됐다”고 의견을 기술했다. 27일 정강의 감사보고서를 살펴본 한 공인회계사는 “급여를 받은 직원이 없는데도 복리후생비와 여비교통비가 지급되고 차량유지비는 오히려 더 늘어나는 등 석연찮은 대목이 있다”며 “근본적으로 친인척이 부회장으로 있는 회계법인에서 외부감사를 맡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인회계사회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계사법에서는 회계법인과 감사대상 기업 사이에 특수관계인이 직원으로 있는 경우 감사를 맡지 못하게 돼 있지만 우 수석 6촌형의 경우 S회계법인의 부회장 직함만 가지고 있을 뿐 등기이사도 직원도 아니었다. 회계법인은 공인회계사만 직원이 될 수 있고 등기이사도 당연히 회계사만 가능하다. 우 부회장은 자격증이 없다.

국내 회계법인에는 이처럼 공인회계사가 아니면서도 임원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기업 컨설팅이나 인수합병 업무 등에 전문성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영업을 위해 임원 직함을 가지고 뛰는 이들도 상당수”라며 “대형회계 법인도 예외가 아니고, 개인사무실을 가진 회계사들 중에는 이른바 영업사장에게 고용돼 자격증을 빌려주는 형태로 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는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은 기업의 감추어진 부실이나 부풀려진 숫자가 없는지 찾아내는 감시자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기업의 외부감사를 ‘따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을’의 처지다. 영업이사라도 끌어와 기업의 낙찰을 받아야 하기에 감사를 하면서도 기업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갑질’도 심해진다. 외부감사 수임료는 갈수록 낮아지고 감사 시간도 줄어든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외부감사 비용이 36억9000만원이었지만, 삼성전자보다 매출이 적은 미국의 애플은 2014년 감사비용으로 1230만 달러(약 140억원)를 썼다. 현대차도 감사비용이 지난해 16억5000만원이었는데, 미국 GM은 무려 5100만 달러(578억원)를 2014년 감사에 썼다.

감사비용이 적으니 투입되는 회계사가 줄어들고 장부를 검토할 시간도 부족하다. 공인회계사회 최중경 회장은 “분식회계의 대표적인 사례인 모뉴엘의 경우 해외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허위로 수출 서류를 꾸며 국내로 보냈다”며 “제대로 감사를 하려면 회계사가 직접 해외를 찾아가거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확인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회계사가 판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면 감사의견을 거절하거나 유보해야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중견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사료 지급을 미루거나 아예 감사인을 바꾸는 경우도 있어 독립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을이라도 당당한 을이 되어야 한다”며 “외부감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공인회계사회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대안이 쏟아졌다. 당시 후보였던 최 회장은 적정 감사비용 가이드라인을 공인회계사회가 책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해 100대 상장법인의 시간당 감사비용은 7만8575원 수준이다. 시간당 비용은 기업마다 천차만별이어서 15만원에 가까운 기업이 있는가 하면 3만원대도 있었다. 금융 당국은 “공인회계사회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담합 혐의가 적용될 소지가 있다”며 부정적이지만, 변호사회나 공인중계사회도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는 만큼 공공성이 있는 회계감사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게 공인회계사회의 입장이다.

또 감사의견을 내기 전 감사비용을 공탁하거나 차기년도 감사인을 최종 감사보고서 작성 이전에 미리 선임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대기업이 아니면 상장기업의 감사비용을 수금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회계 투명성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회계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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