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통장이 잠든 사이-1부①]"통장만 건넸는데.. '악마의 동굴'로 떨어졌다"

김형기 입력 2016. 7. 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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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대여가 불법이었어요?"... 대포통장 빌려준 사람 73%가 몰랐다

【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1. 지방대학 총학생회장인 이모(25)군.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학벌은 아니라지만 '학생 대표'라는 신분과 '새파랗게 젊다'는 것을 밑천 삼아 푸른 인생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지금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져있다.

그가 '악마의 동굴' 속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2014년초.

"우리나라에선 금기처럼 여기지만 해외에선 도박사이트가 합법적이다. 강제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임"이라는 불법도박사이트 운영 총책 최모(39)씨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면서부터다.

게다가 '통장을 가져오면 1개당 100만~200만원까지 주겠다'는 통큰 제안에 솔깃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일단 마음이 동하고 난 후는 급행열차.

안면이 있는 대학 후배들에게 "용돈좀 벌어줄게"라고 접근, 너무 손쉽게 통장을 거둬 최씨에게 건넸다. 수고비로 받은 돈에서 30만원 정도는 후배들의 손에 쥐어줬다. 처음 시작이 힘들었을뿐 이후로는 죄의식을 느낄 순간도 없이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2년쯤 흐른 지난해 11월 최씨를 포함한 일당이 경찰에 일망타진됐다. 이군 역시 '총학생회장'에서 '도박사이트 공범자'로 전락했다.

#2. 같은 시기, 같은 학교에 다니던 김모(22)양. 단지 총학생회장 이군과 친했다는 인연으로 김양의 인생도 금이 갔다.

"요즘 힘들지. 용돈좀 벌게해주마"라는 총학생회장의 제안을 얼떨결에 받아준 것이 문제였다.

"돈 거래를 해야하는데 사정상 많은 통장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통장주인인 네가 나서지 않으면 대출 같은 것은 절대 할수 없기 때문에 네겐 금전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군의 말에 자신의 통장을 건넸다. 그 것으로 김양은 졸지에 범죄행위 가담자가 됐다.

경찰은 '불법도박사이트 일당'으로 총학생회장 이군을 구속하면서, 그에게 통장을 건넸던 김양을 포함한 '철없는 학생' 10여명 모두를 불구속 입건했다.

김양은 졸업을 하더라도 앞으로 취업시장에서 기피대상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크고 작은 불이익과 피해도 끝없이 다가올 것이다.

'통장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너무 쉽게 유인당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5~8월 사이 은행연합회에 등록된 대포통장 명의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총 1만2913명의 명의인 중 20대의 비중이 26.9%(3471명)로 가장 높았다.

좁아진 취업문,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만만찮은 현실 탓이 크겠지만 '통장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허당 젊은이'들이 범죄의 먹잇감이 된다는 이야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20대는 여타 계층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통장 범죄'에 노출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최근에는 아예 이들만을 겨냥해 범행을 저지르는 사기범죄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장대여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젊은이들도 현재로선 극히 드믈다.

금감원이 대포통장 명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참여자의 72.7%는 사기범에게 통장을 넘겨주는 행위가 불법인지를 몰랐다고 답했다.

안타까운 점은 '통장 범죄'에 노출된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자신들의 행위가 앞으로 자신들의 인생에 얼마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

'통장 범죄'로 꼬이기 시작한 인생은 취업을 할 때도 벽에 부딪히고, 설사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월급통장을 개설할 때나 대출을 받아야 할 때 두고두고 골치를 썩여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는 통장·현금카드 등의 거래요구에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며 "지인에게 돈을 받지 않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새 통장을 빌려준 경우에도 해당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불법 행위에 연루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lkh201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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