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 '정상일터로' 넘어야>"얼마나 일했다고" "수당으로 받을래".. 누리지 못하는 '쉴 권리'

김영주 기자 2016. 7. 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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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발목잡힌 ‘휴가權’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밀려드는 피서객들로 공항과 피서지가 북새통을 이루지만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직장인도 부지기수다. 한 중견기업에 근무 중인 대리 A 씨는 올해 쓸 수 있는 연차휴가가 14일인데 지금까지 하루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차 13일 중 5일만 썼다.

연차를 다 소진하지 못한 만큼 수당을 받기는 했지만, A 씨는 수당을 안 받아도 좋으니 휴가를 떠나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는 “부서에 내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 나뿐이고, 밑으로는 업무 파악이 덜 된 신입사원뿐이어서 휴가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부장은 ‘A 대리가 휴가 가면 빈자리를 누가 채우느냐’고 농담조로 얘기하는데,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50%대에 머물러 있는 연차휴가 사용률을 100%로 끌어올리면 연간 40시간에 가까운 근로시간 단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음 놓고 휴가 쓰는 일터 문화 확산’은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지고, 고용률 70% 달성의 초석이 된다.

◇휴가, 근로에 대한 보상인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인가=입사 6개월 차인 신입사원 B 씨는 친구들과 태국 방콕으로 여름휴가 계획을 세웠다. 직장 상사들이 3∼4일씩 여름휴가 일정을 잡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첫 휴가를 가게 될 생각에 부풀었다. 하지만 팀장은 B 씨가 휴가 계획을 이야기하자 “입사해서 얼마나 일했다고 휴가를 가냐”며 핀잔을 줬다.

B 씨는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게 휴가인데, 신입사원 주제에 괜한 기대를 했나 보다”며 고개를 떨궜다. B 씨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 표를 취소해야만 했다.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상사에게 휴가 사용 금지는 ‘위법’이라고 따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근로기준법은 1년간 근무일의 80% 이상을 출근하면 1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2년 근속할 때마다 1일의 연차휴가를 추가로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1년 미만 근로자의 연차휴가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어 1년 미만 근속 근로자가 한 달 개근할 시 하루의 연차휴가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즉 B 씨에게도 6일의 연차휴가를 쓸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장시간 근로문화가 만연한 한국의 일터문화에서 많은 직장인은 휴식을 ‘열심히 일한 근로자에 대한 보상’이나 ‘다시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2008년 헌법재판소는 휴식을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라고 정의했다. 근로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라는 의미다.

◇휴가를 못 가는 이유=2014년 고용부가 내놓은 ‘기업 휴가 이용 실태 및 휴가문화 개선방안’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 근로자의 연차휴가 발생 일수는 14.7일이지만, 실제 사용한 연차휴가일은 8.5일로 57.8%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연차휴가가 많이 발생하지만, 사용 비율은 저조했다.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직장인의 한 해 연차휴가 사용 일수는 9일을 넘지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2년 펴낸 ‘장시간 노동의 실태와 과제’ 보고서를 보면 전국의 5만36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조사한 결과, ‘연차수당 선호(40.5%)’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일이 많아서(20.0%)’ ‘대체인력 부족(13.0%)’ ‘직장 분위기(10.4%)’ 등이 뒤를 이었다. 휴가를 떠나는 근로자에게 ‘눈치’를 주는 일터문화와 함께 휴가 대신 수당을 선호하는 근로자의 선택이 뒤엉켜 ‘휴가를 못 가는 비정상 일터’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휴가 대신 수당?=무역업체 경리 업무를 담당하는 C 씨는 3년 차가 되도록 연차휴가를 3일 썼다. 여름휴가철이 다가오자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 안 가느냐”고 묻지만 회사에서는 휴가 가라는 말도 먼저 꺼내지 않는다. 업무를 인수인계할 사람도 없다. C 씨는 “연차를 쓰면 하루 7만 원 정도인 연차 미사용 수당도 받을 수 없고, 휴가 가서 쓰는 돈까지 생각하면 휴가를 안 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려 한다”며 “휴가다운 휴가는 회사를 그만둬야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 등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의 미사용 연차휴가를 금전으로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사용주가 근로자의 휴가 사용을 장려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근로자가 연차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만드는 단점도 된다. 연차휴가 사용이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라면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대상이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제132호 협약에서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뒀을 경우를 제외하고 미사용 휴가일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런 취지다. 유럽연합(EU) 역시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주어진 연차휴가조차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한국의 근로 현실에서 연차휴가 미사용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금지하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휴가를 못 가는 것도 서러운데 금전적 보상까지 못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기준을 따르기에 앞서 휴가에 인색한 일터문화 개선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 휴가, “이유를 묻지 말라”=모처럼 휴가 계획을 세운 D 씨는 휴가사유서에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쓰기가 눈치 보여 ‘집안일’이라고 적었다. 부장은 곧바로 ‘집안에 누가 편찮으시냐’ ‘심각한 일이 있는 건 아니냐’는 질문 공세를 펼쳤다. A 씨는 “휴가에 꼭 사유가 있어야 하는 거냐”며 “휴가사유서가 웬만하면 휴가 쓰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고용부는 ‘휴가사유 없애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실제로 근로기준법은 연차휴가의 사용 및 목적에 관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휴가사유서에 근로자가 표시한 이용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휴가를 사용해도 된다.

