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IOC가 러시아에 굴복한 3가지 이유

권종오 기자 입력 2016. 7. 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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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120년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됐습니다. 국가적으로 집단 도핑을 저지른 러시아 선수단의 리우 올림픽 출전 길을 열어줬기 때문입니다.

IOC는 24일 긴급 집행위원회를 열고 러시아 선수단의 참여 허용 문제를 논의한 끝에 전면적인 금지 대신 각 선수의 소속 28개 국제연맹이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육상과 역도는 리우 올림픽에 나갈 수 없지만, 체조와 레슬링 등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거의 전부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리우올림픽 퇴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한 러시아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습니다. 집단 도핑의 지시자란 의혹을 받고 있는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객관적이었고 세계 스포츠와 올림픽의 단합을 위한 결정이었다. IOC의 결정에 감사한다. 러시아 선수들이 올림픽 참여를 위한 엄격한 도핑 기준을 통과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IOC의 이번 결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IOC는 지금까지 금지약물 복용, 즉 도핑에 대해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의 도핑은 선수 개인의 일탈이 아닙니다. 국가 정보기관인 연방안전국(FSB)까지 나서 ‘007’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기상천외한 집단 도핑을 저지른 것입니다. 단기간의 조사에서 확인된 규모만 해도 5년 동안 30개 종목에 걸쳐 무려 577개의 샘플이 조작됐습니다. 심지어 장애인 선수에게도 금지약물을 복용시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상 초유의 국가적 차원의 도핑에 대해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미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 14개 나라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리우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단을 완전히 퇴출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WADA 초대 의장을 지낸 리처드 파운드 캐나다 IOC 위원은 “IOC가 이번에 러시아를 리우 올림픽에서 퇴출시키지 못하면 올림픽 정신과 올림픽 운동은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주요 각국이 러시아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는데도 IOC는 결국 이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IOC의 무책임과 이중성입니다. 지난 6월17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러시아 육상은 리우 올림픽을 비롯해 모든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입장이 발표되자 IOC는 즉각 “러시아 육상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는 IOC가 결정한다”고 반박했습니다. 각국 선수단을 올림픽에 출전시킬지, 아니면 출전시키지 않을 것인지는 IOC의 고유 권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작 한 달 만에 IOC 입장은 바뀌었습니다. 러시아 선수단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를 각 종목의 국제연맹이 결정하도록 한 것입니다. 당연히 IOC가 결정해야 할 사항인데도 ‘후환’이 두려워 그 책임을 국제연맹에 떠넘겨버린 셈입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도핑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선수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 금지 조치를 내리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만약 바흐 위원장의 논리대로라면 러시아의 여자 장대높이뛰기 스타인 이신바예바의 출전을 허용해야 합니다. 이신바예바는 도핑과 직접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제육상경기연맹은 러시아 육상 선수 전체에게 징계를 내렸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바흐 위원장도 이신바예바를 구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입니다.    

IOC는 이밖에 도핑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던 러시아 선수의 경우 징계가 만료됐더라도 리우 올림픽에 나오지 못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이것 역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명백한 ‘이중 처벌’이기 때문입니다. CAS는 지난 2011월 10일 도핑 징계 선수의 ‘이중 처벌’을 명시한 이른바 ‘오사카 룰’은 무효라고 판결했고, IOC도 관련 조항을 즉각 삭제했습니다. 도핑으로 징계를 받은 한국의 수영스타 박태환은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반면 러시아 선수는 징계가 끝난 뒤에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형평의 논리에 어긋납니다.

그럼 IOC는 왜 온갖 불법을 저지른 러시아를 강력하게 제재하지 못하고, 이런 ‘정치적 결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국제 스포츠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푸틴 대통령과 바흐 위원장의 친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례적이라 할 만큼 돈독한 친분을 쌓아왔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만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바흐 위원장을 극진히 대접했고, 바흐 위원장도 이에 대한 감사 표시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1952년에 태어난 푸틴 대통령이 바흐 위원장보다 1살 위로 사실상 동년배입니다. 이런 두 사람의 밀월 관계 때문에 바흐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러시아 제재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해왔습니다.

2. 러시아의 힘과 IOC 비리 폭로 우려

러시아는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5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었습니다. IOC는 물론 소치 올림픽을 직접 취재한 저도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의 막강한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번에 IOC가 러시아의 전면 퇴출을 결정했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복 조치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보이콧을 비롯한 러시아의 초강수가 충분히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IOC 비리에 대한 폭로도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지난 2007년 소치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과정에서 러시아는 IOC 위원을 상대로 물밑 접촉과 함께 집중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이판사판’ 식으로 당시의 기밀을 누설하면 IOC는 완전히 ‘비리 스캔들’에 빠지며 최악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3. 리우 올림픽 흥행 참패 우려

러시아는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강국으로 수많은 스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러시아 선수단이 전부 출전하지 않는다면 리우 올림픽 흥행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가뜩이나 지카 바이러스, 테러, 정국 불안 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까지 빠진다면 ‘2류 올림픽’ 전락은 시간문제입니다. 결국 IOC로서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리우올림픽 개막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에서 IOC가 각 국제 연맹에 공을 넘기면서 대혼란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국제조정연맹(FISA)의 경우 2011년 이후 러시아 선수단의 소변 샘플을 전면 재검사할 계획이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체조, 레슬링 등 러시아가 강세인 다른 종목의 연맹들은 자료 확보 계획마저 없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저래 이번 리우 올림픽은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회가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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