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의 김의성은 왜 그렇게 욕을 먹게 되었을까

아이즈 ize 글 임수연 2016. 7. 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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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임수연

* 영화 [부산행]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영화 [부산행]에서 자신을 고속버스회사 상무라 밝힌 용석(김의성)은 관객의 비난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탄 열차에서 내려 대전역사로 갔던 승객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가 된 존재들에게 습격받자 승객이 열차로 돌아오기도 전에 기관사에게 출발하라 재촉하고, 석우(공유)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좀비의 추격을 받으며 생사가 위협받는 위기의 순간 감염 위험성을 거론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용석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려보면 단연 좀비만큼이나 해로운 존재. 김의성은 SNS에서 “무대인사에서 야유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염두에 뒀을 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석우 일행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다 숭고한 행동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좀비에게 물릴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손을 내밀고, 감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도 똑같이 배려한다. 그러나 안산공단에서부터 시작된 좀비 바이러스는 KTX 열차 속도에 맞먹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전국 단위의 과격 폭력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니 “흔들리지 않고 정부를 믿고 슬기롭게 극복”하자며 “국민 여러분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 말하고, 기차 안의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자신의 고객이었던 사람이 던져주는 정보나 인터넷상의 ‘찌라시’ 같은 것들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용석은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과 버스들이 모두 돌아가고 있다는 정보를 통해 대전이 시를 봉쇄하고 있다는 것을 추론해냈다. 좀비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주인공들이 9호칸에서 15호칸으로 좀비 떼를 뚫고 오기까지 안전할 수 있었다고 믿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용석의 행동은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포함해 안전이 보장된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반면 석우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행동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대신 좀비에게 공격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살 사람만 살릴 것인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용석과 석우의 행동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상반된 가치관을 보여준다.

용석은 좀비의 습격을 받자 다른 승객들과 달리 화장실에 숨는 영리한 계산을 했었다. 그러나 동대구역에 온 후, 그는 기차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문을 닫지 않아 좀비들이 기차 밖으로 뛰어나오게 만들었다. 심지어 좀비에게 쫓기는 급박한 순간 발을 헛딛고 넘어지는 등 안 하던 실수까지 하며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전까지 용석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기적이라도 최대한 안전한 상황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석우와 방식이 달랐을 뿐, 그도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행동을 했다. 그러나 동대구역 이후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 문자 그대로 ‘민폐 캐릭터’가 된다. 반면 석우 일행의 행동은 후반부로 갈수록 목숨을 내놓다시피 하며 사람을 구하는 희생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이것은 “맨날 욕먹고 인정 못 받고 희생하고 사는” 부성애와 연결된다. 공동체가 살기 위한 가치관의 대립일 수 있던 영화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람을 구하는 주인공과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는 민폐 캐릭터의 대비로 바뀌었다.

[부산행]은 여름 시즌 흥행을 위해 개봉된 작품이고, 가족애와 악인에 대한 분노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쉽게 끌어낼 수 있는 요소다. 흥행을 목표로 하는 오락 영화로서 [부산행]이 용석과 석우를 대비시키는 방식은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산행]은 구제역 등 지금 한국 사회에 대한 관찰로 시작했다. 또한 공동체에 닥친 재난 앞에서 개인의 생존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과 여럿이 생존 가능성을 나누어 갖는 이타주의적 행동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도 들어 있었다. 이것의 종착역이 결국 가족주의를 바탕에 둔 신파와 민폐 캐릭터의 결합이라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관객은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기보다 분노 또는 연민을 갖게 된다. 관객들 사이에서 용석에 대한 비난과 “신파가 지루하다”는 반응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목격되는 것은 그래서다. 나 자신이 KTX에 몸을 실은 승객이 됐을 때 주인공들처럼 이타적으로 행동하리라는 확신은 없다. 남은 것은 쉽게 끓어오르는 분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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