◇개인이 알아서 쓰기엔 너무 어려운 휴가=“상사들이 먼저 휴가 날짜를 잡아줘야 하는데, 7월 중순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괜히 먼저 잡았다가 개념 없다고 욕먹기 쉽다.”

대기업 직원 E 씨는 일찍 여름휴가 계획을 확정해 한 푼이라도 더 싸게 휴가지 숙소를 예약하고 싶지만, 휴가 생각이 없는 상사들 탓에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연차휴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일터에서 ‘시기 지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근로자는 별로 없다. 휴가 시기는 물론 휴가를 갈지 말지조차 회사나 부서 분위기, 상사의 스타일에 좌우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휴가 시기 지정을 개별 근로자에게 맡기지 말고, 근로자 대표나 노동조합이 사측과 협의해 집단으로 휴가를 쓰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권고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에서도 근로자 전체 차원의 계획 휴가가 활성화돼 있고, 유럽 역시 일정 기간 사업장 전체가 ‘휴가 모드’에 들어간다”며 “우리나라 기업은 계획휴가 방식에 맞게 운영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아 당장 도입하기는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식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푹 쉬고 왔냐고요? 휴가가 너무 짧아요”=“양옆으로 주말을 붙여 5일 휴가 내고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비행에 쓴 이틀을 제외하니 주마간산 식으로 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이달 초 여름휴가를 다녀온 F 씨는 “유럽 직장인들은 여름휴가를 3주씩 간다는데, 나는 5일 휴가도 감지덕지”라고 말했다.

한국의 기업들도 연차휴가 일수 자체가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다. 각국의 연차휴가 일수는 한국이 15∼25일, 독일 24일, 프랑스 30일, 미국 1∼7주 정도다. 휴가의 ‘분할 사용’이 일반적인 한국의 일터문화에서 15일의 연차휴가를 한 번에 사용할 ‘강심장’을 가진 근로자는 드물다. ILO 제132호 협약은 휴가의 분할을 각국이 결정할 사항으로 남겨두면서도 특별히 정하지 않는 한 휴가는 2주 동안 계속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U 역시 휴가를 분할되지 않는 4주 이상으로 정의한다. 연차휴가는 토·일요일 등 정기휴일로 충족될 수 없는 휴식을 누리기 위한 제도라는 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연차휴가의 일괄 사용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교수는 “최근 들어 ‘웰빙’이나 자유로운 여가를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긴 휴가’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기업도 이런 추세를 잘 읽어 업무를 조직하고 인원을 배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아직 준비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차휴가 제도 자체가 근로자가 오래 쉴 수 있게 하려는 취지를 가진 만큼 짧은 휴가가 일반적인 기업 현장의 관행을 개선한 뒤 법을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고용부·여가부·복지부·문화일보 공동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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