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는 왜 '강의'에 빠졌나

김슬기 2016. 7.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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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설민석 박웅현 강신주..강연 풀어쓴 책 인기 몰이구어체에 독자들 친근감, 생생하고 쉽게 인문학 전달..플라톤총서 등 기획 잇달아
"자, 그럼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왕이 생존했을 때 만들어지지 않고 승하하고 난 뒤에 편찬이 시작되지요. 조선시대 역사 기록을 담당하는 관청을 뭐라고 할까요? 맞습니다. 바로 춘추관이라고 불러요." 입에 떠먹여주듯 친절한 설명에 술술 넘어가는 구어체(口語體). 지난 20일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 1위, 주간 종합 6위에 오른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 역사를 알려주는 화법이다. 이 책은 예약 판매의 훈풍에 힘입어 예스24에서도 주간 종합 7위까지 올랐다.

학원가의 '스타 강사' 설민석은 이 책 외에도 종합 5위(교보문고), 10위(예스24)에 올라 있는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까지 저서 2권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안착시켰다.

서점가가 '강의'에 빠졌다. 설민석 열풍만이 아니다. 또 다른 스타 강사의 책인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도 10위권에 올라 있고, 강의를 묶은 책인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도 20위권에 올라 있다. 지난해 강의형 책 열풍의 진앙지였던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도 여전히 10위권에서 순항 중이다.

지난해 구어체로 풀어 쓴 책들의 인기가 거세게 불었다. 부동의 1위였던 '미움받을 용기'는 대화체로 쓴 책이었고, '지대넓얕'은 1·2권이 동반 순항한 데 이어 속편 겪인 '시민의 교양'도 히트했다. 올해엔 한발 더 나아가 소위 '말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스타 강사'들이 출판계 전면으로 나섰다. 설민석과 최진기의 인문학 시리즈가 대표 주자다. 고3 수험생 시절부터 EBS 강의와 스타 강사들의 '인강(인터넷 강의)'을 보며 공부한 2030세대가 '학원 강의식' 저술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입말'의 재미가 인기의 비결이다. 설민석의 책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예능보다 재미있는 한국사.'

스타 강사들이 인문서 시장을 장악한 현상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박정남 교보문고 MD는 "인문교양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커졌는데, 지적 욕구에 비해 깊이 있게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족집게 강의식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상대적으로 깊이 있는 교양서의 판매는 여전히 부진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플라톤 아카데미의 슬라보예 지젝 강연 장면.
시장이 뜨거워지다 보니 출판사들은 '말 잘하는 저자'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는 전작과 달리 강의를 정리해낸 책이다. 대형 출판사들은 아예 강의를 기획해 책으로 내고 있다. 21세기북스는 2013년 시작한 인문재단 플라톤아카데미의 강연을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플라톤아카데미 총서 중 하나인 '나는 누구인가'의 저자는 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슬라보예 지젝, 이태수, 정용석, 최진석이다. 거물급 저자가 한 책에 묶인 건 강연을 편집자들이 정리하는 방식으로 집필의 어려움을 덜어낸 덕분에 가능했다. 시리즈 중 '서양고전' '동양고전' 편은 각각 4만부 이상 팔렸다. 정지은 21세기북스 인문기획팀장은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이뤄진 대중 강연이 책으로 묶여 나오다 보니 출간 초기부터 인지도가 높고, 대중들의 관심사에 맞는 주제를 책으로 묶어 내는 속도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창비는 지난 15일 강만길 유시민 진중권 정혜신 등 인문 스타 저자들의 강연을 기획해 이들의 강연을 '공부의 시대'라는 시리즈로 묶어 내기도 했다. 출간하자마자 2만부를 돌파했다. 올해 상반기 이뤄진 강연은 1000명 모집 강연에 1만명 넘는 신청이 몰렸다. 강연의 인기가 판매로 이어진 셈이다. 황혜숙 교양출판부장은 "강연을 찾은 계층은 남녀노소 등 다양했다. 인문학은 진입장벽이 높았는데, 강연과 쉽게 풀어쓴 저술은 그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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