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무너진 신뢰' 한국서 퇴출되나

2016. 7. 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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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위기 맞은 폭스바겐 사태 집중분석]

판매 차종 70% 인증 취소…디젤뿐 아니라 휘발유 차량도 배출가스 조작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글로벌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그룹이 국내시장에서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과 환경부의 압박 수위가 거세지면서 한국 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신뢰가 붕괴된 데서 왔다. 철저한 품질 우선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며 만들어 왔던 성공 신화는 계속된 거짓말과 무책임한 자세로 인해 사라졌다.

현재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으로, 소비자들에게 ‘거짓말쟁이 폭스바겐’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국내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이는 처지가 됐다.

검찰은 최근 배출가스·소음 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폭스바겐그룹 32개 차종(약 7만9000대)에 대한 행정처분을 환경부에 요청했다.

환경부는 2007년 이후 국내에서 판매된 경유차 15종, 휘발유차 12종 등 27개(판매 종료 차종 5개 제외) 차종, 79개 모델에 대해 인증을 취소한다고 폭스바겐 측에 통보했다. 폭스바겐 골프·제타·티구안, 아우디 A3·A4·A6·Q5, 벤틀리 등 사실상 대부분의 차종이다.

만약 인증 취소가 최종 확정되면 이들 차종의 신차 판매가 곧바로 정지된다. 폭스바겐은 전체 판매 차종 중 약 70%를 팔 수 없는 처지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폭스바겐그룹은 ‘인증 취소’라는 한국 정부의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는 없다”는 공식 방침을 내놓았다. 또한 딜러사와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편지를 보내고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도 게재했다.

중고차 판매와 애프터서비스는 전혀 문제가 없고 인증 서류 제출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를 신속하게 시정해 고객이 안전하고 성능 좋은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러한 폭스바겐그룹의 계획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엄밀히 말해 지금 당장의 상황만 놓고 보면 폭스바겐코리아의 존폐 위기마저 엿보인다.

(사진) 윤성규 환경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인천 서구 종합환경연구단지에 있는 국립환경과학원을 방문해 폭스바겐 임의 설정 관련 배출가스 검사 현황 등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면 심사 악용…시험 성적서 조작도

폭스바겐그룹 차량에 대한 환경부의 행정처분은 검찰이 2007년 이후 국내 출시된 폭스바겐그룹 차량의 배출가스·소음 인증 시험 성적서 조작 등을 수사하면서 시작됐다.

이를 통해 검찰은 최근 서류 허위 조작과 배출가스 저감 장치(EGR) 작동 중단 등으로 배기가스 배출량이 조작된 내용을 적발해 냈다.

여기에 미국에서 논란이 된 ‘유로5 모델’ 디젤 차량 배출가스 조작 외에도 국내에서는 휘발유 차량까지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파문이 더욱 커졌다. 검찰에 따르면 휘발유 차량인 골프 1.4TSI가 국내 배출가스 인증에 실패하자 엔진 제어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기준을 맞춰 불법 판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폭스바겐그룹이 폭스바겐코리아에 조작을 지시하고 폭스바겐코리아는 관련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 사실을 은폐했다. 검찰은 해당 사항에 대해 폭스바겐그룹과 폭스바겐코리아가 주고받은 e메일과 한국법인 관계자의 증언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판매된 골프 1.4TSI는 1567대다. 하지만 문제가 이 차종에만 국한된다고 볼 수 없다. 차종이 다르더라도 같은 엔진을 장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작된 엔진을 달고 국내 도로를 달리고 있는 폭스바겐 차량이 훨씬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난해 폭스바겐그룹은 그동안 차량 배기가스를 조작한 사실이 미국에서 드러나면서 세계적인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내에 판매된 조작된 디젤 차량도 12만5000여 대에 달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더해 배출가스 시험 성적서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사가 서면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악용해 이미 심사가 끝난 차량 모델의 시험 성적서를 다른 모델의 성적서로 꾸며 제출하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해서 40건에 가까운 성적서를 조작했다.

현재 검찰은 올해 국내에 출시된 폭스바겐그룹의 유로6 적용 차종 배출가스 조작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유로6 차량의 배기가스 조작을 밝히기 위해 2016년식 골프1.6 등 4개 차종을 압수해 실제 주행하고 km당 배출가스가 기준치를 만족시키는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주성분인 질소산화물이 km당 0.08g 이하로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일종의 ‘내구성 테스트’다. 이 같은 테스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10년 또는 16만km’라는 품질 보증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이란 의심 때문이다.

검찰은 유로6 차량에 적용된 배출가스 저감 장치인 질소산화물 저장·제거 장치 등 부품의 내구성 결함을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최소한 4만~5만km는 주행해 봐야 내구성 결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여기에 1년 가까이 걸린다는 점이다. 검찰은 테스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에게 판매돼 2만여km를 주행한 차량을 섭외해 테스트하고 있다.

현재 폭스바겐코리아는 차량 판매 정지 결정에 반발해 대형 로펌인 김앤장과 법무법인 광장을 대리인으로 선정하고 ‘행정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형 로펌을 법률 대리인으로 내세운 것은 실제 승소를 노리는 것보다 영업을 지속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올해 2월 19일 압수수색에 나선 폭스바겐사 한국법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서울 강남구 본사. /연합뉴스

◆ 행정소송으로 시간 벌기?

