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참극을 부르는 차별..한국도 남일 아니다

뮌헨|정동식 통신원(전 경향신문 기자) 기자 입력 2016. 7. 26. 09:32 수정 2016. 7.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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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일 뮌헨의 올림피아 쇼핑몰 앞에 24일(현지시간) 총기난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촛불과 꽃다발들이 놓여 있다. |Getty Images

모두 10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독일 뮌헨 총격사건은 ‘10대 소년의 정신질환적 범행’으로 결론내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범인이 또래들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집과 가까운 도심을 두고 굳이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외곽지역을 범행장소로 선택했다는 점, 페이스북으로 이들을 유인했다는 점, 사망자 중 대부분이 10대였다는 점 등이 그런 정황증거다.

범인이 죽기 직전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 자신이 독일인임을 강조하면서 외국인을 증오한다거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거나, 모두 죽이고 싶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로 하여금 참극을 벌이게 한 응어리는 무엇이었을까. 한 코소보계 사망자의 아버지는 사건 후 인터뷰에서 “내 아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선 독일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이 그동안 우리를 어떻게 대해 왔는가에 대해선 원망한다”고 말했다. 코소보에서 독일로 이민온 그의 가족들이 평소 독일 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는 불만이다.

범인은 이란계 독일시민권자다. 똑같은 독일 시민임에도 외모 등으로 외국인 취급을 받아 괴롭힘과 무시를 당하는 과정에서 분노가 누적됐으며, 외국인에 대한 증오감도 갖게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차별이란 가해자는 별다른 의식없이 하지만 피해자에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무기다. 뮌헨에 사는 한 교민은 자녀의 친구들이 가끔 “너는 왜 눈이 찢어졌니?”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들은 별 뜻 없이 하는 농담이지만 듣는 부모나 당사자는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민 1세대들은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차별도 인내했지만 자식 세대들은 생각이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시민인데도 실제 사회에선 많은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 크게 좌절한다는 것이다. 그런 피해의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는 이미 프랑스와 벨기에의 테러에서도 잘 드러났다. 이 사건들의 범인들 역시 이민자 출신의 그 나라 시민권자들이었다.

지난 3월 벨기에 테러 당시 범인들이 은둔했던 브뤼셀 시내의 무슬림 커뮤니티를 방문한 적 있다. 한낮임에도 젊은이들이 삼삼오오로 어슬렁거리면서 보내던 적의 가득한 눈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똑같은 벨기에 국민인데 취직이 안 되니 좌절하고 분노하다가 자연스럽게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듯 했다.

한국도 요즘 젊은 세대들을 사이에선 ‘헬조선’이라는 낙심천만의 말이 심심찮게 통용되고 있다. 혹자들은 지금의 한국이 경제적으로 10대 강국에 들 정도로 부유해졌고 국력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는데 왜 나약한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아무리 부유해져도 구성원 간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고, 기회가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한데서 오는 좌절감이 얼마나 큰 지를 기성세대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는 한 교민은 최근 오랜만에 한국에 갔다가 너무 놀랐다고 했다. 한국은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힘이나 돈이 있는 사람에겐 지나치게 굽신거리면서도 약자에겐 한없이 무시하고 가혹하게 대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한국 사람들도 느끼는 이런 차별이 ‘힘없는 외국인’들에겐 오죽 하겠는가. 한국도 이제 거주 외국인이 2백만 명 가까이에 이르고, 한국 국적을 갖는 사람도 30만명에 달한다. 아직 유럽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지만 우리에게도 외국인 문제가 현안으로 닥치는 건 시간 문제다. 받느냐 안 받느냐, 어느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느냐보다 구성원간의 융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뮌헨 사건은 잘 보여주고 있다.

<뮌헨|정동식 통신원(전 경향신문 기자) 기자 dos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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