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읽어 주는 남자] 청부살인업자가 된 UFC 파이터의 죽음

조회수 2016. 7. 27. 09: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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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 슬로예프, 위암 4기로 지난달 고향에서 눈감아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지난달 유독 세상을 떠난 파이터들이 많았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 하늘로 올라갔다. 길거리 싸움꾼으로 유명했던 킴보 슬라이스가 심장마비로 42살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7월 16일 벨라토르 158에서 펼쳐질 제임스 톰슨과 재대결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UFC에서 7초 KO승을 거둔 라이언 짐모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몇 시간 전 약혼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당한 봉변이라고 알려져 슬픔이 더 했다.

그리고 여기,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파이터의 죽음이 있다. UFC, 프라이드, M-1에서 활약한 타격가 아마르 슬로예프가 청부살인업자가 됐다가 감옥에 갇혔다. 거기서 위암이 발견됐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 그는 2016년 6월 27일 어린 시절을 보낸 러시아 아나파에서 40년 인생을 마감했다. 1999년 데뷔해 2008년까지 31전 24승 7패를 기록한 종합격투기 베테랑도 몸속에 퍼진 위암을 때려눕히진 못했다.

슬로예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른쪽으로 유난히 휘어진 코. 거친 타격전을 거쳐 온 파이터의 상징 같았다.

2006년 프라이드 무사도 12에서 데니스 강에게 서브미션으로 진 장면이 떠오른다. 데니스 강의 한 손 초크에 슬로예프는 스스륵 잠들었다. 그때 그의 코에서 뚝뚝 떨어지던 코피가 기억에 생생하다. 2007년에는 한국을 찾았다. M-1 국가 대항전에서 김훈을 1라운드 TKO로 눌렀다. 강력한 로킥이 김훈의 허벅지에 채찍처럼 감겼다. 철썩철썩 소리가 장충체육관을 울렸다.

하지만 2008년 4월 M-1에서 마지막 경기 이후 그의 삶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는 종적을 감췄다. 2013년 그의 이름이 러시아 뉴스에 나왔을 때, 격투기계는 깜짝 놀랐다. 슬로예프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청부 살인에 가담한 범죄자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종합격투기 뉴스 사이트 블러디 엘보우에 따르면, 슬로예프는 은퇴 후 러시아 외곽 지역인 크라스노다르(Krasnodar)에서 한 사설 경호 업체에 들어갔다. 여기서 세르게이 지리노프라는 범죄 조직의 보스를 만났고 그의 인생은 어두워졌다.

지리노프는 크라스노다르의 하원 의원이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조직 '유나이트 러시아'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데는 거침없는 냉혈한이었다.

2013년 지리노프와 5명 일당이 잡힌 것은 아나파 시티 코사크 소사이어티(the Anapa City Cossack Society)의 리더 니콜라이 네스테렌코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5명 일당은 지리노프의 사주를 받아 각자의 역할을 갖고 범죄를 저지르려 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슬로예프였다. 이들은 사업가였던 비탈리 사도브니치와 그의 아내 올가 이반키나를 살해한 혐의까지 받았다.

그는 바로 감옥으로 갔고 3년 동안 법정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수감 생활 중 그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 슬로예프는 몸무게가 20kg이나 줄었다. 그는 판사에게 건강 악화로 재판을 받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귀가 들리지 않고, 어지럽습니다. 이명(耳鳴) 때문에 힘듭니다. 몸무게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저의 재판을 연기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검사들은 슬로예프에게 진단과 치료를 허락하지 않다가 그가 피를 흘리자 그때야 병원으로 보냈다. 거기서 슬로예프의 몸속에서 커다란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 위암 4기였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슬로예프는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에서 탈출한 시한부 인생의 두 주인공들처럼 슬로예프는 죽음을 일주일 앞두고, 병원에 자신을 아나파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슬로예프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에서 러시아 시간 6월 27일 새벽 3시 인생의 글러브를 벗었다.

굴곡 많은 삶이었다. 오랫동안 종합격투기를 지켜봐 온 팬들은 슬로예프가 이렇게 생을 마감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순전히 파이터로만 평가한다면, 그는 기술적인 타격가였고 본능적인 싸움꾼이었다. 분명 종합격투기계에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을 했고, 끝이 좋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내일 일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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