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내 딸 이름 맘대로 못 지어요?..'한자+한글' 안 돼

윤영현 기자 2016. 7. 2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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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완(31) 씨는 지난 5월 딸을 얻었습니다. 나 씨는 딸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한 동안 고민에 빠졌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윤동주 <서시> 중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나씨는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습니다. 별을 소재로 하는 ‘서시’나 ‘별 헤는 밤’ 등에 감명을 받았던 그는 딸에게 빛나는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죠. 아내와 고심한 끝에 본인의 성씨인 '羅(나)'에 이름은 한자인 ‘贇(빛날 윤)’과 우리말 '별'을 합쳐 '羅贇별(나윤별)'이라는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적어 읍사무소에 제출한 나 씨는 뜻밖의 통보를 받게 됩니다.

딸의 ‘이름’ 때문에 출생신고서 접수가 불가하다는 겁니다. 도대체 이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 ‘한자+한글’ 혼합사용 안 된다?

출생 신고서가 접수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름인 ‘贇별(윤별)’에 한자와 한글이 혼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9호 5항에 따르면,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한 출생신고 등은 수리해서는 안 된다' 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규의 상위 법인 가족관계등록법 44조 3항은 ‘자녀의 이름에는 한글 또는 통상 사용하는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을 뿐, 한자와 한글 혼합 사용에 관한 사안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예규는 상급행정청이 하급행정청에 발하는 행정 규칙의 한 형식입니다. 예규는 행정조직 내부나 기타 특별권력관계의 내부에서 효력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법규에 대한 보충적 성질을 가지죠. 가족관계등록예규는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 규칙인 것입니다. 법원행정처는 가족관계등록예규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자와 한글을 혼합 사용하면 성이 두 개인 것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羅贇별(나윤별)'의 경우, 羅(나)贇(윤)이 모두 성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호적법 제49조(출생신고의 기재사항)에는 자녀의 이름에는 한글 또는 통상 사용되는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에 비춰보더라도, 이름은 하나의 문자로 통일해야 한다는 원칙이 전제돼 있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입장입니다.

●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사실 나 씨와 같은 사례는 처음이 아닙니다. 2013년 한연규(42) 씨도 딸의 이름을 한이새봄(韓李새봄)으로 지어 동사무소에 출생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자신의 성 한(韓)에, 아내의 성 이(李)와 한글 새봄을 붙인 이름이었죠. 당시 주민등록번호까지 받았지만, 2주 후 이름이 가족관계등록예규에 맞지 않아 출생신고 반려와 주민등록번호 삭제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 씨는 딸의 이름을 한글인 ‘이새봄’으로 출생신고 할 수 있었지만, 사무처리 규칙인 예규로 작명에 제한이 생기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2013년 10월, “출생신고 불수리 처분을 취소해 달라.”라고 신청했죠. 한 달 후 서울동부지법이 신청을 각하했지만, 한 씨는 항고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2년 간 한씨는 딸 아이의 신분 증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건강보험도 적용 받을 수 없었죠. 2015년이 돼서야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동부지법은 “예규가 부모의 작명권을 침해한다.”며 출생신고를 수리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 딸에게 ‘그 이름’을 주는 날까지…

나승완 씨는 딸의 이름을 한글인 ‘윤별’로 출생신고 했습니다. 딸의 병원에 가야하고 보험 혜택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연규 씨와 달리 차후에 개명 신청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죠. 하지만 광주가정법원은 나씨의 딸에 대한 개명신청을 기각했습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도 기각됐죠. 이미 한자와 한글을 혼용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는데도 예규는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씨는 작명권, 행복추구권 등이 제한당한다고 생각해서 지난 7월 21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개명신청 기각에 대해서도 항고했습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서울동부지방법원의 판결만으로 가족관계등록 관련 법령이나 예규의 효력을 좌우할 수는 없으며, 해당 사건에 한정해 유효한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당 사례가 하급법원의 판결이고,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예규의 수정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석합니다. 공무원들은 예규가 행정기관 내부의 규칙인 만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죠.

나 씨는 시간이 걸려도 딸에게 '羅贇별(나윤별)'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첫 이름을 올린 제 딸에게 언제쯤 처음 원하던 이름을 제대로 선물해줄 수 있을까요? 제 딸에게 네 이름의 뜻은 빛나는 별이라고, 빛나는 별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웃으면서 말해주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랍니다."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SBS 뉴미디어부)      

윤영현 기자y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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