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헌트가 추진한 선수협회 결성, 더 이상 미뤄져선 안돼(上)

조형규 2016. 7. 2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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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조형규 기자]  “그 사람들한테 우리는 그저 책상에 앉아 더했다 뺐다 하는 종이에 박힌 숫자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머리수만 채우면 되는 가축이오. 뺏어도 화내지 않고, 때려도 반격하지 않으니 두렵지가 않거든.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웹툰 ‘송곳’ 中-

2003년에 벌어진 외국계 대형마트 까르푸 노조결성 과정 실화를 그린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현실에도 과감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일수록 더욱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촉구하는 대목이다.

최근 UFC 내 선수협회 결성을 추진하고 나선 마크 헌트 (사진=ⓒZuffa, LLC)

헌데 이와 같은 일이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지구 반대편의 종합격투기 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로 최근 MMA 선수협회 결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마크 헌트(42, 뉴질랜드) 때문이다.

지난 10일(한국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200에서 헌트는 브록 레스너(39, 미국)를 상대로 맞아 3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불과 열흘 사이에 레스너가 두 차례나 USADA(US Anti-Doping Agency, 미국반도핑기구)의 약물검사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보도됐다. 곧 레스너의 대전료 중 일부를 USADA가 몰수할 것이라는 소식도 덧붙여졌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헌트는 분노했다. “나는 매번 사기꾼들과 싸워왔고,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그런데 왜 레스너의 대전료를 USADA가 몰수해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몰수한 대전료는 당연히 나에게 보상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UFC 측은 인기스타인 레스너의 약물 적발 사실에 대해서 소극적인 대응만을 거듭했다. 결국 이에 참다못한 헌트가 칼을 꺼내들었다. 바로 랜디 커투어(53, 미국), 존 피치(38, 미국) 등 기존의 몇몇 파이터들이 시도했던 UFC와의 정면대결-즉 선수협회 결성을 공론화한 것이다.

현재 마크 헌트는 선수협회 결성에 같이 참여를 원하는 파이터들로부터 연락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사진=엠파이트)

■ 선수협회 결성 추진하는 마크 헌트, “참여 원하면 연락 달라”

이같은 헌트의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헌트는 UFC의 행보에 대해 비교적 느긋하게 관망하며 단체나 선수에 대한 일체의 말을 아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벌써 세 번이나 약물에 적발된 선수와 경기를 치르자 참아왔던 분노가 터졌다.

헌트는 지난 21일 자신의 웹사이트인 마크헌트TV(Markhunt.tv)를 통해 선수협회 결성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종합격투기를 클린 스포츠로 만들겠다던 UFC의 주장은 엉터리다. USADA가 선수 관리를 시작한 후에도 난 세 번이나 사기꾼과 만나야 했다. 이는 상대 선수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사실 헌트가 처음 입을 연 계기는 레스너의 약물 적발 소식에 대한 비판과 대전료 몰수에 관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레스너가 두 차례의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UFC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헌트의 태도가 순식간에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레스너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헌트의 시선은 이제 선수협회 결성으로 나아갔다. 그는 레스너의 약물 적발 사태를 두고 “이번 사건은 더 이상 선수협회 결성을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이를 비롯해 리복 스폰서십 문제, 선수 처우 개선 등 우리에게 산적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그는 “UFC는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이런 문제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왔다. 이제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며 뜻을 확고히 했다. 의견 말미에는 “협회 결성에 뜻을 함께 하고픈 파이터가 있다면 나에게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달라. 모두 익명을 보장해 주겠다”는 말로 선수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물론 어떠한 파이터들이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동안 UFC 측의 불합리한 처우 문제와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소신 있는 의견을 밝혔던 몇몇 파이터들은 분명 헌트와 뜻을 함께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밴텀급 전 챔피언인 TJ 딜라쇼는 지난 UFC 200에서 파이트머니로 5만 달러를 수령했다. 참고로 이날 브록 레스너는 대전료로 250만 달러를 받았다. (사진=TJ 딜라쇼 인스타그램 계정)

■ 실력보다 더 우선시되는 대전료의 척도, ‘인기’

잘 알려진 대로 현재 UFC 내에서는 PPV 판매량이 높은 스타 파이터와 실력자 간의 대전료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지난 몇 년 간 파이터 뿐 아니라 종합격투기 관계자 및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핵심이 됐다. 최근 열린 UFC 200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UFC 200에 출전한 레스너는 자타공인 최고의 스타 파이터다. 그의 출전만으로도 이미 UFC 200은 엄청난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코메인이벤트에 출전한 레스너는 250만 달러(한화 약 28억 5000만 원)에 이르는 고액의 대전료를 챙겼는데, 이는 UFC 역사상 단일 대전료로는 최고 기록이다.