행정소송에 돌입하면 판매 금지 등 최악의 상황은 당장 모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1심 판결까지 걸리는 시간을 보통 6개월에서 1년으로 보고 있다. 이후 항고까지의 과정을 감안하면 최대 2~3년간 소송전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환경부가 지난 6월 한국닛산 캐시카이에서 배출가스 저감 장치 조작이 발견됐다며 진행한 행정처분 조치(판매 정지, 인증 취소, 리콜 명령, 과징금 부과 등)의 결정에 대해 법원이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을 고려하면 폭스바겐코리아도 당분간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현재 한국닛산이 환경부 장관과 국립환경과학원장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한국닛산에 대한 환경부의 판매 정지와 리콜 처분, 국립환경과학원장의 인증 취소 처분은 한시적으로 집행이 정지됐다.

만약 소송전으로 폭스바겐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된다. 상당수 폭스바겐 차량 구매자들은 중고차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가운데 영업 사원들의 이탈로 시장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폭스바겐코리아의 최대 딜러 중 하나인 클라쎄오토가 중고차 사업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중고차 시장에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폭스바겐의 6월 판매량은 183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4321대)에 비해 58% 급감했다. 점유율도 17.8%에서 한 자릿수인 7.8%로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행정조치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기존 구입자, 중고 판매 예정자, 구입 예정 고객이 모두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소송전으로 가면 이들의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아우디·폭스바겐이 받게 될 과징금 액수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배출가스 조작이 확인된 폭스바겐그룹 차량 12만5000대에 대해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에 따라 과징금 상한액을 차종당 100억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을 만들어 7월 28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번 서류 조작에 대한 과징금이다. 환경부가 서류 조작이 판명된 32개 차종에 대한 과징금을 7월 28일 이후 부과하면 과징금은 최대 3200억원까지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과징금은 전체 판매액의 1.5~3%를 넘을 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인증을 받지 않고 판매한 차종에는 3%, 인증 내용과 다르게 제작·판매한 차종에는 1.5%를 적용한다.

◆ 환경부 과징금만 1000억원대 가능성

환경부는 현재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1.5%로 할지, 3%로 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법 혐의 차량 7만9000대의 국내 판매 가격을 감안해 과징금을 1.5%로 계산하면 500억원, 3%는 1000억원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폭스바겐그룹에 대해 허위·과장 광고를 한 혐의(표시광고법 위반)로 과징금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9년부터 ‘탁월한 연비와 퍼포먼스를 발휘하며 유로5 배기가스 기준까지 만족했다’고 광고해 왔다.

하지만 최근 서류 허위 조작과 배출가스 저감 장치(EGR) 작동 중단 등으로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것이 밝혀짐에 따라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EGR 조작으로 인증이 취소된 폭스바겐그룹 차량 12만5515대를 과징금 부과 대상으로 보고 있다.

과징금 규모는 8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정위는 폭스바겐그룹 측으로부터 의견서를 제출받아 검토한 뒤 최종 회의를 거쳐 오는 9월께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사실 폭스바겐의 국내시장 위기는 올해 초부터 이미 예견됐다. 고객은 물론 정부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폭스바겐코리아의 무책임하고 미온적인 대응이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디젤 게이트 발생 이후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 측에 개선 계획을 담은 리콜 계획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한 줄’짜리 부실한 계획서를 내놓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3차례나 환경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 ‘한 줄’짜리 개선안…할인 판매에만 혈안

디젤 게이트 사태 해결에는 미온적이었지만 판매 일선에서는 전 차종 무이자 60개월 할부 등 공격적이고 변칙적인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펼치면서 판매를 늘린 것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폭스바겐그룹은 미국에서는 피해 고객들에게 18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내놓기로 하는 등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배상과 리콜 등을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임의 설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폭스바겐그룹의 주장은 한국 소비자를 ‘호갱’으로 취급한다는 여론에 불을 붙였고 검찰과 환경부의 압박 수위를 높이는 단초가 됐다.

현재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관련 차량 소유자 4500여 명은 법무법인 바른과 함께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최근 이들은 리콜 대신 환불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내에서 폭스바겐 집단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미국 정부처럼 한국 정부도 리콜 불능을 선언하고 즉시 환불 명령을 내려야 한다”며 “이 같은 내용의 청원서를 환경부에 제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폭스바겐그룹이 아우디는 물론 람보르기니·두카티·포르쉐·벤틀리 등의 슈퍼카 브랜드를 비롯해 스코다·시아트·만·스카니아·FAW·유럽카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한 자동차 제국으로 성장한 것은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신뢰가 바탕이 됐다.

대표적인 일화는 1961년 탄생한 폭스바겐의 대표 차량 ‘비틀’의 광고였다. 차량 출시 당시 앞좌석 사물함 문을 장식한 크롬 도금에 작은 흠집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한 폭스바겐은 ‘이 차는 불량품입니다’라는 카피를 통해 자신들의 결함을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이러한 폭스바겐의 모습을 본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폭스바겐에 무한 신뢰를 보냈다. 1962년 미국 내 수입차 판매량의 50%를 비틀이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작은 실수 하나를 인정하고 공개함으로써 신뢰를 쌓아 왔던 폭스바겐의 신화가 계속된 거짓말과 불법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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