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다방 떠도는 탈북 여성들 "자립 지원책 도움 안 돼"

윤정민.정진우.전수진 2016. 7. 2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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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일하다 다방 취업한 20대"150만원 벌어선 북에 돈 못 부쳐"용인 다방골목 종업원 절반 탈북자직업교육 조리·제빵·바리스타 일색"취업 연결되게 맞춤 정책 개발을"
자료:남북하나재단
자료:남북하나재단
자료:남북하나재단

“저도 한잔 먹어도 되죠? 사실 커피 값은 우리한테 떨어지는 게 없어요. 노래방도 가고 드라이브도 하고 모텔도 가고 해야 그게 내 돈이죠.”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한 골목 다방. 차를 시키자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커피와 주스를 들고 와 옆에 앉았다. 티켓영업(시간당 요금을 지불하고 종업원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나 2차(성매매)까지 하느냐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돈 벌려고 하는데 커피가 뭐 돈이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용하는 단어는 표준어였지만 억양에서 미세한 어색함이 느껴졌다. 고향을 물으니 잠시 망설이다 “태어난 건 강원도고, 자란 건 평양”이라고 했다.

이름을 지은(24·가명)이라고 밝힌 그녀는 8년 전 북한을 탈출했다고 한다. “중국인인 할머니가 방학 때 중국으로 놀러 오라고 해 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어요. 진짜 놀러 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 길로 중국과 대만을 거쳐 남한까지 왔죠. 탈출은 별로 힘든 게 없었지만 그 뒤가 문제였어요.” 지은씨는 덤덤하게 말했다.

지은씨 집안은 평양에서 잘 사는 편에 속했다. 예쁘장한 외모 덕에 어릴 때 악단에 ‘캐스팅’ 됐다. 그녀는 “모란봉악단이 유명한데 다른 악단도 많아요. 남한에 여러 연예기획사가 있는 것과 비슷하죠. 그중 한 곳에 ‘길거리 캐스팅’돼 몇 년 동안 무용과 노래를 배웠어요. 그대로 있었으면 북에서 ‘연예인’이 되는 거였죠”라며 웃었다.

남한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에도 꿈은 연예인이었다. 하지만 생계 압박이 커지며 서울의 미용실에 다녔다.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벌었다. 오래 일하진 못했다. 그녀는 “북한에 돈도 보내야 했는데 그때 친구가 다방 얘기를 꺼냈어요. 1년 넘게 다방에서 먹고 자면서 돈도 꽤 벌었죠. 사장님도 탈북자라 편해요”라고 말했다.

이 골목엔 10여 년 전부터 티켓다방이 생겨나 현재 20여 개의 다방이 줄지어 있다. 다방들 사이에 다세대주택이 있고 한 블록 건너 중학교와 학원, 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다방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이 ‘다방골목’의 업소 종업원은 절반이 탈북 여성, 절반이 중국동포 여성들이다. 다방 사장과 종업원이 모두 탈북여성인 곳도 5곳 이상이었다.

탈북 여성들이 티켓다방으로 흘러든 건 이곳만의 일이 아니다. 30여 년 전 서울 도심에서 생겨난 티켓다방은 이후 수도권과 농촌 등으로 확산됐다. 실제로 양평 시내 중심지에 늘어선 10여 곳의 티켓다방 중 탈북 여성들이 종업원인 업소가 8곳, 직접 운영하는 업소도 3곳 이상이었다.

탈북 여성들의 티켓다방 진출은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양평의 한 다방 종업원 김모(44·여)씨는 “함흥에서 생선장사를 하다 먹고 살기 힘들어 8년 전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다. 몇 년은 공장에서 일했는데 한 달에 130만원 받고는 살 수가 없었다. 북한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 때문이다. 결국 아는 언니 소개로 다방까지 흘러왔다”고 말했다.7월 현재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는 2만9500여 명이다. 이 중 여성이 70%에 가까운 2만543명이다. 연령별로는 20대(28.3%)와 30대(29.3%), 학력별로는 중학교 이하가 70%를 차지한다. 학력수준이 높지 않고 특별한 기술도 없어 식당·공장 등에서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다방에서 만난 탈북 여성들은 “직업 교육도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탈북자가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성매매 말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정부의 탈북자 정착 지원책은 이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부와 탈북민 정착 지원을 담당하는 남북하나재단이 지난해 만 15세 이상 탈북자 24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4%가 “나는 하층민”이라고 답했다.▶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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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탈북자별 맞춤 정책을 개발해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탈북자들이 한국 입국 후 입소하는 하나원에선 여성 특화 교육으로 ▶한식 조리 ▶제과 제빵 ▶바리스타 ▶요양 ▶사회복지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실질적 취업과 안정적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탈북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근로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용인·양평=윤정민·정진우 기자, 전수진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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