반면 같은 날 똑같이 경기를 치른 TJ 딜라쇼(30, 미국)는 얼마를 수령했을까. 전 밴텀급 챔피언 출신인 딜라쇼는 이날 하파엘 아순사오(34, 브라질)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가 수령한 파이트머니는 고작 5만 달러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 금액은 승리했을 시 두 배로 주어지는 승리수당까지 모두 합친 총액이었다.

물론 UFC는 이익 창출이 우선인 사기업이다. 특히 투기 종목에서 PPV(Pay-per view, 유료방송판매) 판매량을 가늠할 수 있는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는 고액 대전료의 척도 중 하나다. 하지만 육체적 능력으로 우열을 가리는 스포츠에는 그에 상응하는 공정한 기준 또한 요구된다.

레스너와 딜라쇼는 모두 자신의 체급 내에서 챔피언을 역임한 파이터다. 비록 체급은 다르지만 UFC가 인정하는 동일한 세계 챔피언 출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50배 차이의 대전료라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한다. 물론 리복 스폰서십 계약 이후 선수들의 파이트머니가 많이 인상됐다지만, 양극화 현상은 더욱 극단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종합격투기를 공정한 스포츠로 만들고, 미래에는 올림픽에도 진출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던 UFC의 행보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 딜라쇼는 직접 당당히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3월 ESP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급작스런 경기 오퍼 수락에도 불구하고 UFC로부터 그 어떠한 감사의 말조차 듣지 못했다. 나는 전 챔피언이지만 UFC는 그동안 내가 이뤄온 것들에 비해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로리 맥도날드(27, 캐나다)도 빼놓을 수 없다. 맥도날드는 가장 경쟁이 치열한 UFC 웰터급에서 당당히 랭킹 1위에 올랐던 파이터다. 하지만 그의 대전료는 5만 9천 달러에 불과하다. 그는 올해 3월 ‘MMA파이팅’과의 인터뷰에서도 “물론 위대한 타이틀 경기를 많이 치렀다. 하지만 그 경기가 나에게 경제적 풍요로움을 주진 못한다. UFC를 위해 수많은 일을 했지만, 정작 제대로 돌려받은 건 없다”라며 이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랜디 커투어는 종합격투기 업계에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온 바 있다. (사진=ⓒZuffa, LLC)

■ 선수노조 결성을 주창한 선구자, 랜디 커투어

물론 UFC의 불공정한 처우 개선 및 선수협회 결성에 대한 움직임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랜디 커투어의 노조 결성 움직임이다.

물론 UFC의 불공정한 처우 개선 및 선수협회 결성에 대한 움직임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랜디 커투어의 노조 결성 움직임이다.

커투어는 지난 2007년 UFC와의 재계약 협상에서 다른 파이터들과의 금액 형평성 문제로 데이나 화이트 대표와 마찰을 일으킨 바 있다.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으나, 다행히 협상을 통해 문제가 잘 수습됐다. 그 뒤 커투어는 2008년 복귀하여 레스너와 타이틀전을 치렀고, UFC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그러나 2011년 커투어가 은퇴하면서 다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은퇴 후 그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바로 종합격투기 선수 노조 결성이었다. 특히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파이터들에 대한 의료지원과 UFC의 초상권 독점 관련 문제를 놓고 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UFC는 2011년 6월부터 소속 파이터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 보장을 실시했다. 사회적 여론을 받아들였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UFC의 대처는 노조가 결성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단체 차원에서 먼저 선수를 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의료 보장과 함께 제기된 초상권 부분은 현재까지도 논의가 오가고 있는 문제다. 현재 UFC가 선수와 계약을 체결할 때 가장 먼저 강조하는 조항인데, 바로 파이터들의 이름과 사진을 단체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는 초상권을 관련된 게임이나 그 외 다른 콘텐츠에 마음대로 사용해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선수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미 지난 2008년 발매된 UFC 게임 ‘언디스퓨티드’를 통해 초상권 문제가 한차례 불거진 바 있다. 당시 게임에 사용된 선수들의 초상권이 UFC에게 영구 귀속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 계약을 두고 존 피치가 처음으로 거부권을 밝힌 것이다. 이처럼 피치가 거부의사를 선언하자마자 소속팀인 AKA(American Kickboxing Academy, 아메리칸 킥복싱 아카데미)의 동료들 또한 반기를 들기도 했다.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진] 엠파이트/ⓒZuffa, L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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